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영화로 본 전쟁사

나치 독일 전범들, 재판정에 서다

입력 2018. 11. 13   16:30
업데이트 2018. 11. 13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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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뉘른베르크(Nuremberg), 2000 감독: 이브 시모노/출연: 앨릭 볼드윈, 브라이언 콕스


1급 전범 22명 재판 과정 그려
연합국 측 수석검사 잭슨과
히틀러 최측근 헤르만 괴링 간의
팽팽한 법정 공방 영화의 백미 


국가가 저지른 반인륜적 행위에 대해
개인적 책임 묻는 세계사적 법률 사건


뉘른베르크 재판 실제 장면.
뉘른베르크 재판 실제 장면.

영화에서 트루먼 대통령의 수석검사로 임명된 잭슨 판사 역의 앨릭 볼드윈.
영화에서 트루먼 대통령의 수석검사로 임명된 잭슨 판사 역의 앨릭 볼드윈.

히틀러의 최측근 헤르만 괴링으로 분한 브라이언 콕스.
히틀러의 최측근 헤르만 괴링으로 분한 브라이언 콕스.
 

2차 대전이 끝나고 1945년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나치 독일의 전범과 유대인 학살 관련자를 심판한 연합국 측의 국제 군사재판이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이다. 독일 나치 지도부 피고들은 침략전쟁 공모와 실행 등 전쟁범죄와 유대인 학살을 이유로 기소됐다. 재판은 1945년 10월 1일부터 1년간 1급 전범 22명을 심판했는데, 헤르만 괴링을 비롯한 12명은 사형, 루돌프 헤스 등 3명은 종신형, 알베르트 슈페어 등은 징역형, 나머지 3명은 형이 면제됐다. 사형 판결을 받은 12명 중 교수형 직전 헤르만 괴링은 자살하고 11명은 처형됐다. 2차 재판은 유대인 학살에 대한 재판이었다. 1946년 12월부터 1949년 3월까지 진행됐다. 유대인 학살에 관여한 관료·법률가·의사 등 185명이 기소됐고 그중 25명에게 사형이, 20명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나치에 대한 병적인 자부심에 빠진 괴링

영화 ‘뉘른베르크’는 2차 대전 직후 뉘른베르크에서 1년 동안 진행된 나치 독일 1급 전범 22명의 재판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역사적인 재판 진행 과정을 나치 전범자 대(對) 연합국 측 기소자의 대립 구도로 그린 법정 영화다. 연합국 측 수석검사인 잭슨과 히틀러의 최측근 헤르만 괴링 간의 치열한 법정 공방이 돋보인다. 괴링은 나치의 2인자로, 게슈타포를 창설했으며 제국원수 겸 공군 최고사령관이었다.

뉘른베르크에서 펼쳐지는 대규모 나치 군사 퍼레이드를 담은 기록물로 시작하는 영화는 트루먼 대통령으로부터 수석검사로 임명된 잭슨 검사(앨릭 볼드윈)가 뉘른베르크로 오면서 전개된다. 그는 재판 대상 22명 가운데 자살한 1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21명을 법정에 세운다. 잭슨은 이들 중 나치에 대한 병적인 자부심에 빠진 괴링(브라이언 콕스)과 법정 공방을 이어가지만 교묘한 괴링의 언변으로 법정 싸움에서 참패한다. 하지만 잭슨과 동료 검사들은 다시 전범 자료를 증거로 제시해 판세를 뒤집는다. 결국 괴링 등 전범 12명에게 사형 판결이 내려진다.


괴링의 교묘한 언변에 참패 당한 수석검사

법정 드라마답게 법정 안에서의 팽팽한 대결이 영화의 백미다. 수석검사 잭슨과 나치 전범 괴링 간의 논쟁이 인상적이다. 특히 영화 초반, 괴링의 교묘하고 공격적인 언변은 잭슨 검사를 압도하며 그가 나치의 2인자였음을 보여준다. 영화 속 괴링은 법정에 서서 나치의 합법성과 히틀러의 통치권 행사를 미국 대통령의 권한과 비교해 정당성을 주장하며, 유대인수용소에 대해서도 국가에 위험인자가 생기면 보호·구금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괴링은 자신들의 심리상태 등을 주시하는 연합국 군의관(정신과)과의 대화에서 “당시는 전쟁이었다. 전쟁엔 목적이 있다. 난 현실주의자이고 군인이다. 군인은 명령에 따라야 한다”며 항변한다. 괴링은 한술 더 떠 독일의 유대인 분리 정책이나 미국의 흑인 등 유색인에 대한 차별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반박한다. 괴링은 시종 연합국의 각본대로 끌려가지 않겠다며 궤변에 가까운 말로 무죄를 주장하다가 형이 집행되기 직전 자살한다.

또 다른 전범 슈페어는 괴링과는 달랐다. 건축가이자 행정가인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했다. 그는 자신이 설계한 도시 뉘른베르크 체펠린 광장에서 열린 25만 명의 군사 행진도 히틀러의 광채가 아니라 광기였다고 말한다. 그는 또 독일 도시를 파괴하라는 히틀러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고 히틀러 암살에도 가담했다고 진술했다. 슈페어는 20년형을 받는다.

영화 초반, 법정에 선 전범 21명 전부를 일일이 호명하며 소개하는 장면과 후반의 교수형 집행 장면은 재판의 역사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법정에서 상영되는, 독일군이 수용소를 떠나면서 저지른 만행을 담은 흑백 기록물은 나치의 잔인함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괴링의 교묘한 언변에 주도권을 잃은 잭슨 등 연합국 검사들이 회의에서 “재판은 쇼다. 흥미와 감흥이 없다. 이래선 진다. 증인을 내세워야 한다”며 반격을 시도하는 장면은 법정 싸움의 또 다른 이면을 보여준다.


흑백 기록물 통해 재판의 역사성 강조

뉘른베르크 전범재판(Judgment at Nuremberg)은 패전국 나치 독일이 저지른 반인륜적 행위에 대해 개인적 책임을 묻는 세계사적인 법률 사건이었다. 조직적인 유대인 학살 등 비윤리적이며 반문명적인 행위를 징벌해야 한다는 당위였다. 단순한 ‘트라이얼(trial)’이 아니라 심판의 의미가 있는 ‘저지먼트(judgment)’라는 것이다.

재판은 ‘인륜에 반하는 죄(crime against humanity)’라는 새로운 유형의 범죄를 적용했다.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은 비인도적인 행위일지라도 독립된 주권국가의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 행해진 행위를 사후에 처벌하는 것은 종래의 법으로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인류의 보편적 양심에 기초한 새로운 법률이 탄생한 셈이었다.

하지만 조직의 명령을 받은 개인이 그 조직이 내린 결정에 대해 어떻게 저항할 수 있으며, 어느 범위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라는 숙제가 남는다. 그래서 뉘른베르크 재판은 전쟁에서 이긴 자가 인류의 이름을 빌려 악을 응징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김병재 영화평론가>
사진=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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