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완결 문화산책

[김현숙 문화산책] 그림을 보면서 받는 위로

입력 2019. 02. 21   17:06
업데이트 2019. 02. 21   17:10
0 댓글

김 현 숙  서양화가
김 현 숙 서양화가



최근 몇 년간 이어온 ‘딸과의 산책’ 시리즈인 내 작품 속의 딸과 엄마는 나와 나의 딸, 나의 엄마와 딸인 나, 그 누군가의 엄마와 딸, 우리 모두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엄마와 딸의 관계는 딸이었다가 엄마가 된 사람의 관계다. 너무 뻔한 말이지만 딸이 엄마가 되는 체험을 강조한 말이다. 가장 사랑하면서도 표현에 인색하고, 서로 닮았으면서도 인정하지 않고, 헌신하는 엄마를 존경하면서도 화내는 미묘한 애증관계인 자매 같은, 친구 같은 관계가 엄마와 딸이다. 그렇게 끈끈한 사랑의 힘으로 꿋꿋하게 세대를 이어가는 그 딸과 엄마들에게 위안을 주는 주제를 대하소설처럼 그림 속에 담고 있다.

서울 코엑스에서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전시 중, 이틀째 연일 작가를 꼭 만나고 싶다며 찾아온 그녀와의 첫 만남이 있었다. 그녀는 만나자마자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당황한 나는 생각했던 작가 이미지가 아니어서 실망했느냐고 물으며 대화를 시작했다. 그녀는 임신 중이었고, 아이는 딸이란 걸 미리 알고 있었고, 그녀만의 힘든 알 수 없는 상황이 있는 듯했다. 다만 그녀는 내 작품에서 딸이 엄마에게 꽃을 주는 장면이 너무 아름답고 감동적이라며 이미 딸에게 꽃을 받은 엄마처럼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이유도 모르면서 나조차 눈물을 머금고 말았다. 그녀는 힘든 상황에서 자기의 딸을 건강하게 낳아 혼자서 잘 키울 수 있게 내 작품의 기운을 받고 싶다며 안아달라고 했다. 내가 그런 주제가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꼭 안아주었다. 그녀에게 나의 뜻이 온전하게 전달됐다니 오히려 내가 위로와 감동을 받았다.

나의 작품과는 전혀 다르지만, 엄마와 딸이 중심 소재란 점이 같은 미국의 인상주의 화가 메리 카사트의 작품을 보면 너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삶의 위로를 받게 된다. 엄마와 딸의 평범한 일상을 담담하게 표현한 많은 작품을 보면 모성애 화가라는 별칭이 잘 어울리는 작가다. 카사트의 ‘아이의 목욕’은 아이가 엄마 무릎에 앉아서 발을 씻어주는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인다. 멈춰 있는 한 장면의 그림이 한 편의 드라마나 동영상처럼 보인다. 엄마와 아이가 나누는 대화가 들리는 듯하고 앞뒤로 이어진 상황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하고 엄마에 대한 애틋한 추억을 되새기게 한다.

한 작품 앞에서 떠나지 못하고 머물며 더 많은 이야기를 읽어내게 하는 작품의 힘은 엄청나다. 전시장에서 한 작품 앞에 오래 서 있는 관람객을 보게 되면 내가 카사트의 엄마와 딸의 그림에서 위로받듯이 같은 느낌인지 궁금해진다. 작곡가 지망생인 어떤 소녀는 한 작품 앞에 오래 서 있다가 자신의 작품 영감을 받고 떠나거나, 어떤 이는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구상하며 화가의 꿈을 키우기도 한다. 또 어떤 중년 부부는 손을 꼭 잡고 마음에 쏙 드는 작품 앞에서 자신의 집 구석구석 벽에 붙이는 소장의 꿈을 가지며 행복해하기도 한다. 나의 작품 창작의 궁극적 목표인, 많은 사람이 내 작품 앞에서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실현되는 순간들이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