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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순례] 수원 화성, 정조의 꿈 을 만나다

기사입력 2019. 01. 25   09:53 최종수정 2019. 03. 06   16:27

■ 화성 華城은?

우리나라 성곽의 꽃이자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수원의 화성(華城)은 정조 18년(1794년)에 축성이 시작 되어 2년 뒤인 1796년에 완공됐다. 정조의 효심, 즉 사도세자의 아들로 비통하게 죽은 아버지의 복위를 위한 효심이 축성의 기본이 됐다. 또한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정조의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겨있다.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연무동에 위치한 이 성은 둘레가 5,744m, 면적은 18만 8040㎡에 이른다. 다산 정약용이 설계했으며 당시의 신기재인 거중기와 활차 등을 활용해 축성됐다. 특히 화살과 창검을 방어하는 기본적인 구조 외에도 총포를 막을 수 있는 근대적인 성곽의 구조를 갖춰 혁신적인 형태의 성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화성은 둘레 5,744m, 면적 18만 8040㎡의 규모이다.

포루(砲樓)는 군사들의 대기 시설이다. 휴식장소로도 쓰였으며 유사시에는 감시하고 공격하기 위한 누각이다. 밑에는 돌로 쌓고 중간부분부터는 벽돌로 축조했다. 각루(角樓)는 군사들이 주변을 감시하기 위해 비교적 높은 위치에 세워져 있다. 화성에는 총 4개소가 있다. 위 사진 왼쪽부터 동북포루-동북각루-화홍문으로 이어진다. 

동북포루(위 사진)는 각건대(角巾臺)라고도 불린다. 선비들이 쓰는 각건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동북각루(東北角樓 위 사진)는 방화수류정(訪華隨柳亭)으로 불린다. 화성 동북쪽에 군사적 용도로 세운 것으로 화성에서 가장 뛰어나며, 다른 성곽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성 있는 건축물이다. 루 아래 아담한 연못인 용연(龍淵)이 어우러져 화성의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 남측, 동북각루(東北角樓) 동쪽에 약간 골짜기진 곳, 눈에 잘 뜨이지 않는 곳에 북암문(北暗門)이 있다. 성밖에서 잘 보이지 않듯 암문은 적이 알지 못하도록 만든 출입구 역할을 한다. 사람이나 가축이 통과하기도 하지만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화성에는 암문이 5곳 있다.

화성의 동문으로 화홍문(華虹門, 北水門)이 있다. 성문 왼쪽 화강석 벽에 글씨가 선명한 실명판이 눈에 띈다. 방화수류정과 함께한 야경을 담았다. 아래 사진은 화성 안쪽에서 바라본 전경 중 일부다. 앞쪽부터 북동포루-화홍문-동북각루-동북포루.


팔달문(위)과 함께 화성의 대표적 건축물이 장안문(아래)이다. 화성의 정문으로 성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 형태는 팔달문과 거의 비슷하며 서울의 숭례문보다 더 큰 웅장한 모습을 자랑한다. 장안문으로 들어가기 전 옹성의 문 위로 그려진 용의 그림(아래)이 인상적이다.

    


서북 공심돈(西北 空心墩)은 정조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든 것이니 마음껏 구경하라"고 했을 만큼 독창적인 건축 형태로서 역사적·학술적·건축적 가치가 높고, 화성에서만 볼 수 있다. 성 밖의 적 동향을 살필 수 있고 공격할 수도 있다. 치성(雉城)인 아래쪽 부분은 석재로 쌓고 위쪽 벽체는 전돌로 쌓았다.

‘화양루(華陽樓)’ 라고도 불리는 서남각루는 팔달문 왼쪽으로, 남포루와 서포루 사이에 위치해 있다. 6칸으로 남북 약 6.36m, 동서 약 4.24m이다. 이곳은 지형상 우뚝 높은데, 이곳을 공략 당하면 적이 성 안으로 진입하기가 쉬워진다. 이를 막기 위해 각루를 세워 방비한 것이다.

장수가 성곽 일대를 살펴보며 지휘를 하는 곳을 일컬어 장대(將臺)라고 한다. 화성에는 동장대와 서장대(위 사진)가 있다. 팔달산 정상에 있는 서장대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중층 누각이다.


행궁(行宮)은 왕이 지방에 나갔을 때 잠시 머물거나 전란(戰亂) 때 나라일(國事)을 계속 하기 위해 지방에 별도로 마련한 궁궐이다. 팔달산 동쪽 기슭에 자리한 화성행궁은 576칸으로 정궁(正宮) 형태를 이룬다. 

아래 사진에서는 화성행궁의 장락당(왼쪽) 과 봉수당(가운데)이 보인다.



 화성 행궁의 정문이 신풍루(新豊樓)이다. 2층 구조의 6칸 규모 누문(樓門)이다. 최초에는 진남루(鎭南樓)라고 불렸으나 정조의 명으로 신풍루라 이름되었다. 정조 때 관군이 익혔던 24가지 궁중 기예인 ‘무예24기’를 연습하는 모습이 보인다.


사진 = 이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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