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영화로 본 전쟁사

오스트레일리아 병사는 소모품이었다

입력 2018. 12. 24   17:53
업데이트 2018. 12. 25   12:17
0 댓글

<47·끝> 갈리폴리(Gallipoli), 1981 감독: 피터 위어/출연: 마크 리, 멜 깁슨


1차 대전 중 가장 격렬했던
갈리폴리전투 배경
오스트레일리아 병사들의
숭고한 정신·우정·희생 그려

 
영국 위해 자원입대한 순수 청년들
수뇌부의 그릇된 판단으로
총알받이로…전쟁의 참담함 보여줘  

 영화 ‘갈리폴리’는 1차 대전 중 가장 격렬했던 갈리폴리전투에 참전한 오스트레일리아 청년들 이야기다.  사진 출처=파라마운트 픽처스
영화 ‘갈리폴리’는 1차 대전 중 가장 격렬했던 갈리폴리전투에 참전한 오스트레일리아 청년들 이야기다. 사진 출처=파라마운트 픽처스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5년 영국·프랑스 등 연합군과 독일·오스만제국(터키)이 다르다넬스해협 갈리폴리 반도에서 벌인 싸움이 갈리폴리전투다.

영국은 지중해를 장악하고, 같은 편인 러시아와 협력해 독일을  협공하기 위해선 전략적인 요충지 갈리폴리가 절대 필요했다.

영국 등 연합군은 1915년 2월  다르다넬스해협의 터키군 포대를 포격했다. 하지만 터키군의 반격과  기뢰 등으로 오히려 영국 함대가  대파됐다. 이로 인해 윈스턴 처칠은  해군장관직에서 물러난다.

영국군은 4월 다시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병력이 주축인 앤잭 부대 (ANZAC·Australia and New Zealand Army Corps) 등 7만 명을  갈리폴리에 상륙시켰다.

하지만 독일군과 무스타파 케말 휘하 터키군의 선방으로 실패했다.

이 전투로 오스트레일리아 병사 8600명이 전사하고 2만 명이 부상하는 등 25만 명의 연합군 사상자가 발생했다. 


터키군도 21만 명이 사상했다.  결국 영국 등 연합군은 갈리폴리에서 철수했다.



영화 ‘갈리폴리’는 1차 대전 중 가장 격렬했던 갈리폴리전투에 참전한 오스트레일리아 청년들 이야기다. 영국군에 편입돼 터키군과 싸웠던 오스트레일리아 병사들의 숭고한 정신과 우정, 희생을 그렸다. 당시 영국군 등 연합군 내에서 오스트레일리아군이 처한 입장과 처지가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는 호주 영화다.

1915년 오스트레일리아 서부 시골 목장에 살고 있는 아치(마크 리)는 단거리 달리기 선수다. 마을 달리기 대회에 출전해 우승한 그는 역시 단거리 선수인 프랭크(멜 깁슨)와 함께 군대에 지원한다. 하지만 18세밖에 되지 않아 떨어진다. 이에 굴하지 않고 아치는 프랭크와 함께 우여곡절 끝에 군에 입대, 갈리폴리 전선에 배치된다.

하지만 전선은 터키의 철통 같은 방어로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레일리아군에 공격명령이 떨어진다. 처칠 해군장관이 총지휘하는 영국군의 상륙을 돕기 위해 오스트레일리아군이 먼저 터키군의 진지를 공격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공격이 시작되고 오스트레일리아군은 참호 속에서 뛰어나가지만 터키군의 기관총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한다. 아치는 빠른 걸음 덕분에 다행히 연락병으로 차출되지만 겁먹은 프랭크에게 양보한다. 하지만 전선 상황을 모르는 지휘부는 다시 공격명령을 내린다.



영화는 갈리폴리전투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본격적인 전쟁 이야기는 중반 이후에 나온다. 그전까진 육상의 라이벌이자 친구인 아치와 프랭크, 친구 등 5명 간의 우정과 패기를 보여준다. 이상주의자인 순수한 청년 아치는 사실상 ‘남의 나라’인 영국을 위해 자원입대하고, 거칠지만 밝은 청년 프랭크 역시 친구 3명과 함께 장교가 돼 돌아오겠다는 꿈을 안고 적진으로 향하는 모험이자 여정이다.

영화는 ‘아름다운’ 젊은 병사 아치의 순수한 이상과는 달리, 전쟁의 참담함을 보여주면서 최전방에서 지휘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하게 한다. 영화 종반, 죽음이나 다름없는 마지막 공격을 앞둔 아치는 자신이 고향에서 달리기 시합에 나가기 전에 주문처럼 되뇌던 “네 다리는 뭐지? 강철 스프링입니다. 그걸로 뭘 할 거지? 트랙 위를 달릴 겁니다”란 말을 최면 걸 듯 중얼거리며 참호 밖으로 나와 공격한다. 동료 병사들도 참호 벽에 칼을 꽂아 유품을 걸어놓기도 하고, 아내에게 편지를 쓰고, 마지막 기도를 하며 옆의 동료와 포옹하고 적진으로 돌격한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지휘관은 더 이상의 공격은 자살 행위라는 참호 속 장교의 말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영국군 입장만을 앵무새처럼 대변한다. 애국 충정에 불타는 젊은 오스트레일리아 병사들이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수뇌부의 그릇된 판단 때문에 전사했다는 것이다.

갈리폴리전투는 영화로 많이 만들어졌는데, 승자인 터키가 ‘갈리폴리: 최악의 상륙작전’ 등 3편을 제작했고 러셀 크로가 주연·감독한 할리우드 영화 ‘워터 디바이너’도 있다.

영화는 당시 오스트레일리아군이 거의 전멸한 것으로 나온다. 실제로도 그랬다. 왜 이런 참상이 벌어졌을까? 영국군 수뇌부가 오스트레일리아군을 업신여겼기 때문이다. 영화 중반, 주인공의 전우들이 카이로에 외출 나와 나귀를 타고 흥겹게 놀며 “영국이 원하면 우리가 돕는다”라고 노래한다. 말을 탄 영국 장교가 이를 보고 “오스트레일리아군은 무례하고 예의가 없다”고 하고 다른 장교는 “뉴질랜드 병사는 더해”라며 조롱한다. 최전선 참호에서 터키의 기관총이 난사되고 있는데도 상부의 지시를 받은 장교는 “총알은 없다, 총검뿐이다”라며 공격명령을 내린다. 오스트레일리아군은 영국군의 상륙을 위한 일회성 소모품이었다. 총알받이나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현대전 역시 국가 간의 연합 및 연대가 이뤄진 가운데 전쟁을 치를 것이다. 그럴 경우 우방국들 사이에서도 국가적인 위상이 고려된다. 같은 편끼리라도 병사들의 대우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대우가 자국 병사들의 생명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국가 지도자일수록 상급자일수록 더 똑똑해야 한다는 전쟁사의 교훈이다.




#그동안 영화 속 전쟁 이야기를 사랑해 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연재 동안 군을 많이 생각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하세요.
영국군에 편입돼 터키군과 싸웠던 오스트레일리아 병사들의 숭고한 정신과 우정, 희생을 그렸다.


<김병재 영화평론가>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