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정호영의 역사소설 광해와 이순신

유성룡 아들 유진이 가져온 유품 광해, 『징비록』 받고 눈물 ‘펑펑’

정호영

입력 2018. 11. 19   14:02
업데이트 2018. 11. 19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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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장 개혁군주 광해의 부침 (211회)


광해는 초조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을 비웠다. 조정의 대세는 이미 영창대군 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었다. 임금의 복심으로 불리는 영의정 유영경은 광해를 견제하며 영창대군을 노골적으로 지지했다. 세자 광해의 앞길은 사방이 절벽이었다.

그런데 한 해가 지난 1607년, 선조의 병세가 심각해지면서 뜻하지 않은 일들이 생겨났다. 초야에 묻혀 있던 유성룡이 그해 5월 6일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유성룡의 죽음은 하루하루가 고달프던 백성들에게 지난날 전란극복의 영웅에 대한 흠모의 불을 지폈다.

조정에서는 사흘간 정사를 멈추고 조상(弔喪)했다. 수많은 사대부도 곳곳에서 모여 고인을 기리며 통곡했다. 전국의 백성들 다수가 생업을 중지하고 슬피 울며 애도했다. 유성룡의 서거를 계기로 이순신에 대해서도 추모 열기가 이어졌다. 또한, 생존한 세자 광해까지 덩달아 떠받들어졌다. 잠자던 백성들의 여론이 깨어나자 이들은 어느새 광해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이 무렵, 광해는 전란 전 유성룡과 이순신 셋이서 교감했던 인연을 떠올리며 일장춘몽이 되어버린 현실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시중을 드는 환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자 저하, 사헌부의 유진이 뵙기를 청하옵니다.”

“어서 모시어라.”

광해는 유성룡의 아들인 유진을 반갑게 맞았다. 고인을 그리워하던 차에 당하관의 사헌부 관직에 있는 유진을 보자 그리움과 미안한 마음이 교차했다.

“세자 저하, 생전에 부친께서 꼭 전해달라며 남긴 유품을 갖고 왔습니다. 받아주시옵소서.”

유진이 갖고 온 유성룡의 유품은 뜻밖에도 『징비록』이라는 서적이었다. ‘징비(懲毖)’란 중국 고전 『시경』의 ‘내가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라는 구절에서 딴 말이었다. 임진년(1592)에서 무술년(1598)까지의 기록이었다. 서적에는 임진왜란의 원인과 전황이 자세하게 담겨 있었다.

광해는 며칠에 걸쳐 『징비록』을 읽고 또 읽었다. 전란을 막지 못하고 싸움에서 패했던 아쉬운 대목에선 탄식했고, 수많은 백성이 죽은 처참한 내용에선 눈물을 흘렸다. 과거의 교훈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글자 하나, 문장 한 줄마다 희로애락이 교차했다.

광해는 유성룡이 『징비록』을 써서 자신에게 남긴 이유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반드시 임금이 되어 다시는 임진왜란 같은 비극을 막아야 한다는 고인의 간절한 바람이었다.

임금이란 자리는 준비 없이 거저 얻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각오와 결단으로 차지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성룡은 책에 담긴 교훈을 통해 나약한 광해를 엄하게 꾸짖었다. 죽는 순간까지 세자 광해가 성군이 될 수 있도록 약속을 지킨 것이었다. 광해는 뒤늦은 깨달음에 눈물을 펑펑 쏟았다.


정호영 기자 < fighter7@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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