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 군사고장 순례 - 경기도 파주시
1972년 실향민들 위해 건설된 전망대 ‘임진각’
남북 정상이 만나 한반도 평화 논의한 ‘판문점’
북에서 포로 1만2773명 건너온 ‘자유의 다리’ 등
안보명소와 전원적 풍광 어우러진 군사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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둑 위의 마을, 파주
파주시는 수도 서울과 멀지 않으면서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서부전선의 긴장감과 전원적 풍광이 어우러진 군사도시다. 북쪽으로는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황해북도 개성시 및 장풍군과 접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한강을 경계로 김포시가 있고, 남쪽으로는 고양시, 동쪽으로는 양주시, 동북쪽으로는 연천군과 경계를 이룬다.
이 지역은 북녘의 산하를 위에 두고 구불구불 흐르는 임진강과 대한민국의 심장을 관통해 흐르는 한강이 서로 만나 서해로 흘러드는 하구에 위치해 있어 예부터 둑과 제방이 많다. 그래서 파주(坡州)는 ‘둑 위의 마을, 둑과 제방이 많은 마을, 또는 둑과 제방 역할을 하는 마을’이란 뜻이다.
파주시의 인구는 약 42만 명이며, 행정구역상 4읍 9면 7동으로 구성돼 있다. 면적은 672.78㎢로 서울시와 안양시 면적을 합한 규모다. 지리적으로는 북서쪽에 임진강이 흐르고 동쪽에는 감악산(紺嶽山·675m), 노고산(老姑山·401m) 등이 양주시와, 남쪽에는 황룡산(135m)·명봉산(248m) 등이 고양시와 경계를 이룬다.
농촌과 도시가 공존하는 지역
파주시는 1996년 군에서 시로 승격됐다. 1994년 자유로가 개통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자유로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외동 행주대교와 파주시 문산읍 임진각에 이르는 길이 46.6㎞의 고속화도로다.
본래 자유로는 남북통일 후 남북 간의 교류를 촉진하고 수도권 서북부지역의 개발을 유도하며, 한강 하류인 고양·파주지역의 상습 수해를 막기 위해 건설됐다. 오늘날 파주시의 발전을 가져온 일등공신이자 최근 남북 간의 평화 분위기와 맞물려 앞으로 더욱 활용이 기대되는 도로다.
파주시는 농촌과 도시가 공존하는 특이한 지역이다. 북쪽은 북한과 지척인 군사도시이고, 남쪽은 교하신도시 등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도심지다. 서울에서 불과 1시간 안팎의 거리에 있어서 남북관계에 따라 발전의 명암이 엇갈린다.
파주의 대표적인 군사도시는 문산읍과 적성면이다. 이외에도 임진각과 오두산 통일전망대도 파주에 오는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안보명소다.
파주시가 오늘날처럼 발전하기 전에 문산읍과 적성면에서는 휴가나 면회를 나온 군인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서부전선의 육군1사단과 육군25사단, 육군1군단 등 주요 부대가 있어서 전방의 군사도시로서 장병들을 위한 서비스업이 활발했다. 그러나 현재는 문산읍과 적성면에서 전방 군사도시로서의 특색 있는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다. 특히 서울 등으로 운행되는 시외버스터미널이 사라지고 일반 좌석버스로 대체됨에 따라 군인들만의 추억의 공간이 사라졌다.
파주시에서 분단의 현실을 담은 전방의 모습을 찾으려면 오히려 임진각이나 오두산 통일전망대 등에서 엿볼 수 있다. 문산에서 통일로인 1번 국도를 따라 자동차로 끝까지 달리면 마지막 지점에 있는 곳이 바로 임진각이다. 북쪽 정면에는 임진강을 건너는 자유의 다리가 있다.
매일 수천 명의 관광객이 몰리는 임진각
임진각은 분단이 낳은 색다른 관광명소다. 휴일이면 하루에 적어도 1만여 명, 평일에도 수천 명씩 몰려든다. 임진각은 1972년 실향민을 위해 건설된 기념관이자 전망대로, 옥상에 오르면 북한 개성 지역의 송악산까지 조망할 수 있다.
임진각 관광지 동쪽에는 ‘평화누리’ 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조각품, 호수공원, 공연장과 건축이 아름다운 카페 등이 있어서 1년 365일 수많은 여행자들이 찾는다.
한적하기 이를 데 없는 임진강 하류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임진각은 휴전선에서 남쪽으로 불과 7㎞ 떨어져 있다. 통일로의 최북단이며 민간인 출입 북쪽 한계선이고 남북 철도의 중단점이기도 하다. 임진각 옆에는 지금도 “철마는 달리고 싶다”고 외치는, 그때부터 멈춰 서 있는 기차가 있다.
임진각은 지상 3층, 지하 1층, 연건평 2442㎡의 건물이다. 1층과 2층에는 음식점과 기념품 판매점 등이 있고, 3층에는 북한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전시실, 옥상에는 전망대가 있다.
자유의 다리는 6·25전쟁 때 파괴된 것을 휴전이 성립되자 교환포로들을 통과시키기 위해 급히 설치된 가교다. 당시 북쪽에 잡혀 있던 포로 중 1만2773명이 갖은 회유를 뿌리치고 이 다리로 건너왔다. 자유의 다리를 건너 북쪽 깊숙이 들어가면 판문점이 있지만, 허가증이 없는 사람은 들어갈 수 없다.
6·25전쟁이 일어난 다음 해인 1951년 7월 10일, 유엔군과 북한군은 개성에서 휴전회담을 시작했다. 양측은 이어 10월 25일 회담장소를 판문점으로 옮겼다. 이후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정전협정이 조인될 때까지 회담 장소로 사용하던 곳이 바로 판문점이다.
대한민국의 행정구역상으로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조산리에 속하는 판문점은 본래 ‘널문이[板門店]’라는 한 시골 마을이었다. 이러한 판문점이 지난 4월 27일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 한반도 평화를 논의함으로써 세계의 주목을 받는 장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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