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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없는 한반도의 평화수도를 꿈꿉니다

정호영

입력 2018. 12. 11   16:43
업데이트 2018. 12. 11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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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 군사고장 순례 - 경기도 파주시


1972년 실향민들 위해 건설된 전망대 ‘임진각’
남북 정상이 만나 한반도 평화 논의한 ‘판문점’
북에서 포로 1만2773명 건너온 ‘자유의 다리’ 등
안보명소와 전원적 풍광 어우러진 군사도시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파주 서쪽의 철책 경계초소. 파주시가 전방임을 실감나게 해준다. 한재호 기자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파주 서쪽의 철책 경계초소. 파주시가 전방임을 실감나게 해준다. 한재호 기자
 
경기도 파주시가 통일한국을 준비하는 한반도의 평화수도로 주목받고 있다. 파주시는 최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한 남북의 평화의지와 맞물려 관심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는 군사고장이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북한 땅과 가장 가까운 파주는 군사적으로 가장 첨예한 곳이면서도 평화 시 남북 간에 교류가 가장 활발할 수 있는 지정학적 요충지다. 대한민국 안보1번지인 파주시로 여행을 떠나보자. 그곳에서 남과 북의 긴장과 갈등을 허물고 한반도 평화수도로 거듭나려는 통일의 염원과 평화의 따뜻한 기운을 느껴보자. 

파주시 안보명소인 임진각 전망대에서 바라본 전방의 모습. 한재호 기자
파주시 안보명소인 임진각 전망대에서 바라본 전방의 모습. 한재호 기자


둑 위의 마을, 파주

파주시는 수도 서울과 멀지 않으면서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서부전선의 긴장감과 전원적 풍광이 어우러진 군사도시다. 북쪽으로는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황해북도 개성시 및 장풍군과 접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한강을 경계로 김포시가 있고, 남쪽으로는 고양시, 동쪽으로는 양주시, 동북쪽으로는 연천군과 경계를 이룬다.

이 지역은 북녘의 산하를 위에 두고 구불구불 흐르는 임진강과 대한민국의 심장을 관통해 흐르는 한강이 서로 만나 서해로 흘러드는 하구에 위치해 있어 예부터 둑과 제방이 많다. 그래서 파주(坡州)는 ‘둑 위의 마을, 둑과 제방이 많은 마을, 또는 둑과 제방 역할을 하는 마을’이란 뜻이다.

파주시의 인구는 약 42만 명이며, 행정구역상 4읍 9면 7동으로 구성돼 있다. 면적은 672.78㎢로 서울시와 안양시 면적을 합한 규모다. 지리적으로는 북서쪽에 임진강이 흐르고 동쪽에는 감악산(紺嶽山·675m), 노고산(老姑山·401m) 등이 양주시와, 남쪽에는 황룡산(135m)·명봉산(248m) 등이 고양시와 경계를 이룬다. 



농촌과 도시가 공존하는 지역


파주시는 1996년 군에서 시로 승격됐다. 1994년 자유로가 개통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자유로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외동 행주대교와 파주시 문산읍 임진각에 이르는 길이 46.6㎞의 고속화도로다.

본래 자유로는 남북통일 후 남북 간의 교류를 촉진하고 수도권 서북부지역의 개발을 유도하며, 한강 하류인 고양·파주지역의 상습 수해를 막기 위해 건설됐다. 오늘날 파주시의 발전을 가져온 일등공신이자 최근 남북 간의 평화 분위기와 맞물려 앞으로 더욱 활용이 기대되는 도로다.

파주시는 농촌과 도시가 공존하는 특이한 지역이다. 북쪽은 북한과 지척인 군사도시이고, 남쪽은 교하신도시 등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도심지다. 서울에서 불과 1시간 안팎의 거리에 있어서 남북관계에 따라 발전의 명암이 엇갈린다.

파주의 대표적인 군사도시는 문산읍과 적성면이다. 이외에도 임진각과 오두산 통일전망대도 파주에 오는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안보명소다.

파주시가 오늘날처럼 발전하기 전에 문산읍과 적성면에서는 휴가나 면회를 나온 군인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서부전선의 육군1사단과 육군25사단, 육군1군단 등 주요 부대가 있어서 전방의 군사도시로서 장병들을 위한 서비스업이 활발했다. 그러나 현재는 문산읍과 적성면에서 전방 군사도시로서의 특색 있는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다. 특히 서울 등으로 운행되는 시외버스터미널이 사라지고 일반 좌석버스로 대체됨에 따라 군인들만의 추억의 공간이 사라졌다.

파주시에서 분단의 현실을 담은 전방의 모습을 찾으려면 오히려 임진각이나 오두산 통일전망대 등에서 엿볼 수 있다. 문산에서 통일로인 1번 국도를 따라 자동차로 끝까지 달리면 마지막 지점에 있는 곳이 바로 임진각이다. 북쪽 정면에는 임진강을 건너는 자유의 다리가 있다. 

 

매일 수천 명의 관광객이 몰리는 임진각


임진각은 분단이 낳은 색다른 관광명소다. 휴일이면 하루에 적어도 1만여 명, 평일에도 수천 명씩 몰려든다. 임진각은 1972년 실향민을 위해 건설된 기념관이자 전망대로, 옥상에 오르면 북한 개성 지역의 송악산까지 조망할 수 있다.

임진각 관광지 동쪽에는 ‘평화누리’ 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조각품, 호수공원, 공연장과 건축이 아름다운 카페 등이 있어서 1년 365일 수많은 여행자들이 찾는다.

한적하기 이를 데 없는 임진강 하류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임진각은 휴전선에서 남쪽으로 불과 7㎞ 떨어져 있다. 통일로의 최북단이며 민간인 출입 북쪽 한계선이고 남북 철도의 중단점이기도 하다. 임진각 옆에는 지금도 “철마는 달리고 싶다”고 외치는, 그때부터 멈춰 서 있는 기차가 있다.

임진각은 지상 3층, 지하 1층, 연건평 2442㎡의 건물이다. 1층과 2층에는 음식점과 기념품 판매점 등이 있고, 3층에는 북한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전시실, 옥상에는 전망대가 있다.

자유의 다리는 6·25전쟁 때 파괴된 것을 휴전이 성립되자 교환포로들을 통과시키기 위해 급히 설치된 가교다. 당시 북쪽에 잡혀 있던 포로 중 1만2773명이 갖은 회유를 뿌리치고 이 다리로 건너왔다. 자유의 다리를 건너 북쪽 깊숙이 들어가면 판문점이 있지만, 허가증이 없는 사람은 들어갈 수 없다.

6·25전쟁이 일어난 다음 해인 1951년 7월 10일, 유엔군과 북한군은 개성에서 휴전회담을 시작했다. 양측은 이어 10월 25일 회담장소를 판문점으로 옮겼다. 이후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정전협정이 조인될 때까지 회담 장소로 사용하던 곳이 바로 판문점이다.

대한민국의 행정구역상으로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조산리에 속하는 판문점은 본래 ‘널문이[板門店]’라는 한 시골 마을이었다. 이러한 판문점이 지난 4월 27일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 한반도 평화를 논의함으로써 세계의 주목을 받는 장소가 됐다.

파주시 적성면 설마리에 위치한 영국군 전적비 부근에 세워진 조형물. 한재호 기자
파주시 적성면 설마리에 위치한 영국군 전적비 부근에 세워진 조형물. 한재호 기자


감악산의 출렁다리 유명세에 인산인해

파주에서 전방 분위기와 전원적인 풍광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대표적인 군사도시는 적성면이다. 적성면은 인근에서 꽤 알려진 교통의 중심지다. 파주시에서 연천군까지 이어지는, 이 일대에서 가장 큰 상권과 시장이 형성돼 있다. ‘인근의 면은 시골이고, 적성면은 도시’란 말이 있을 정도다.

적성면에는 크고 작은 군부대가 많다. 과거 서부전선에서 근무하던 장병들은 휴가 때면 적성공영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탔던 기억을 떠올릴 만큼 파주시의 대표적인 군사도시가 적성이다. 오늘날 적성면은 과거 장병들이 북적거리는 군사도시로서의 명성보다는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고장으로 바뀌었다. 적성면을 찾는 관광객의 대부분은 이 지역의 명산인 감악산에 오르거나 일부는 설마리 영국군 전적비를 둘러본다.

감악산은 예부터 바위 사이로 검은빛과 푸른빛이 동시에 쏟아져 나온다 하여 감악(紺岳), 즉 감색바위산으로 불렸다. 파주시 적성면에서는 어디서나 보이는데, 멀리서 보면 순해 보이지만 일단 정상(675m)에 올라 사방을 살펴보면 암봉과 낭떠러지가 곳곳에 널려 있다. 그래서 가평 화악산, 개성 송악산, 과천 관악산, 포천 운악산과 더불어 ‘경기 5악’의 하나로 꼽힌다.

최근 감악산으로 등산객과 관람객이 몰리는 것은 산 자체의 매력도 있지만, 2016년 9월 20일 건설된 출렁다리의 명성에 기인한 바가 크다. 파주시는 길이 150m, 폭 1.5m 규모의 출렁다리를 설치함으로써 전국적인 명소로 부각시켰다. 매월 약 10만 명 이상이 감악산을 찾음으로써 주말이면 인산인해를 이룬다.

적성면 시내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영국군 전적비도 들러볼 만한 안보명소다. 일명 설마리 전투라고 불리는 영국군의 글로스터 고지 전투는 1951년 4월 중공군의 춘계 1차 공세 때 약 600명의 영국군 대대 장병이 중공군 3개 사단과 혈전을 벌인 처절한 싸움이다. 이러한 투혼이 담긴 설마리 영국군 전적비는 지난 2014년 4월 23일 추모공원으로 새롭게 단장함으로써 일반 시민들의 접근성을 높였다.

파주시에는 우리의 아픈 상처가 담긴 과거와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현재,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를 수놓을 찬란한 미래가 있다.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정호영 기자 < fighter7@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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