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영화로 본 전쟁사

천년제국 로마는 하루 아침에 사라지지 않았다

송현숙

입력 2018. 12. 11   17:11
업데이트 2018. 12. 11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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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로마제국의 멸망(The Fall Of The Roman Empire), 1964 감독: 앤서니 만/출연: 크리스토퍼 플러머, 소피아 로렌, 스티븐 보이드


 
정복지 이민족 유화정책과 개방성
오랜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자
제국 멸망하게 한 양날의 검
300년 걸쳐 서서히 쇠락의 길로

 
게르만 정벌한 아우렐리우스 황제
후계자로 아들 대신 리비우스 선택
아들 부하들로부터 독살 당해

 
황제에 오른 아들 코모두스
반군 가담한 누이 화형시키고
라이벌 리비우스와 결투, 죽음 맞아  

  

BC 8세기 작은 도시국가로 출발한 로마(BC 753∼AD 476)는 시조(始祖) 로물루스왕 이후 왕정기(王政期)를 거쳐 BC 6세기 초부터 왕의 독재적인 1인 지배를 막는 공화정기(共和政期)로 발전한다. 이후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등장하면서 로마는 제정기(帝政期)로 들어간다. 로마는 영토를 더욱 확장하고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아우렐리우스 등 뛰어난 황제가 다스리던 5현제 시기를 거치면서 로마 역사상 가장 풍요로웠던 ‘로마에 의한 평화’ 팍스 로마나(Pax Romana) 시대를 열었다. 로마는 정복지의 문화와 종교를 인정하는 다문화·다신교 정책으로 제국의 통합과 번영을 유지했다. 그러나 네로·칼리굴라 등의 폭정과 게르만족 및 페르시아의 공격으로 로마제국은 쇠퇴했다.



마지막 5현제의 죽음

영화 ‘로마제국의 멸망’은 서기 180년 로마의 마지막 5현제로 불리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죽은 후 아들 코모두스와 딸 루실라 간의 권력 투쟁을 통해 로마가 어떻게 멸망해 가는지를 보여준다. 1960년대 당시 할리우드는 새로 등장한 TV와 경쟁하기 위해 대형 화면으로 승부했는데 이 영화도 전쟁 스펙터클이 돋보이는 시대물 중 하나다. 할리우드는 ‘벤허’가 성공하자 ‘스파르타쿠스’ ‘클레오파트라’ 등 대형 사극영화를 많이 만들었다.

상영 시간이 3시간이 넘는 영화는 게르만 정벌을 위해 북방 전선에 나선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알렉 기네스)가 제국이 정복한 지역 대표들을 불러 모아 그 위세를 과시하면서 시작된다. 그는 자신의 후계자로 아들 코모두스(크리스토퍼 플러머) 대신 총사령관 리비우스(스티븐 보이드)를 선택한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안 코모두스의 부하들은 마르쿠스를 독살한다. 코모두스는 누이 루실라(소피아 로렌)마저 아르메니아의 왕과 정략결혼시키고, 황제가 된다. 그는 무리한 조세를 거둬들이는 등 폭정을 일삼는다. 이 틈에 아르메니아 등 로마 변방에선 반란이 일어난다. 코모두스는 친구이자 라이벌인 리비우스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진압명령을 내리지만 그는 반군에 루실라가 가담한 사실을 알고는 거꾸로 로마로 공격해 온다. 하지만 루실라는 코모두스 제거에 실패해 화형대로 끌려가고 리비우스 역시 체포된다. 코모두스는 리비우스와 단독 결투를 자청하지만 죽음을 맞는다.



로마제국 시가지·궁전 완벽 재현

영화는 로마제국의 시가지와 궁전 등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했다. 로물루스왕의 대형 늑대상을 비롯해 신전 및 궁전들의 건축물과 로마 광장 등 화려하고 웅장한 스펙터클은 영화 말미 화염에 휩싸이며 망해가는 제국의 모습을 더 비극적으로 보이게 한다. 영화는 또한 전쟁 스펙터클을 선사하는데, 큰 방패와 긴 창으로 무장한 로마 병사의 행군과 대평원에서 치러지는 전투, 마차 위에서 벌이는 결투, 대규모의 군중 장면들은 고대 로마 시대의 전쟁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영화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글래디에이터’와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내용은 상당 부분 다르다. 검투사에 집중한 ‘글래디에이터’보다는 불가피하게 약간의 각색은 있지만 더 역사에 가깝게 그렸다.

감독 앤서니 만은 영화 ‘엘 시드’와 서부극을 주로 만든 1960년대의 유명 감독이고, 코모두스 역의 크리스토퍼 플러머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대령 역으로 출연해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그는 ‘올 더 머니’ 등 현재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노장 배우다. 공주 루실라 역으로 나와 청순한 연기를 선사한 소피아 로렌은 이탈리아 출신 여배우.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라는 격언이 있지만 로마는 하루아침에 망하지도 않았다. 무려 300년에 걸쳐 서서히 멸망했다. 로마가 천년 이상 제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정복지의 이민족에 대한 유화정책과 개방성 덕분이었다. 하지만 바로 이 점 때문에 멸망해갔다. 유화정책과 개방성이 제국을 가능하게도 했지만 멸망하게도 한 양날의 칼이었던 셈이었다.



원로원과 장군들, 황제 자리 놓고 매관매직…로마 제국 멸망의 시작

영국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로마제국은 내부적 요인으로 자멸했다”고 적고 있다. 영토는 분할 통치해야 할 정도로 넓어져 효율적인 통치가 불가능했고 오랜 평화는 군사력의 약화를 초래했다. 황제들은 타락하고 무능했고 관료들 역시 부패했고 사치스러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국은 과거와는 달리 작은 외세의 공격에도 흔들리는 약체가 됐다.

영화의 엔딩, 로마광장이 전쟁터처럼 혼란스러운 가운데 황제 코모두스와의 대결에서 이긴 리비우스는 원로원과 장군들로부터 황제로 추대된다. 하지만 리비우스는 거절한다. 그러자 그들은 다시 황제 자리를 놓고 매관매직(賣官賣職)한다. 그 장면 위로 내레이션이 들린다. “이것이 로마 제국 멸망의 시작이었다. 위대한 문명은 외부의 침략에서가 아니라, 내분에 의해 붕괴한 것이다.”


  

<김병재 영화평론가>

송현숙 기자 < rokaw@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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