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육군

[현장 리포트] "지뢰제거작전 위험하지만 역사적 현장 뿌듯한 경험"

맹수열

입력 2018. 11. 15   14:23
업데이트 2018. 11. 15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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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해발굴 화살머리고지 지뢰제거작전 현장



지뢰제거를 위해 GP 통문을 나서고 있는 육군5사단 공병대대 장병들. 조종원 기자.
지뢰제거를 위해 GP 통문을 나서고 있는 육군5사단 공병대대 장병들. 조종원 기자.

고지는 어느새 훌쩍 다가온 겨울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이른 아침 쏟아지는 햇살 사이로 희끄무레하게 내려앉은 서리는 60여 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미지의 땅’도 우리 일상과 다를 것이 없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낙엽 위로 내려앉은 얼음 결정을 바라보자 문득 걱정부터 들었다. 기자의 리작은 한숨을 들었는지 함께 온 사진기자도 한 마디 거들었다. "땅이 얼어붙기 전에 끝내야 할 텐데요." 


지난 12일 찾은 강원도 철원군 화살머리고지의 아침은 분주했다. 화살머리고지는 지난 달부터 남북이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 이행을 위한 공동 유해발굴의 사전조치로 지뢰제거 작업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다.  


작업이 시작된 지 벌써 한 달 반. 반환점을 돌아 결승점을 향해 마지막으로 속도를 올릴 시점. 화살머리고지를 관할하고 있는 육군5사단에 따르면 이날까지 화살머리고지에서 발견된 지뢰는 총 20발이다. 


생각보다 적은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할더욱 대견한 사실은 지금까지 이런 성과를 거두면서 단 한 건의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법도 하지만 함께 발견된 불발탄의 수가 무려 296발이라는 사실을 듣고 나면 새삼 놀라게 된다.

본격적인 고지 진입에 앞서 전진기지 역할을 하고 있는 감시초소(GP)의 브리핑룸에서 지금까지의 현황을 들었다. 


화살머리고지에는 현재 하루 인원 200명이 투입돼 유해발굴과 도로개척 작업에 힘을 쏟고 있다. 부대에 따르면 지금까지 70% 이상 지뢰제거 작업이 완료됐다. 


"앞에 보이는 노란 막대 모양의 장비가 숀스테드(Schonstedt, GA-72CD) 지뢰탐지기입니다. 깊이 3m 까지 탐지할 수 있죠. 옆에 보이는 장비는 이미 많이 알려진 지뢰탐지기입니다. 작은 산소탱크가 이 장비는 압력을 이용해 공기를 분사해 땅을 파는 소형 공압기입니다. 현재 우리 장병들은 이 세 장비를 이용, 지뢰는 물론 불발탄, 금속 유품 등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안내를 맡은 5사단 공보장교 이재민 중위의 설명이다. 


장비 옆으로는 그동안 지뢰제거팀의 성과가 전시돼 있었다. 우리 군의 지뢰는 물론 북한이 설치한 지뢰, 수류탄과 고폭탄 등 각종 불발탄 등이 그것이다. 이 뿐이 아니다. 이미 여러 차례 보도된 30여 발의 총알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전사자의 수통, 총탄이 관통한 철모·반합 등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유품도 있었다. 


장전된 상태로 총열만 남은 M1 소총은 주인이 산화하는 그 순간까지 얼마나 치열한 전투를 치뤘는지를 대번 느끼게 했다.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리사카 나리아키라(有坂成章)가 개발했다고 해서 흔히 ‘아리사카(有坂) 소총’이라고 부르는 일본 99식 소총의 탄환이 이 곳에서 많이 발견됐다는 점이다.


99식 소총은 일제가 이 땅에 남기고 간 잔재다. 무기가 부족했던 남북, 일제의 영향권에 있었던 중국까지 모두 피아 구분없이 이 소총을 사용했다는 증거가 화살머리 고지에서 나온 셈이다. 


전시품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기자에게 이 대위는 말했다. "발굴하는 장병들도 실제로 유품이나 불발탄이 나오면 상당히 뿌듯해 합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역사적 의미가 담긴 일이라는 것을 비로소 느끼는 것이죠. 첫 유해가 발굴되던 순간 장병들의 뿌듯해하는 얼굴이 기억납니다. 내년 4월 본격적인 유해발굴이 시작되면 더욱 뿌듯해하지 않을까요?" 


공병 장병들이 완벽한 보호장비를 갖추고 GP를 나와 지뢰제거 작전 현장을 가고 있다. 조종원 기자
공병 장병들이 완벽한 보호장비를 갖추고 GP를 나와 지뢰제거 작전 현장을 가고 있다. 조종원 기자

출발을 위해 GP 통문을 나서기 직전. 작전에 투입되는 장병들에게 중대장이 교육을 하고 있었다. 


"정해진 구역을 벗어나지 말고 위험표시가 된 구역에는 절대 진입하지 않는다. 폭발물로 추정되는 물체를 발견하면 절대 직접 제거하지 말고 폭발물처리반(EOD : explosive ordnance disposal)를 부른다." 


이 대위에 따르면 작전에 투입되는 모든 장병들은 매번 이런 안전교육을 듣는다. 중요한 이야기지만 매번 듣는다면 귀에 굳은살이 박힐 정도라 지겨울 법도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대위는 "안전교육은 매 순간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며 "늘 새롭게 마음 속에 새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드디어 통문을 열고 DMZ에 진입했다. 안전이 확보된 길 양 옆으로는 노란 띠가 이어져 있었다. 선두에 선 중대장 뒤로 저마다 장비를 든 경계·지뢰제거· 의무요원들이 줄을 이었다. 


병들의 온 몸은 두툼한 보호장구로 둘러져 있었다. 여기에 아직 신지 않은 지뢰보호 덧신을 더하면 보호장구 무게만 23㎏이라고 한다. 


능선을 따라 숨가쁘게 올라가는 길. 며칠 내린 비와 밤새 쌓인 서리로 낙엽길은 생각보다 훨씬 험난했다. 기자는 물론 무거운 장비를 들고 가는 장병들의 호흡도 점점 거칠어졌다. "힘들지 않아요?" 기자의 물음에 한 장병은 쑥쓰러운듯 웃으며 말했다. "힘들기는 하지만 버틸만 합니다. 매일 오다보니 단련이 됐나봅니다." 


고지를 향하던 중 안전띠 밖으로 녹슨 철조망이 눈에 띄었다. 이 대위는 "고지를 지키기 위해 능선을 따라 철조망을 쳤고 곳곳에 이런 흔적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동로 곳곳에는 작은 깃발이 꽂혀져 있었는데 ‘유품’, ‘탄환’ 같은 글씨와 숫자가 적혀 있었다. 유품이 나온 곳을 표시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숫자는 좌표인데 내년 4월 투입되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참고하기 위해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목적지를 갈 때 까지 이런 깃발을 수십개 발견할 수 있었다.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며 20여 분을 걸어들어가자 지뢰제거 작업 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장병들은 숨돌릴 틈도 없이 저마다 장비를 내려놓고 능수능란하게 조립을 시작했다. 순식간에 작업이 시작됐다. 


23kg에 달하는 각종 보호장구를 갖춘 장병이 조심스럽게 지뢰탐지기를 운용하고 있다. 사조종원 기자
23kg에 달하는 각종 보호장구를 갖춘 장병이 조심스럽게 지뢰탐지기를 운용하고 있다. 사조종원 기자


힘차게 돌아가는 공압기 엔진 소리는 적막한 고지를 깨웠다. 8명이 한 팀으로 이뤄진 장병들은 다시 공압기-지뢰탐지기를 든 2인 1조로 나뉘어 있다. 먼저 들어가는 조를 제외한 나머지 장병들은 그 동안 잠깐의 휴식을 맛볼 수 있었다. 


작업을 준비하는 사이 시선을 북쪽으로 돌렸다. 계곡 너머 또 다른 고지 너머로 북한의 GP가 보였다. 


GP 아래로는 지뢰 제거와 도로개설 공사가 한창이었다. 덤프트럭, 포크레인으로 추정되는 중장비는 물론 아주 작게나마 사람도 확인할 수 있었다. 망원경을 통해 북한 장병들이 휴식하는 모습도 관측할 수 있었다. 


다시 눈을 남쪽으로 향하자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됐다. 장병들은 주로 둥그렇게 파인 개인호와 능선을 둘러싼 교통호 주변을 탐색하고 있었다. 


1차로 숀스테드를 이용, ‘뭔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곳에 빨간 도료를 뿌려놓고 그 곳을 중심으로 지뢰탐지기와 공압기를 든 장병들이 작업을 진행했다. 


"이 곳은 고지 정상을 중심으로 개인호가 산재해있고 그 주변을 교통호가 둘러싸고 있습니다. 호를 중심으로 수많은 유품이 나오고 있고 유해가 발견될 가능성도 높죠. 오늘도 뭔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 대위의 말이다. 


현장을 지휘하고 있던 이성구(중령) 5사단 공병대대장은 기자에게 거듭 ‘안전’을 강조했다. 사실 안전은 이 대대장 뿐 아니라 이 곳에서 만난 모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였다. 


이 대대장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 그리고 또 안전"이라며 "안전한 작전을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선 공압기를 이용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손이나 삽을 이용할 경우 잘못 건드리면 지뢰나 불발탄이 폭발할 수 있지만 공압기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사전에 압력을 조정해 놨습니다. 지뢰나 불발탄은 그대로 둔 채 주변의 흙만 파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두 번째로 완벽한 보호장비를 갖췄습니다. 지뢰제거팀이 신고 있는 전투화가 보이시나요? 일반 전투화보다 밑창이 훨신 두껍습니다. 충격을 최소화 할 수 있죠. 이미 여러 번의 실험을 통해 안정성을 입증받은 신발입니다. 여기에 지뢰보호 덧신까지 신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고 있습니다. 몸에 두른 보호장구 역시 작업할 때는 힘들지만 파편을 막아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뢰탐지기, 공압기를 번갈아 사용해가면서 어떤 금속도 발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죠. 번거롭게 보이지만 이런 다중 작업도 안전을 보장하는 요소입니다." 이 대대장의 설명이다. 


실제로 폭발물이 발견되면 어떤 절차가 진행될까? 이 대대장은 "즉시 EOD  폭발물 처리 를 부른다"고 답했다. 현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EOD는 폭발물이 발견되면 현장에서 신관, 장약을 제거하고 안전한 장소로 옮긴다. 


후방 폭발물처리장으로 옮겨진 폭발물은 이후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 처리된다. 최근 발견된 80㎝에 달하는 대전차고폭탄도 이상없이 안전하게 처리했다며 이 대대장은 미소를 지었다. 


설명을 하던 이 대대장 옆에서 ‘위잉’하는 지뢰탐지기 소리가 들렸다. 공압기를 이용, 땅을 파보니 녹슨 철조망 조각이 나왔다. 


내친김에 대기 중이던 지뢰탐지기로 실험을 해봤다. 탐지기 바닥에 철조망 조각을 대보니 큰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클 수록 금속이 크고나 가까이에 묻혀 있다고 한다. 소리 뿐 아니라 손잡이에 붙은 계기판을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각 팀은 지뢰탐지기의 감도를 달리해 보다 정밀한 수색을 진행하고 있었다. 15분 정도 지나자 다른 팀이 교대를 위해 현장으로 들어갔다. 


이 대대장은 "지뢰탐지작업은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힘든 작업"이라며 "너무 오래 작업하면 장병들의 피로가 급격히 쌓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대시간을 짧게 잡아 장병들의 체력과 정신력을 보존하고 안정성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장에 도착한지 2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시간,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뭔가 나올 것 같다"는 이 대위의 감이 맞아떨어졌다. 안전통로 근처에서 전쟁 당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녹슨 수류탄이 발견됐다. 


압축된 공기로 겉흙을 제거하자 전쟁 사용되었던 수류탄이 나왔다. 조종원 기자
압축된 공기로 겉흙을 제거하자 전쟁 사용되었던 수류탄이 나왔다. 조종원 기자


지뢰제거팀은 수류탄 위로 ‘크라운’이라고 불리는 지뢰표지세트를 덮었다. EOD가 올 때까지 폭발물을 보호하기 위해 덮어두는 장비다. 폭발물 안전조치를 마친 지뢰제거팀은 다시 유유히 탐지에 나섰다. 곳곳에서는 발견 보고가 잇따랐다. 


"이제 작업도 막바지를 향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다. 무엇보다 장병들에게 감사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까지 안전을 최우선으로 작업을 마쳐 모두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웃으며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장 지휘관으로서 제 임무입니다. 다시 한 번 안전·완전 작전을 다짐합니다." 이 대대장은 안전 작전의 공을 장병들에게 돌리며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지금까지 안전했다고 하더라도 혹시나 모를 위험은 남아있다. 걱정이 되지 않을까? 현장에서 만난 최원재 중위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미혼인 최 중위는 부모님이 이번 작전에 투입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계셨다. 그는 "오히려 부모님께서 자랑스러워 하신다"고 말했다. 


"선배 전우들을 모시는 뜻 깊은 작업을 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작전에 임하고 있다"는 최 중위는 소대원들에게 감사와 전우애가 담긴 말을 남겼다. 


"피곤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두 잘 견뎌줘서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다. 조국을 지키다 산화한 선배 전우들을 가족의 품으로 모시는 뜻깊은 작업을 함께하는 만큼 끝까지 안전 작전을 완수하고 모두 함께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취재를 마치고 나가는 길 한 켠에서는 고된 작업을 마친 장병들이 식사를 하기 위해 전투식량을 데우고 있었다. 모락모락 나는 연기가 식욕을 자극했다. 절로 새어나온 "맛있겠다"는 말에 한 장병은 웃으며 말했다. 


"저희는 매일 한 끼 이상을 전투식량으로 해결하니 질렸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 말에서 역사적인 현장에 함께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엿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 곳에 묻힌 선배님들은 전투식량 조차 없이 치열한 전투를 치르지 않았습니까? 사실 질린다는 생각도 사치죠. 저희는 그런 선배님들을 다시 고향으로 모시는 역사적인 현장에 있습니다. 안전히 지뢰제거 작전을 수행한 다음 유해발굴 작업을 통해 선배님들이 돌아오는 모습을 볼수 있다면 군 생활에서 이보다 뿌듯한 경험은 없을 것 같습니다."



지뢰제거작전 인근의 GP 앞에서 장병이 경계에 몰두하고 있다. 조종원 기자.
지뢰제거작전 인근의 GP 앞에서 장병이 경계에 몰두하고 있다. 조종원 기자.



맹수열 기자 < guns13@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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