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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핵심인물 찰스 히치, ‘군사 의사결정’ 틀 정립

기사입력 2018. 12. 10   15:48 최종수정 2018. 12. 11   17:31

<12> 우리는 ‘맥나마라’의 개혁을 잘못 알고 있다 중 : 맥나마라팀의 “쌩쌩이들”은 누구이며 무엇을 했는가?

행태주의·준최적성 국방에 도입…훗날 의사결정 수단·방법·절차 기준 돼
같은 연구소 출신 엔토벤, 히치 아이디어 구체적 모델·이론으로 발전시켜


랜드연구소 출신의 쌩쌩이들과 함께 예산을 검토하고 있는 알랭 엔토벤(왼쪽 둘째).  필자 제공

1960년대 맥나마라 국방개혁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사업 중 하나가 ‘군사 의사결정(Military Decision-Making)’ 모델 개발이다. 맥나마라팀에서 가장 급진적 인물인 찰스 히치(Charles J. Hitch)가 주도했다. 히치는 국방정책에서 야전전술을 관통하는 ‘군사 의사결정’의 틀을 정립했다. 랜드연구소 경제부장 시절 그가 저술한 『핵시대의 국방 경제학』(1960)은 ‘국방 예산 분야의 성경’으로 불린다.
또한 히치는 행태주의, ‘준(準)최적성(sub-optimality)’ 등을 국방에 도입하는데 이는 나중에 군사 의사결정 수단, 방법, 절차의 기준이 된다.

히치는 일찍이 1960년 국방부 내부 보고 문건인 ‘시스템 관점에서의 목표 선정’에서 국방부가 ‘잘못된 문제에 대한 잘못된 질문에 잘못된 기준에 근거한 잘못된 답을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이를 시정할 책임이 있는 국방부 내 과학자·수학자 출신 전문 관료들이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방부는 안보의 특수성·가치성을 내세우면서 과학과 수학의 잣대를 회피하고, 전문 관료들은 이를 시정하지 않은 채 국방부 안을 즐겁게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히치는 예산·비용을 의사결정의 기준으로 삼으면 위와 같은 국방부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안보의 대체 불가성, 가치성, 불확실성, 복잡성 등으로 인해 ‘계량화된 최선의 목표’를 선정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주어진 예산과 예상되는 비용의 방정식 범위 내에서 ‘준최적화된 목표’를 수립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랜드연구소 출신 경제학자 알랭 엔토벤(Alain C. Enthoven)은 히치의 아이디어, 이론 틀을 구체적 모델,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엔토벤은 히치의 학문적 이상주의와 국방의 현실을 조화시키려고 했다. 그는 ‘정책은 가치와 합의로, 실무는 비용과 효과로 결정돼 발생하는 심각한 간극이 국방 문제의 근원’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이를 완화하기 위한 사고의 기준으로 다음과 같은 ‘군사 의사결정 모델의 원칙’을 정립했다.

첫째, 군사 의사결정은 조직이나 군종 간 타협이 아니라 표현 가능한 국가 이익을 기준으로 이뤄져야 한다. 둘째, 소요와 비용은 의사결정의 결과가 아니라 지속 반복되는 과정이다. 셋째, 의사결정의 대안들은 명료하며 달성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넷째, 참모는 의사결정자에게 구체적 데이터, 편견 없는 전망을 제공해야 한다. 다섯째, 중장기 계획은 현재의 의사결정 결과들이 미래로 투사된 것이어야 한다. 여섯째, 의사결정 수단·과정·결과는 모든 참가자에게 공개돼야 한다.

이쯤에서 이미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위의 원칙은 야전교범 ‘지휘관 및 참모 업무’에 기술된 ‘부대지휘절차 원준칙’과 유사하다. 엔토벤의 원칙을 바탕으로 ‘군사 의사결정’ 심화 연구를 진행한 랜드연구소 수학부장 에드워드 퀘이드(Edward S. Quade)가 야전부대 모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퀘이드는 국방장관과 야전부대 지휘관의 의사결정이 기본적으로 같은 모델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단급 이하 제대에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할 전문가가 없다. 그래서 퀘이드는 해야 할 일을 단순명료하게 지정해주는 도구와 절차를 고안했다. 이것이 상황 분석, 임무 진술, 명시된 과업, 제한사항, 방책(Course of Action) 선정 및 비교, 환류 같은 것들이다.

‘군사 의사결정’ 모델 개발 과정을 통해 맥나마라 국방개혁의 특징을 정리하자면 첫째, 최고의 인재를 가능한 한 고위직에 등용하고 최대한의 권한과 예산을 준 것이다. 보직된 이들은 주어진 권한과 예산으로 혁신적 제도를 만들고 분야별 전문가를 고용했다. 권한, 예산, 제도, 인력이 갖춰졌기에 안보목표, 국방정책, 군사전략의 기본 틀을 재정립하고 이를 수행하기 위한 이론, 모델, 도구까지 창안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고위 관료가 직접 개념·모델·이론을 직접 만들고 보고서·연구문을 썼다. ‘군사 의사결정’ 관련 모델과 이론을 개발하고 논문을 쓴 히치와 엔토벤은 국방차관이었다. 이를 구체화하고 발전시킨 퀘이드는 사업 담당 부서장이었다. 실무자에게 연구를 시키고 과장에게 보고서를 만들게 하는 방식으로는 개혁과 혁신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셋째, 장·차관과 부서장이 바뀌어도 개혁이 지속됐다. 장기적 관점에서 법, 제도, 예산을 한데 묶어 개혁을 진행했기 때문에 후임자 맘대로 쉽게 바꿀 수 없었다. 바꾸고 싶어도 “쌩쌩이들”이 내외의 주요 보직으로 영전하여 생생히 활동하니 그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계속)

 

<남보람 박사/군사편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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