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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선 병영칼럼] 남자의 이벤트

입력 2018. 12. 12   10:56
업데이트 2018. 12. 12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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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정 선 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 작가
조 정 선 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 작가


한창 연애하고 있는 노총각 후배에게 무엇이 가장 고민이냐고 물었더니 바로 “이벤트”란다! 어린 여자친구가 이벤트를 좋아해서 틈만 나면 이벤트를 해줘야 하는데 한마디로 이제는 아이디어도 달리고, 경제적으로 힘들고, 슬슬 지쳐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지 말고 이제는 좀 덤덤해지라고 했더니, 아직 만난 지 1년도 안 된 사이인데 그럴 수는 없다고 했다. 관계에 더 공을 들이고 싶단다.

남녀 간의 이벤트! 그게 무엇일까?

‘팩트 폭격’을 하자면, 주로 남자의 마음을 여자에게 어떤 행사(?)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과연 사랑의 척도가 될 수 있을까? 물론 때때로는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만난 지 100일째 되는 날, 꽃다발이라도 사오는 게 안 사오는 것보다 낫고, 생일날 노래를 불러주며 축하해 주는 남자를 누가 마다하겠는가? 또 만난 지 285일 됐다고 기념하자는 남자를 누가 싫다고 하겠는가? 285일이라는 그 애매한(?) 숫자는 여자의 마음을 또 얼마나 설레게 하는가? 하지만 모든 일이 그런 것처럼 그것의 남발과 그로 인해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문제인 것이다.

여기에 TV 드라마 작가들도 책임이 있다. 물론 필자도 많이 쓰기는 했지만, 여기서 진실을 밝히자면!

놀이공원을 통째로 빌려 그 여자를 위해 불을 밝히고 회전목마를 돌리는 건 돈을 많이 쓴 것일 수는 있어도 ‘사랑’은 아니다!

차 트렁크를 열자 수백 개의 풍선이 날아가는 건 재밌는 일이기는 하지만 ‘사랑’은 아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건 근사한 일이기는 하지만 ‘사랑’은 아니다!

‘진짜 사랑’은 훨씬 더 평범하고 때론 누추하며 작고 보잘것없는 곳에 있다.

겨우 커피 한 잔을 들고, 몇 시간째 한강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커플에게서 나는 진짜 사랑을 본다. 싸우고 난 뒤 자존심 때문에 절대 먼저 전화 안 하고 있는데 용기 내어 먼저 전화 걸어주는 연인에게서 진짜 사랑을 본다! 정말 못 볼 것 다 보고 헤어지는 마당에도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에서 진짜 사랑을 본다.

어쩌다가 우리 시대의 사랑이 놀이동산을 빌리고, 명품을 선물하고, 하늘에 풍선을 띄우고, 밤에는 폭죽을 터뜨리고, 틈만 나면 있는 무슨 기념일에 초콜릿이나 사탕을 선물하는 것으로 변질했는지 모르겠다. 유난을 떠는 데에는 어떤 공허함과 불안이 숨겨져 있게 마련이다. 어떻게 ‘사랑’할 줄 모르니, 한 번도 자신이 하는 ‘사랑’에 대해 독자적인 사유를 가져본 적이 없으니, 남들이 하는 대로, 자극적인 대중매체가 이끄는 대로 ‘사랑’을 할 뿐이다. 어쩌다 ‘사랑’마저도 프랜차이즈 되었단 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각종 행사와 이벤트가 많은 12월! 이 땅의 모든 연인이 새로운 이벤트의 아이디어에 골몰해 서로 스트레스받지 말고, 그저 담백하니 두 손을 잡고 걸으며 우리가 보낸 지난봄이, 너무나 더웠던 여름이, 단풍같이 아름답던 가을이, 그리고 이 해의 마지막인 오늘이 서로에게 어떤 의미였고, 얼마나 소중한지를 소곤소곤 얘기해보는, 따뜻한 겨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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