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국민과 함께 한 국군의 발자취

국내 넘어 해외로…순백의 천사들 ‘맹활약’

입력 2018. 11. 28   17:31
업데이트 2018. 11. 28   17:34
0 댓글

44 국군간호사관학교와 졸업생들


6·25 전쟁 때 육군군의학교 간호사관생도로 출발
1980년 1월 4일 4년제 국군간호사관학교로 출범
외환위기로 한때 위기…2년간 생도 모집 중단도
2002년 첫 女 장군 양승숙 육군준장 학교장 취임
16기 이재순 장군, 모교 출신 첫 장군 학교장 올라


국군간호사관학교는 1980년 1월 4일 4년제 사관학교로 출범했다. 사진은 지난 3월 국군간호사관학교 연병장에서 열린  제58기 졸업 및 임관식에서 졸업생도들이 선서를 하는 모습.
국군간호사관학교는 1980년 1월 4일 4년제 사관학교로 출범했다. 사진은 지난 3월 국군간호사관학교 연병장에서 열린 제58기 졸업 및 임관식에서 졸업생도들이 선서를 하는 모습.
‘재난간호 교육과정’에 참가한 간호장교와 민간 간호사들이 화학물질에 오염된 환자를 신속하게 옮기고 있다.
‘재난간호 교육과정’에 참가한 간호장교와 민간 간호사들이 화학물질에 오염된 환자를 신속하게 옮기고 있다.

국군간호사관학교(Korea Armed Forces Nursing Academy)는 대한민국 유일의 국방부 직할 사관학교다. 우리나라에는 총 5개의 사관학교가 있다. 이른바 ‘5대 사관학교’다. 육군사관학교와 육군3사관학교, 해군사관학교와 공군사관학교, 그리고 국군간호사관학교다. 다른 사관학교들은 자군(自軍)에 필요한 장교들을 양성하지만 국군간호사관학교는 육·해·공군 모두에 간호장교들을 배출하고 있다. 


 
대한민국 유일 국방부 직할 사관학교


국군간호사관학교는 전투병력이 아니라, 국군장병들을 치료할 ‘백의(白衣)의 천사’들을 양성한다. 국군간호사관학교는 최초 육군군의학교 간호사관생도로 출발해 육군간호학교와 국군간호학교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군간호사관학교는 1980년 1월 4일 국군간호사관학교 설치법에 의해 4년제 사관학교로 출범했다. 그때부터 국군간호사관학교는 육·해·공군사관학교와 함께 정규 사관학교로서의 위상을 갖게 됐다. 1951년 육군군의학교 간호사관생도로 출범한 지 30년 만의 쾌거(快擧)다.


1기생 303명 입교…110명만 소위 임관


국군간호사관학교는 6·25전쟁 중이던 1951년 1월 6일 임시수도가 있던 부산 동래의 육군군의학교에서 출발했다. 당시 교장은 박동균(朴東均) 대령이었다. 1기생들은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303명이 입교했다.

1·4 후퇴 후 시작된 1기생들의 교육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유난히 추웠던 그해 겨울을 1기생들은 온기(溫氣) 하나 없는 내무반에서 담요 2장으로 버텨야 했다. 모포 1장은 깔고 1장은 덮었으나 추위를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보다 못한 학교장 박동균(육군소장 예편) 대령이 인근의 농부들에게 부탁해 볏짚을 넣은 ‘거적 매트리스’를 제공했다. 그 덕분에 겨우 추위를 면했지만, 추위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배고픔이었다.

1기생들은 그런 힘들고 어려운 2년 과정을 거쳐 1953년 3월 14일 드디어 임관했다. 하지만 임관한 숫자는 의외로 적었다. 입교자 303명 중 3분의 2가 탈락하고 겨우 110명만 소위로 임관했다. 엄청난 탈락률이었다. 그만큼 교육과정이 힘들고 어려웠다는 것을 뜻한다. 대한민국 간호사관학교 출신의 첫 ‘나이팅게일’ 배출이었다. 그로부터 약 70년이 흘렀다. 적지 않은 세월이다. 그 기간에 국군간호사관학교는 숱한 고난을 극복하며 발전을 거듭했다.

육군군의학교 간호사관생도 과정은 1957년 10기생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휴전 이후 다양한 사회 진출로 인해 더 이상 응모자가 없었다. 그러다 1960년대 중반 국군의 베트남 파병으로 간호장교 수요가 늘어나자, 정부에서는 1967년 8월 15일 대구에 육군간호학교를 설립했다. 순수한 간호사관학교인 셈이다. 이후 육군간호학교는 국방부의 의무부대 통합운용방침에 따라 지휘감독권이 육군본부에서 국방부로 넘어갔다. 그때 학교 명칭도 ‘국군간호학교’로 바뀌었다. 1970년 12월 상황이다.


1977년 해군 간호장교도 배출

국군간호학교는 그 명칭에 걸맞게 1977년부터 육군 간호장교뿐만 아니라 해군 간호장교도 배출했다. 공군 간호장교는 이 보다 16년 늦은 1993년부터 시작됐다. 이때부터 국군간호학교는 ‘3군통합간호사관학교’ 체제를 완전히 갖추게 됐다. 이를 계기로 2012년부터 남자 생도들이 입학해 남자간호장교를 배출했다. 그 과정에서 국군간호학교는 국군간호사관학교로 격상됐다. 그때가 1980년 1월 4일이다.

국군간호사관학교의 4년제 출발은 국방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국군간호사관학교 출범으로 우리나라는 총 5개의 사관학교를 갖게 됐다. 1996년 8월에는 대구에서 대전의 자운대로 학교를 옮겼다. 국군간호사관학교 ‘자운대 시대’의 개막이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1999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국방부는 예산 절감의 일환으로 국방부 산하 교육기관의 통폐합 또는 축소를 추진했다. 그때 국방부는 간호사관학교를 해체하고 100% 민간자원으로 간호장교를 보충하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국군간호사관학교의 폐지를 의미했다. 그 여파로 2000년과 2001년 생도 모집이 중단돼 44기와 45기를 뽑지 못했다. 국군간호사관학교 역사에서 ‘아픈 공백’이다. 그렇지만 국군간호사관학교는 동문을 비롯해 여성단체와 정치인 그리고 학계의 도움으로 ‘학교 폐지’라는 최악의 위기를 극복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이는 국군간호사관학교 출신들의 모교 사랑에서 나온 옹골찬 의지가 낳은 결과였다.


2002년 장성급 학교장 시대 개막

역사가 입증하듯 역경을 이겨낸 뒤에는 늘 순풍이 따른다. 국군간호사관학교도 2002년 1월 23일 학교 창설 이래 최대의 경사를 맞게 된다. 국군 최초의 여성 장군인 양승숙 육군준장이 국군간호사관학교장에 취임했다. 양승숙 장군은 2001년 육군본부 간호병과장으로 재직 중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장군이 됐고, 국군 간호장교의 요람인 국군간호사관학교장으로 취임했다. ‘장성급 학교장 시대의 개막’이었다. 그동안의 암울했던 어둠이 걷히고 밝은 미래가 보장된 듯했다. 학교의 위상도 격상됐다.

국군간호사관학교 출신의 첫 장군 학교장은 16기생인 이재순 장군이다. 이후 윤종필(17기)·박순화(19기)·신혜경(20기)·박명화(21기)·최경혜(22기) 그리고 윤원숙(23기) 장군이 학교장을 맡아 후배들의 훈육을 책임졌다. 2018년 현재 학교장은 아홉 번째 장성급 교장인 권명옥(27기) 장군이다. 그 가운데 윤원숙 장군은 간호사관학교 최초의 4년제 졸업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간호사관학교 출신들은 전역 후에도 국가와 사회 그리고 학계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며 모교를 빛내고 있다. 그중 이재순 장군은 전역 후 한국폴리텍대학 경북구미캠퍼스 학장을 지냈고, 윤종필 장군은 20대 국회에 입성해 활발한 의정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자랑스러운 국군간호사관학교 출신이 아닐 수 없다.


학계 정계서 모교 빛내는 졸업생들

국군간호사관학교 출신 간호장교들은 학교 교훈인 ‘진리의 탐구, 사랑의 실천, 조국의 등불’을 한시도 잊지 않고 이를 몸으로 실천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나라가 가장 어려운 시기인 6·25전쟁 때 넘쳐나는 국군 부상병들을 애국하는 마음으로 간호했다. 이후에는 국군 최초의 전투부대 해외파병인 베트남전쟁에서 활약한 것은 물론이고,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국력에 걸맞은 평화유지활동을 하게 되자, 유엔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해외분쟁지역에서 ‘대한민국 나이팅게일의 후예’로서 국위를 선양하고 있다. 그런 국군간호사관학교와 졸업생들에게 60만 국군과 함께 무한한 경의와 감사를 드린다.  <남정옥 전 군사편찬연구위원>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