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전승필 기고]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이 길을

입력 2019. 01. 10   14:23
업데이트 2019. 01. 1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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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필 한국영상대학교 드론영상정보과 겸임교수 ·(예)육군소령
전승필 한국영상대학교 드론영상정보과 겸임교수 ·(예)육군소령

육군훈련소가 지척인 연무대 고향 집에서 29년간 살아온 나는 1999년 4월 3일 육군 제3사관학교에 육군정훈특수사관 19기로 입대했다. 봄기운이 가득했던 오후, 어색한 짧은 머리. 입교식 자리에는 부모님이 아닌 아내가 동행했다. 스물아홉의 늙은 청년은 그렇게 군에 첫걸음을 들여놓았다.

12주의 강도 높은 기초군사훈련은 나를 민간인에서 군인으로, 다시 대한민국 장교로 거듭나게 했다. 임관식에서 받은 임관사령장에는 작은 글씨의 내 이름과 군번 밑에 큰 글씨로 “육군 소위에 임함”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이제부터 나는 작게, 국가와 군은 크게. 군을 위해 살라는 말이구나!’ 가슴이 벅차올랐다. 3단어의 글귀는 대한민국 육군 정훈장교로서 청춘을 불사르는 도화선이 되었다.

정훈장교로서의 전문성을 높인 육군종합행정학교 초군반 교육 수료 후 7사단 GOP대대 정훈과장으로 첫 임무를 수행했다. 단 한 명뿐인 정훈병과 함께 노래방기기와 스피커를 1시간 넘게 손으로 운반하면서 소초의 날 행사를 통해 소초원들을 위로하고 정신교육을 했다. 병사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힘든줄도 모르고 중동부 전선 험준한 산악의 눈 쌓인 계단을 오르내리며 각 소초를 순회했다.

훈련소와 부사관학교, 정보통신학교, 국방정신전력원 정신교육 교관으로 재직할 때는 교육받는 장병들의 눈높이에 맞는 교육프로그램과 교재개발에 전념했고, 교육성과를 향상하기 위해 교육방법을 다양화하며 전력을 다했다. 그리고 훈련소와 30사단, 수도군단 공보장교 재직 시에는 ‘국민과 군의 창문 역할’을 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군을 왜곡하지 않고 언론사 기자들을 통해 올바로 알리는 일에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1군수지원사령부와 36사단 재직 시에는 정신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군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태스크포스(TF)로 파견돼 ‘제1야전군의 특성을 반영한 집중정신교육 프로그램 제작 및 교관 순회교육’을 했다. 강원도 전 지역에 흩어져 있는 부대를 순회하면서 중(소)대장 교관의 정신교육 준비 부담을 최소화하고, 정신교육은 재미있고 보람 있는 것이라는 공감대를 확산시키며 교육성과를 향상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불꽃처럼 군 복무 기간을 살고 먼저 전역한 수많은 선배 전우처럼 나도 19년6개월의 군 복무 기간을 마치고 명에 의해 퇴역했다. 우리 군과 정훈병과는 내가 30~40대 청춘 20년을 바쳐 국가를 위해 공직자 군인으로서 헌신할 소중한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뒤돌아보니 부족함이 많은 정훈장교였음에도 국가와 군 조직은 나를 과분할 정도로 사랑해 주었다. 고개를 숙인다. 감사할 뿐이다.

어제 저녁 식사 후 산책을 하는데 아내가 내게 물었다. “다시 태어나면 어떤 직업을 갖고 싶어?” 나는 잠시 후 대답했다. “응, 다시 태어난다 해도 군인의 길을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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