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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 병영칼럼] 통장에 월급이 스치운다

입력 2019. 03. 13   16:55
업데이트 2019. 03. 13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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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 국방FM 작가
김경 국방FM 작가


얼마 전, 한 청취자의 신청으로 알게 된 노래가 있다. 스텔라장의 ‘월급은 통장을 스칠 뿐’. 가수가 회사 생활을 해보지도 않고 이런 노래를 썼다면 일종의 배신감이 들겠지만, 스텔라장 그녀도 화장품 회사에서 6개월간 인턴 일을 했단다. 어쩐지 노래에 진정성이 있었다.

맞다. 월급은 통장을 스칠 뿐, 머문 적이 없었다. 마치 결혼한 딸네 집에 가끔 왔다 가는 아빠 같았다. 물론 나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지만, 상상해보니 그렇다. 자식을 아끼는 마음에 찾아는 왔지만, 괜한 어색함과 특유의 서두름을 못 이겨 금세 집으로 돌아가는 아빠. 세상 수많은 ‘스치고 지나가는 것’들을 두고, 월급과 아빠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는 건 참 ‘웃픈’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벌기 위해 쓰고, 쓰기 위해 버는 인생을 살고 있다. 뭣 모르고 까불던 20대 초반엔 참 순수했었다. 돈은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부가적으로 따라오는 2순위라고 생각했다. 그런 나의 가성비 좋은 신조를 회사 사장님들은 참 좋아했다. ‘자네는 요즘 젊은이답지 않아서 좋아~’라는 욕도 칭찬도 아닌 추임새도 덧붙여줬다.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 사전은 이것이 ‘노동’이라고 정의한다. 노동을 하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로 돈이 온다. 돈은 통장에서 통장으로 입금되고, 입금됨과 동시에 통장을 스쳐 또 다른 통장으로, 통장에 통장을 거쳐 돌고 돌아 다시 내 통장을 스쳐 또 다른 통장으로 간다. 마치 무정차 특급 열차마냥 온갖 통장이란 통장을 스치며 일생을 다하는 게 돈인가 보다. 때로는 그도 머물고 싶을 텐데, 한 번쯤은 정착하고 싶기도 할 텐데 분명 역마살이 끼어도 단단히 낀 놈이 틀림없다.

왜 우리는 돈에게 머물 기회조차, 여유조차 주지 못했을까? 그중의 하나로 ‘홧김 비용’을 꼽고 싶다. 화나 짜증이 났을 때 스트레스를 풀고자 지출하는 돈, 단적인 예로 이런 것들이 있다. 고된 퇴근길, 매일 타는 지하철과 버스를 두고, 가뜩이나 요금이 인상된 택시 타기. 일에 치여 추레한 내 모습을 위로하며 고가의 전자기기나 명품 가방 지르기. 평일엔 빵이나 삼각 김밥으로 급하게 끼니를 때우더라도 주말만큼은 친구를 만나 미슐랭 식당에서 2시간짜리 코스 요리 먹기. 물론 ‘인생이라는 난코스를 두고 끼니마저 코스 요리를 먹어야겠냐’만은 말이다.

사실 우리 어릴 때만 해도 돈은 무조건 아껴야 되는 것이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가장 잘 팔리던 인기 상품도 용돈 기입장이었고, 그 당시 인기 프로그램 중 만원으로 행복하게 일주일을 살아보자는 취지의 한 챌린지 프로그램은 5년이나 장수했다. 지금은 만원으로는 밥 한 끼에 프라페 한 잔도 못하는 세상이지만, 그땐 아끼면 잘 살고, 아꼈으니 잘살고 있다는 것이 증명되는 시절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앞으로도 나는 한동안 돈으로 감정을 해소할 것 같다. 그래 봤자 대단한 소비를 하는 것도 아니지만, 언제나 돈은 옳다. 정당하게 일하고 받은 돈으로 남한테 피해만 끼치지 않는다면, 어떤 식의 소비습관이든 타인이 왈가왈부할 자격은 없다. 혹자는 일정 금액의 비용을 써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위로받는 것이 반대로 꾸준히 돈을 모을 수 있는 길이라고도 말한다. 그래, 이러나 저러나 스치는 인생, 그저 위로받기 위해 더욱 열심히 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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