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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사] 12월 4일 6·25 대동강철교 피란 행렬 촬영

입력 2018. 12. 03   15:19
업데이트 2019. 11. 01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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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대전 등 끔찍한 전쟁터 돌았는데, 그날 같은 장면은 정말 처음이었다"



"나는 이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아 영예를 누렸지만 사진 속의 많은 한국인들은 아직도 큰 상처를 갖고 있을 것이다." 


6·25전쟁의 비극을 가장 잘 보여준다는 평을 듣고 있는 사진 ‘대동강 철교(Collapsed Korean bridge)’를 찍은 전 AP통신 종군기자 막스 데스퍼(Max Desfor)는 2009년 6월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951년 12월 그토록 추운 겨울날, 유엔군이 중공군 인해전술(人海戰術)에 밀려 퇴각하자 군인들의 도하용 부교(浮橋)로 함께 대동강을 건너던 그는 파괴된 철교를 보았다. 


철교에는 남으로 향하는 피난민들을 목격했다. 처참했다. "마치 부서진 교각에 달라붙어 이동하고 있는 개미들 같았다"는 그의 말처럼, 철교에서는 목숨을 건 곡예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보따리를 짊어진 채 아치와 상판(上板)을 건넜다. 


힘이 달려 교각에 오래 매달리지도 못하고 강 아래로 떨어지는 이도 있었다. 데스퍼 기자는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댔지만 너무 추워 손가락이 얼 정도여서 겨우 8장밖에 찍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45년간 사진기자를 했고 그 중 10여 년은 제2차 세계대전 등 끔찍한 전쟁터를 돌았는데, 그날 같은 장면은 정말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진이 전쟁의 참상과 함께 삶과 자유에 대한 인간의 의지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서진 철교를 넘어오는 상황을 보면 북한으로부터 탈출하고 북한의 전쟁 방식에서 탈출해서 안전한 곳으로 가겠다는 의지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막스 데스퍼 기자는 종군기자로서 무척 유명하다. 미 해군 전함(BB) 미주리함에서 일제가 맥아더 장군 앞에서 항복 서명을 한 사진도 그의 작품 중 하나다. 앞서 원자폭탄이 투하된 뒤 히로시마도 다녀갔다. 


6·25전쟁 때는 발발 이후 휴전때까지 전쟁터를 취재했다. 이후엔 인도차이나의 전쟁터도 빼놓지 않았다. 


대동강 철교는 1905년 3월 24일 완공되었다. 일제가 대륙을 침략하기 위해 서울 용산에서 신의주까지 499km 구간에 경의선 철도를 가설하기 위해 1904년 3월부터 공사를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대동강 철교가 이날 완공되었다. 하지만 이 다리가 6·25전쟁 때 파괴된, 피난민 행렬이 곡예하듯 넘어간 그 다리는 아니다. 


본래 이 다리가 부실하다는 평가가 있었는지, 아니면 안전은 하지만 더 튼튼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는지 일제는 1942년 두 번째 대동강 철교를 놓았다. 


일제가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을 잇달아 일으켰음을 볼 때 일제는 전쟁물자를 실어나르기 위해 더 무거운 기차 하중을 견딜 튼튼한 다리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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