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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근무시간 늘자… 환자 사망률도 늘었다

입력 2019. 03. 19   17:15
업데이트 2019. 03. 19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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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현 박사의 야전병원- 과로사회의 그림자


업무 과다로 사망하는 ‘과로사’
스트레스가 혈압 올려 혈관 막아
심부전·뇌출혈 등으로 사망
국내 전공의 주당 평균 99시간 근무
미국은 64시간… 장시간 근무 금지
결국 환자에게 피해 간다는 이유

설 연휴 근무 중 돌연 사망한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영결식이 엄수된 지난 2월 10일 오전 서울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 이국종 교수가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설 연휴 근무 중 돌연 사망한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영결식이 엄수된 지난 2월 10일 오전 서울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 이국종 교수가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설 연휴기간 중 비보를 접했다.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의 윤한덕 센터장이 연휴 근무 중 집무실 의자에 앉은 채 세상을 떠난 것이다. 윤 센터장은 연휴로 이어지는 주말부터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 무렵 인천의 한 대학병원에서 당직근무 중이던 30대 전공의(레지던트)가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24시간 연속 근무를 하고 12시간을 더 근무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평소 별다른 지병이 없었고 세상을 떠난 날 새벽까지도 친구와 휴대전화 문자를 주고받았다. 지난 해 11월에는 대통령의 아세안(ASEAN) 정상회의 순방을 수행하던 40대의 외교부 국장이 쓰러진 상태로 발견돼 뇌출혈로 치료를 받았다.


의학계에 과로사를 소개한 일본의 우에하타 박사가 쓴 책 『과로사 연구』.
의학계에 과로사를 소개한 일본의 우에하타 박사가 쓴 책 『과로사 연구』.


1978년 처음 사용된 ‘과로사’란 단어

세 사람의 공통점은 평소 비교적 건강했던 30~50대로 어느 날 갑자기 쓰러졌다는 점이다. 업무 과다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경우를 종종 ‘과로사(過勞死)’라 하는데 일본에서 처음 부르기 시작했다. 1969년 일본에서 기혼의 29세 신문발송부 사원이 뇌졸중으로 갑자기 사망하자 ‘직장돌연사’라며 업무와 관련된 사망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5년이 지나서야 업무상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 인정됐다. 이후 일본에서 100여 명이 유사한 사례로 보상을 받았다. 1978년 51차 일본산업위생학회에서 우에하타 데쓰노조(현 일본 국립보건연구원 명예교수) 박사가 17명의 사례를 보고하면서 ‘과로사’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는데 ‘과중한 노동부담이 유발요인이 되어 고혈압이나 동맥경화증 등 기존에 갖고 있던 질환이 급속히 악화되고, 뇌혈관질환이나 심근경색증 등 급성 순환기질환을 일으켜 사망이나 노동 불능에 빠진 상태’라고 정의했다.

대중에게 과로사가 널리 알려진 것은 1982년 우에하타 박사 등 3명의 일본 의사가 과로사에 관한 책을 내면서부터다. 당시 1차 석유파동 이후 일본은 앞만 보고 달리며 경제대국으로 도약하던 시기였다. 시대를 반영하듯 1988년 일본 광고에 ‘24시간 싸울 수 있나요?’라는 문구가 등장했다. 같은 해 ‘과로사110번 전국네트워크’ 캠페인을 통해 일본 내 수많은 과로사가 접수됐고, 그 해 11월 13일 미국 매체인 시카고 트리뷴에 ‘일본인은 일 때문에 살고 일 때문에 죽는다’는 기사가 실리면서 외국에도 널리 알려지게 됐다.

처음부터 과로사가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은 아니다. 일본 노동성(현 후생노동성)에서는 과로사라는 병이 없다며 공식 문서에 언급을 자제했다. 대부분의 학회에서도 사람이 과로로 죽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과로사 연구가 속속 발표되고 산재인정 건수가 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일본식 한자 과로사(過勞死)를 일본 발음대로 적은 ‘Karoshi(가로시)’가 1991년부터 국제적으로 통용됐다.

일본에서는 여러 차례 뇌·심장질환 또는 정신장애에 관한 산재인정 기준이 개정됐고 2010년 과로사에 해당하는 질병이 노동기준법 시행규칙 35조 별표에 기재되면서 과로사라는 질병명이 산재인정(업무상)의 기준이 되었다. 그 전만 해도 기타 업무에 기인하는 명백한 질병이라는 취급을 받았다. 그리고 2014년 일본 국회에서 과로사 방지대책추진법이 제정됐다.



피가 통하지 않아 심장·뇌 조직 죽어

과로사로 목숨을 잃는 원인은 무엇일까? 연구 결과 주로 심부전(18.7%), 지주막하출혈(18.4%), 뇌출혈(17.2%), 심근경색증(9.8%), 뇌경색(6.8%) 등이 원인이었다. 심부전은 온몸으로 피를 뿜어내는 심장의 펌프기능이 약해진 것이다. 지주막하출혈은 뇌혈관이 터져서 뇌를 싸고 있는 막 가운데 지주막(거미막) 아래에 피가 고이는 병이다. 뇌혈관이 부풀어 오른 뇌동맥류처럼 혈관에 이상이 있는 경우 어느 순간 갑자기 혈관이 터질 수 있다. 심근경색증과 뇌경색은 각각 심장과 뇌로 가는 혈관이 막히면서 피가 통하지 않아 심장과 뇌 조직이 죽어가는 병이다.

과로를 하면 우리 몸이 긴장 상태가 되면서 교감신경이 작동한다. 이때 나오는 스트레스 호르몬은 혈압을 올리고 혈관 안에 혈전(피떡)이 잘 생기게 한다. 특히 담배를 피우면 혈전이 더 잘 생기고 혈압이 올라 갑자기 혈관이 막히거나 터지기 쉽다.

과로로 쓰러지는 사람들은 몇 가지 조짐을 보이는데 크게 번아웃(burnout) 증상과 우울증 증상이다. 번아웃 증상으로 쉽게 피로해지고 건망증이 생긴다. 목과 어깨가 뭉치면서 단단해지고 두통, 근육통에 시달린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체중이 줄거나 늘 수 있다. 우울증 증상으로 집중이 잘 안 되고 쉽게 울적해진다. 잠을 잘 못 자고 자살 생각을 하거나 시도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일에 지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과로자살이라고 한다.



2017년 법 개정 ‘전공의 근무 최대 88시간’

앞서 사망한 30대의 젊은 의사도 거의 병원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생활해서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나마 2017년부터 시행된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전공의법) 7조에 의해 병원은 전공의에게 1주일에 80시간까지 수련을 시킬 수 있고, 추가로 1주일에 교육 목적으로 8시간까지 근무를 연장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16시간 이상 연속 수련을 한 전공의에게 최소 10시간의 휴식시간을 주도록 하였고, 연속해서 36시간을 초과해 수련을 시켜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주 52시간을 얘기하는 시대에 사실상 36시간까지는 ‘연속 근무’해도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쉬쉬하며 제대로 지키지 않는 병원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몇 해 전 전공의법이 생기기 전만 해도 과에 따라서는 주당 100시간 이상 근무는 부지기수였다. 2011년 미국 병원 인턴의 1주 평균 근무시간은 64시간이고, 호주는 55시간인 데 비해 국내 전공의의 평균 근무시간은 92~99시간 정도였다.

일찌감치 미국에서는 의사의 장시간 연속 근무를 강하게 금하고 있다. 지친 의사는 자신의 건강도 해치지만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의료 현장에서 순간 판단이 흐려져 환자에게 피해가 돌아간다는 이유에서다. 제대로 자지 못하고 쉬지 못한 의사는 밤을 꼴딱 세우고 휴게소도 들르지 않은 채 몇 시간씩 차를 모는 버스 운전기사와 다를 바 없다. 2003년 미국에서 전공의 근무시간 규제를 도입한 후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 보훈병원에서 분석한 결과 전공의의 근무시간을 줄이자 입원 환자들의 급성 심근경색증, 심부전, 위장관출혈, 뇌졸중 등으로 인한 사망이 함께 줄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인턴의 근무시간 단축으로 수면시간이 늘면서 인턴이 야간 근무 중 주의 집중이 안돼 의료과실로 이어지는 비율이 줄어들었다.

우리 군도 부대별로 야간 당직 근무자나 장거리 운행자를 위해 별도의 휴식시간을 배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혹시라도 수면과 휴식시간 보장에 사각지대가 있는지 다시 한 번 주위를 돌아봐야 한다. 과로는 개인의 건강과 생명에 위협이 될 뿐만 아니라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사회적으로 근로시간 조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근무시간부터 근무의 형태까지 다양한 얘기가 오가고 있지만 생산성 측면에서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도 있다. 무엇보다 생명과 안전을 중심에 두고 지혜를 모아야겠다. 안지현 의학박사(KMI한국의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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