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영 과학·미술 칼럼니스트
지난 연말 미국 NBA 농구 스타 카이리 어빙(보스턴 셀틱스 가드)이 뜬금없이 “지구는 납작하다. 눈앞에 놓여 있는 진실이다”라고 말했다. 당장 중·고등학교에서 소란스러워졌다. 학생들이 선생님 설명보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스타의 말을 더 믿으려 했기 때문이다. 어빙이 뒤늦게 사과함으로써 일단락됐지만, 그의 발언 의도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21세기, 그것도 문명국가 한복판에서 어떻게 이런 의심이 가능했을까? 아무래도 역사의 시곗바늘을 2300년 전으로 되돌려 놓아야겠다.
기원전 3세기, 이집트에서 흥미로운 실험이 있었다. 지구 둘레를 재는 인류 최초의 실험이었다.
수학자 에라토스테네스는 하짓날 정오 925㎞ 떨어진 시에네(현 아스완)와 알렉산드리아에 막대기를 각각 수직으로 꽂아놓았다. 시에네에서 생기지 않은 그림자가 알렉산드리아에서 생겼다. 그리고 막대기와 그림자의 사잇각은 약 7.2도였다. 지구 표면이 곡면이라는 증거였다.
이를 근거로 다시 지구 둘레의 값 약 4만6250㎞를 구했다. 실제 측정값 약 4만8㎞와는 약 15%의 오차를 갖는다(네이버 지식백과). 하지만 접근방법이 옳았다. 게다가 지구가 완전한 구체(球體)가 아니며, 두 도시가 경도상 같은 위치에 있지 않았던 점을 고려한다면 당시로선 큰 무리가 없는 값이다.
이로써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까지만 해도 존재했던 ‘지구가 편평하다’는 믿음은 종지부를 찍었다. 그는 지구의 벼랑 끝에 인도와 파키스탄이 있는 줄 알았다고 한다. 따라서 그가 그곳까지 쳐들어간 것은 지구 전체를 정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과학에서는 검증 결과가 같아야 사실로 인정받는다. 그리고 그 검증 도구는 관찰과 실험, 수학적 서술이다. 관찰, 실험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신뢰하기 쉽다. 반면, 수학적 방법은 이해가 어렵다.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위대함은 바로 이 ‘추상’을 이해하는 데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들판에 세워놓은 고인돌을 발견하곤 구석기 시대 문명이라며 시끌벅적하다. 대관절 그 돌덩어리가 무엇이기에? 그러나 우린 여기서 70만 년 전 인류가 죽음이라는 추상적 사실을 인식했다는 점에 유념한다. 인간은 죽음을 알기에 삶의 가치를 돌아보게 된다. 인류 문명에 획기적인 진보가 뒤따랐다.
어빙의 발언은 이 추상화에 대한 불신이다. 나가도 너무 나갔다. 위성사진도 보았을 텐데. 그러나 정도만 다를 뿐, 비슷한 아류는 곳곳에 존재한다.
예를 들어 ‘병사 복무기간이 6개월 준다’는 말을 듣는다고 하자. 그럼 금세 “에이~”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리라. 그러나 3개월이라면? 그것도 이번에 발표된 평일 병사 외출 등 기존의 사실과 버무려졌다면? 믿고 싶어질 것이다. 그렇다. 이런 틈새에 잠복해 있는 것이 미신과 가짜 뉴스다.
뇌는 믿고 싶은 것만 인식하려는 경향이 있다. 눈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귀는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 이때 필요한 것이 과학적 접근방법이다. 교양으로서의 과학,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축을 만들어 준다. 과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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