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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美 INF 조약 탈퇴와 북미 비핵화 협상의 전략적 상관관계-하노이 회담 결렬과 국제 권력정치의 변화

입력 2019. 03. 08   15:18
업데이트 2019. 03. 09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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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 Periscope 제152호(한국해양전략연구소 발행)


최 정 현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세간의 주목을 끌었던 하노이 회담이 별다른 합의 없이 결렬되었다. 이번 회담의 결과와 관련하여 대북제재 일부 또는 전면해제를 두고 북-미 간 진실공방과 책임 전가, 양보의 등가성 문제, 미국이 요구한 영변+α 조치와 북한이 제시했다는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실험의 영구중지를 명시한 문서 확약 의사, 폐기와 제재 해제를 둘러싼 합의 조건의 선후문제 등 다양한 쟁점들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회담에서 겉으로 드러난 결과보다 기저에 형성된 근본 동인인 세계 권력정치의 변화에 대한 파악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특히, 북한 비핵화와는 연관성이 적어 보이는 미국의 INF 조약 탈퇴가 이번 하노이 북미정상회담뿐 아니라 향후 북한 비핵화 협상 과정에 미치는 직·간접적 영향을 심도 깊게 통찰할 필요가 있다. INF 조약 폐기를 군축 레짐들 중 단지 일개 조약의 이행중단으로 한정하는 것은 올바른 이해가 아니다. 현 국제체제의 패권국과 주요 강대국들의 글로벌 국제정치와 안보전략, 궁극적으로는 북한 비핵화 과정에서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핵심변수로 파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첫째, INF 조약 탈퇴로 미국은 전 세계에서 전략적 입지를 강화하는 한편 아태지역에 대해서도 전략적 효과성을 증대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그동안 INF 조약으로 인해 미국이 보유할 수 없었던 사거리 500∼5,500㎞의 지상발사 탄도 및 순항미사일을 앞으로는 자유로이 개발·시험하고 전 세계 어디든지 배치할 수 있게 된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를 통해 미국은 세계전략의 양대 축인 유럽과 아시아에서 동시에 유리한 전략환경을 조성할 수 있게 되었다. 유럽에서는 단·중거리 핵전력을 미국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증강할 수 있게 된 러시아로 인해 NATO 회원국들의 안보불안감이 상승될 것으로 보인다. 심화된 불안감은 NATO 회원국들이 미국으로부터의 지원에 대한 전략적 민감성을 더욱 증폭시키고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강력히 주문한 유럽의 안보분담 비중과 미국산 무기수입 증대를 유인할 여건을 형성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보다 강화된 핵전력을 통해 패권적 지위에 대한 중국의 도전을 더욱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게 된다.


INF 조약은 과거 미국과 구소련 간 특정 범주(단중거리 핵전력)의 무기체계를 전량 폐기하는 역사 최초이자 가장 성공적인 군비통제 조약으로 이를 통해 미·소 간 핵균형이 유지되었다. 그러나 탈냉전 후 미국이 INF 조약으로 묶여 있는 동안 중국은 자유롭게 단·중거리 핵전력을 대폭 강화하였기에 미-중 패권경쟁 시대에는 INF 조약이 미국에게 점차 올무가 되고 있던 터였다.

둘째, 아태 지역에서 단·중거리 분야 핵전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된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에 대한 위협을 더욱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북한 비핵화에 대해 전략적으로 더욱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즉, 미국이 하와이·괌·일본 전역 등 각지에 핵탄두를 탑재한 중·단거리 탄도·순항미사일에 즉각적으로 발사할 수 있는 태세를 구비할 수 있게 된 것은 북한의 비핵화 협상에 강력한 압박으로 작용한다.


이전에는 미국의 대북 핵전략에 있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는 비교적 근거리(500∼5,500킬로미터 범주)의 핵·재래식 지상발사 탄도·순항미사일은 결여되어 있었다. 유사시 북한에 대한 핵공격은 미국 본토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또는 불상 위치의 핵잠수함/전략폭격기의 플랫폼에만 의존해야 하는 매우 제한된 구조였던 것이다. 게다가 미국이 보기에 북한은 이미 핵실험을 중단했고,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도 자제되고 있어 비확산과 위기관리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마련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현재 수준의 대북 제재만으로도 북한 경제에 막대한 타격이 되는 만큼 북한이 다시 핵실험을 강행하거나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벼랑끝 전술을 재개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그동안 미국은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에 대한 구체적인 방어전략을 수립하는 한편, 극초음속 미사일(Prompt Global Strike) 개발과 미사일방어체계(MD) 등 공격·방어용 무기체계를 동시에 증강하면서 작전적 수준의 핵 대응태세를 더욱 견고히 하고 있다.

셋째, 북 비핵화 협상의 지렛대(레버리지)는 점차 미국쪽으로 옮겨지고 있다. 만약 이번 회담에서 미국이 북한에 양보했다면 단기적으로는 협상의 물꼬가 트이겠지만 장기적인 측면에서 비핵화 협상은 결국 파국을 초래할 형편이었다.


즉, 향후 영변 외 지역(강선 등)에 새로 건설된 핵시설들에 대한 신고와 검증은 대북 제재의 전면적 해제와 테러지원국 해제가 있어야 성사되는 구조가 형성되고, 그 이후 핵무기의 운반수단인 탄도미사일과 발사체의 신고와 폐기에 대한 협상은 정전종식과 평화조약 체결로 맞바꾸며, 북한이 가진 핵탄두의 부분적 폐기는 주한미군 철수와 맞바꾸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될 개연성이 컸다.


미국은 1990년대부터 북한이 보여 온 ‘먹튀식’ 핵협상에 더 이상 속지 않고 북한의 의중을 간파할 수 있는 충분한 경험을 쌓았으며 INF 조약 탈퇴로 보다 강력해진 ‘주먹’까지 얻어 북한이 미국의 기대에 부응하는 비핵화 카드를 들고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반면, 북한은 갈수록 협상의 수세에 몰리면서 원하는 협상결과를 얻기 위해 사용할 카드와 활용할 전략적 선택방안(옵션)이 줄어들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공교롭게도 미국의 INF 조약 탈퇴로 인해 새롭게 형성되는 비핵화 협상의 구도에 대해 주변 4강의 이해(利害)는 대립보다는 일치하는 면이 많다. 일본은 본토에 미국의 단·중거리 핵무기와 MD 체계를 수용하면서 미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핵전력 분야로까지 확대하는 한편 미국에 의한 보다 강력해진 핵우산에 기댈 수 있다.


이러한 환경은 정상국가로서 군사대국화를 지향하는 아베정권의 국내정치적 입지를 강화시켜 주는 호재로도 작용할 수 있다. 러시아는 미국 핵전략의 중심이 아태지역으로 본격적으로 이동하게 됨에 따라 유럽지역에서 자국의 전략적 지위를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한편, 불편한 동반자 관계인 중국의 핵전력 증강에 대해서도 러시아의 단·중거리 핵전력 확충을 통해 상쇄할 수 있게 되었다. 중국에게 이러한 변화는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 아태 지역에서 미국이 더욱 공세적인 핵전략을 통해 대(對) 중국 견제의 수위를 높이는 것은 분명 반가운 소식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비핵화 교착상태에 봉착한 북한과 미국에 또다시 중요한 역할을 행사할 기회를 얻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유지되는 가운데 비핵화 협상은 난항을 거듭할 때 북한은 더욱 중국에 의지하게 된다. 이는 북한의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되고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향후 한반도 평화정착과 통일 과정에 있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우리에게는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기도 하다. 


당장은 북한과의 실무협상 계획이 없다는 폼페이오 장관의 언급은 미-북이 명백한 교착상태에 봉착했음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이번 협상에서 북한이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하에 공동작업으로 영구적·완전 폐기를 제시했었다는 점은 향후 비핵화 협상에서 북한의 협력이 가능할 수 있는 실마리를 암시하기도 한다.


INF 조약 탈퇴로 미국은 앞으로 더욱 공고해진 입지로 과거 INF 조약 협상 때 구소련에 사용한 ‘이중노선(dual track)’ 전략― 즉, 핵전력 증강을 바탕으로 미국이 희망하는 방식의 비핵화를 위해 강력히 압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맥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이제는 북한 비핵화 협상을 한반도와 동북아― 특히 미·북·중 3국에 국한된 단편적이고 닫힌 시각을 벗어나 범세계 차원의 강대국 전략이라는 입체적 관점에서 복합적인 역학관계를 통찰할 경우에만 비로소 시대변화에 부합하는 다각적 외교전략과 다차원적 외교방책이 구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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