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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 병영칼럼] 서촌의 즐거움

입력 2019. 03. 19   14:25
업데이트 2019. 03. 19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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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인 
미술평론가
황 인 미술평론가


서울 서촌은 경복궁의 서쪽에 있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의 2번과 3번 출구를 나오면 서촌이 펼쳐진다. 2번 출구에는 9번 마을버스 노선을 따라 다양한 개성의 가게들이, 3번 출구에는 미술관과 화랑이 많다. 경복궁 동쪽의 북촌에는 사대부가, 서쪽의 서촌에는 주로 중인들이 살았다. 도화서의 화원, 역관, 궁궐의 내시, 의원 등이 당시의 중인들이었다. 이들은 조선시대의 마이너리티였다. 자의식이 강하고 개방적이었다. 그 문화가 현재의 서촌에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서촌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다. 청와대의 앞길과 인왕산이 시민들에게 개방되지 않아서였다. 이 둘이 모두 개방됨으로써 서촌은 아연 활기를 띠게 됐다. 등산로의 입구이자 산책길과 문화 탐방로로 변모했다.

서촌에는 재래시장이 둘 있다. 지하철에서 먼 통인시장과 지하철 2번 출구에서 가까운 금천교시장(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이 있다. 주민들의 이용이 활발했던 통인시장과 달리 예전의 금천교시장은 사람들의 내왕이 적었다. 가까운 인왕산 국사당에서 굿을 지내고 남은 돼지머리를 값싼 술안주로 파는 가게가 하나둘 있었을 뿐이다.

상전벽해가 이뤄졌다. 금천교시장길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다. 인왕산이나 북한산의 등산객들뿐 아니라 퇴근길의 젊은 여성들도 눈에 많이 띈다. 근처에 철학아카데미가 있어서 진지한 선비풍의 얼굴들도 자주 출몰한다. 이들은 조선 후기에 서촌에 몰려 살았던 실학자들의 후예인지도 모른다. 화랑과 개인 아틀리에가 많기에 젊은 미술인들도 발길이 잦다. 조선시대 화원의 디엔에이(DNA)가 이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서촌은 미술의 현장이 꾸준히 이어진 동네다. 조선시대 화원에서부터 근대를 살았던 화가들에 이르기까지. 그 대표적인 인물이 서촌의 역관 집안 출신인 서양화가 이승만(1903~1975)이다. 서촌 옥인동 집에 이제창·윤희순·김중현 등 서양화가들이 모여 아지트를 이루었는데 이를 옥동패라 했다. 이웃에는 동양화가 이상범(1897~1972)·노수현(1899~1978) 등이 살았다. 누하동 이상범의 집은 문화 탐방지로 관리되고 있다. 옆집은 동양화가 천경자(1924~2015)의 집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최근 새 건물을 짓느라 철거되고 말았다. 동양화가 박노수(1927~2013)의 집 역시 종로구가 관리하는 유명한 탐방지가 됐다. 배우 이민정은 그의 외손녀다.

서촌은 어딜 가도 역사가 느껴진다. 좁은 골목 사이로 고개를 내미는 인왕산이 매력적인 원경을 이루어 준다. 옛 서울의 아기자기한 원근법이 살아있다.

서촌의 몇몇 건물은 탈바꿈했다. 보안여관은 1930년대에 시작해 2004년까지 영업을 했다. 1936년 서정주는 김동리·함형수 등과 함께 보안여관에 장기 투숙하며 문학동인지 ‘시인부락’을 만들었다. 광복 이후에도 지방의 문인들이 상경하면 보안여관을 찾았다. 폐업 이후 보안여관은 전시공간으로 변모해 미술인들의 활동 본거지가 됐다. 전시장 바로 옆에 최근 새로 생긴 보안스테이의 객실에선 창 너머로 경복궁이 내려다보인다. 힐링을 위한 도심 속의 조용한 숙소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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