기획 완결 용어로 다시 읽는 미술사

인간을 압도하는 웅장한 석조 건축 전성기 이뤄

입력 2019. 03. 20   17:28
업데이트 2019. 03. 2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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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로마네스크 미술: 봉건제, 영주, 레헨, 교차궁륭, 대학, 틀의 법칙, 스크립토리움


1130년대 완성된 부르고뉴의 베즐레 수도원 입구 부조.
1130년대 완성된 부르고뉴의 베즐레 수도원 입구 부조.
글로스터 촛대. 12세기 영국 VA미술관 소장.
글로스터 촛대. 12세기 영국 VA미술관 소장.
스페인 카탈루냐 국립미술관이 소장한 12세기 세인트 클레멘트 드 타웰 중앙의 벽화.  필자 제공
스페인 카탈루냐 국립미술관이 소장한 12세기 세인트 클레멘트 드 타웰 중앙의 벽화. 필자 제공

내부분열과 외적의 침입으로 혼란했던 유럽은 독일에 오토와 프랑스 지역에 카페 왕조가 등장하고 봉건제가 정착하면서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중세를 지탱한 봉건제는 왕이 가진 토지를 제후 또는 영주에게 나눠주는 레헨제를 매개로 군신의 관계를 맺고 제후들은 가신인 기사들과 함께 농노들을 보호해주고 농노들은 반대급부로 노동력을 제공하는 예속관계였다. 

  

왕의 권력이 강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방분권이 자연스럽게 이뤄졌고 영주는 제법 독립적으로 자신의 영지를 운용할 수 있었다. 따라서 중세는 농노 또는 장원제를 근간으로 하는 경제제도를 유지했다. 교황으로부터 독립을 원하면서도 자신의 나라를 복음의 땅으로 만들고자 했던 왕들은 수도원을 건립했다. 이렇게 중세 유럽은 농노제를 근간으로 기사와 수도원이 영주가 사는 성을 중심으로 장원을 이뤘다.


10세기 후반~12세기 로마네스크 미술
장원제 정착‥독일미술 유럽 최고

이제 힘을 갖춘 안정적인 시기(960~1060)의 독일미술은 유럽에서 최고 수준에 달했다. 이후 10세기 후반부터 12세기까지 건축은 로마 건축을 바탕으로 획기적이며 인상적인 양식들이 나오면서 로마네스크 미술의 대표적인 조형예술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중세 중기에 속하는 로마네스크(Romanesque)는 ‘로마의 자손’이라는 뜻으로 1818년 프랑스 고고학자 게르빌(1769~1853)이 로망(Roman)이란 말을 쓴 것이 시초였다. 하지만 로마 건축을 야만적인 북방 민족이 망가뜨렸다는 경멸의 의미를 담고 있기도 했다.

로마네스크의 건축은 주로 중세의 중심이었던 수도원 건축이 주를 이룬다. 잦은 전쟁과 불로부터 하나님의 집을 보호할 셈으로 주로 돌을 썼다. 따라서 내부의 궁륭(穹륭·연속된 아치들로 이루어진 반원통 모양의 구조물)은 웅장함으로 사람들을 압도했으며 아울러 탁월한 음향효과를 통해 천상의 소리를 만들어냈다. 두꺼운 벽과 둥근 아치, 원통형 궁륭과 교차궁륭을 특징으로 하는 로마네스크 양식은 10세기 말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 최초의 국제적인 건축 양식으로 12세기에 전성기를 이룬다. 흔히 ‘황제의 돔’으로 불리는 보름스와 마인츠 대성당, 슈파이어 대성당이 대표적인 이 시대의 건축물이다. 특히 슈파이어 대성당은 건축물 전체가 하나의 통일체로 총체적인 조형미를 갖춘 건축물로 완성되면서 로마네스크 건축의 정점이 됐다. 만프레드 분드람(1925~2015) 같은 이는 “이후부터 지금까지 없었다”는 말로 이 시기 건축을 격찬했다.


중세의 중심 수도원 건축
두꺼운 벽·둥근 아치 음향 효과 탁월


로마네스크 건축물은 농촌 지역에 장원을 중심으로 활발히 건립된 수도원의 성당에 적용됐다. 로마의 영향으로 둥근 아치 형태의 천장은 석재로 만들어졌고 이를 견디려면 벽도 두껍고 웅장해야 했다. 무게를 견디려면 창문도 커서는 안 됐다. 따라서 내부는 늘 어두컴컴했는데 이는 오히려 교회 안을 엄숙하게 만들었다. 로마네스크 시대의 또 다른 힘은 수차와 풍차 등 새로운 동력기술의 발달로 높아진 농업 생산성에서 나왔다. 이로 인해 잉여 농산물이 시장에 나오고 수공업도 발달하면서 상업이 융성해졌고 상공업자들의 동업자 조합인 길드(Guild)가 생겨나면서 재정적으로 교회 등 대형 건축을 뒷받침했다.

기독교 성지회복을 위해 결행한 십자군 원정(Crusade, 1095~1272)은 의학·과학·법학 등 새로운 지식의 유입을 가져왔고 이에 따라 학생과 교사조합 형태의 대학(University)이 나타났다. 이탈리아의 볼로냐대학(1088), 살레르노대학(1231), 파리대학(1109), 옥스퍼드(1167), 케임브리지(1209) 등이 그것이다.

이 시기 수도원은 문화의 산실이자 예술의 생산기지로 건축과 함께 특히 조각과 금속공예, 상아조각이 성했다. 조각은 독립적이기보다는 건축의 일부로 회화적이면서 성서의 내용을 주제로 다뤘다. 건축물의 기둥 꼭대기에 동물을 한 쌍씩 대칭적으로 조각해 균형을 이뤘는데 조각은 ‘틀의 법칙(Portion)’에 따라 길게 늘어나거나 춤을 추는 듯, 광대의 모습처럼 비뚤어져서 건축물의 형태 속에 자리했다. 이런 로마네스크 특유의 변형을 통해 건축의 틀 안에서도 격렬하고 역동적인 생명감을 표현했다. 또 건축물의 문에 성서의 내용이나 그리스도의 일생 등 교리를 묘사했다. 또 자연의 일부는 추상적이고 왜곡된 형태의 환상적인 이미지로 자유롭게 변주되면서 초월적인 신의 세계를 그려냈고 화려한 원색으로 채색된 십자가상이 제작됐다. 또한 이 시기부터 기독교 전통인 ‘지혜의 자리’라는 의미의 마리아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성모자상이 나타났다. 이때 성모는 인류의 구원 원천으로 항상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문화 산실이자 예술 생산기지 ‘수도원 ’
조각·금속공예·상아조각도 많아


로마네스크 시대 건축의 벽은 그림으로 가득 채워졌다. 베네딕트회는 물론 910년 베네딕트회의 혁신을 위해 결성된 클뤼니회 등 많은 수도회는 벽면을 성상화로 장식하는 일에 적극 나섰다. 현존하는 그림을 보면 조각과 같이 건축의 형태 안에서 그려졌는데 성서의 내용이나 성도의 도덕적 삶이 주제였다. 이들은 깊고 넓은 신앙의 표현수단으로 그림을 그려 인간의 몸의 아름다움보다는 정신적이고 영원한 미를 추구했다. 따라서 교훈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며 ‘문맹자들을 위한 성서’의 역할을 확실하게 했다. 양식적으로는 이콘화를 대표하는 ‘데이시스(Deesis)’ 양식이 주로 사용됐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좌우에 성모 마리아와 세례자 요한 그리고 대천사와 성인들이 인류의 구원을 청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따라서 이 도상에는 ‘간청’이란 의미가 들어 있다. 재료는 계란, 아교질, 벌꿀, 무화과나무의 수액 등을 안료와 섞어 물감을 만들어 그림을 그린 템페라(Tempera)가 사용됐다. 특히 강한 터치와 채색은 표현주의적 왜곡과 양식화를 통해 오늘날의 표현주의와 흡사하다. 아무튼 이 시대 미술에 나타나는 인물들은 모두 초현실적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편 스테인드글라스로 성상을 표현하는 예도 많았으며 필사본 삽화가 대부분 수도원의 사본제작소에서 제작돼 중세 전기의 전통을 이어갔다.

<정준모 큐레이터>
사진=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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