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함정 군함이야기

PCE 호위초계함 : 노량함

윤병노

입력 2018. 09. 19   15:52
업데이트 2018. 11. 22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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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美에서 8척 대여… 활동 무대 대양으로 확대


포 6문·레이더·음파탐지기 설치

1만6112㎞까지도 항해 가능해
대잠작전·함선 호송 임무 수행

1955년 2월 11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인수한 노량함. 사진 = 해군본부 제공
1955년 2월 11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인수한 노량함. 사진 = 해군본부 제공
1955년 2월 11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인수한 노량함. 사진 = 해군본부 제공

한국 해군은 6·25전쟁 이후 해군력 증강 5개년 계획(1954~1958)과 새싹계획(1959~1962)을 수립하고 전력 확보에 매진했다. 그 결과 1955년부터 다양한 종류의 함정을 미국으로부터 인수했다.


그러나 무상 원조가 아닌 대여 형식으로 함정을 양도받았다. 미국이 1955년 1월 29일 함정대여법을 제정해 군사원조 방식을 변경했기 때문이다. 한국 해군은 6·25전쟁 중에는 함정을 미군의 군수지원 계통을 통해 직접 받았으나, 함정대여법 제정 후에는 의회의 심의를 받아야 했다.

미 행정부가 해군함정대여군원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하고, 하원·상원이 이를 심의해 통과시키면 중·소형 함정은 해군 장관과 국방부 장관의 권한으로 대여할 수 있었다. PCE(Patrol Craft Escort)급 호위초계함도 이 절차를 거쳐 대여받았다.


미 해군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잠수함을 격퇴하기 위해 PC(Patrol Craft)급 초계함과 PCE급 호위초계함을 단기간에 대량 생산했다. 우선적으로 PC급을 건조한 뒤 대양에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더 큰 톤수의 PCE급을 건조했다.


미 해군은 PCE급 124척을 원했지만 전쟁이 막을 내리면서 68척만 건조됐다. PCE급 함정은 퇴역 또는 예비역으로 전환됐으며, 일부 함정은 우방국에 대여했다. 한국 해군은 총 8척의 PCE급을 대여받았다.


1961년 12월 13일 미국 찰스턴에서 인수한 당포함(오른쪽)과 벽파함. 사진 = 해군본부 제공
1961년 12월 13일 미국 찰스턴에서 인수한 당포함(오른쪽)과 벽파함. 사진 = 해군본부 제공

1961년 12월 13일 미국 찰스턴에서 인수한 당포함(오른쪽)과 벽파함. 사진 = 해군

PC급보다 무장 강화


PCE급은 PC급과 거의 같은 구조였지만 500톤가량 덩치가 컸다. 이로 인해 PCE급 1척을 건조하는 데는 196만 달러의 비용이 들었으며, 이는 PC급보다 40만 달러가 더 비싼 가격이다.

PCE급은 2개의 디젤엔진(1800마력)을 탑재해 최대 속력이 14노트(시속 26㎞)였다. 경제 속력인 10노트(시속 18.5㎞)로 항진하면 8700마일(1만6112㎞)까지 항해가 가능했다. 무장도 대폭 강화됐다.


3인치 포 1문, 40㎜ 포(쌍열) 3문, 20㎜ 포(쌍열) 2문, 폭뢰투하대 2조, 폭뢰투척기 2조, 7.2인치 로켓탄 전방투척기 2조 등을 장착했다. 탐지 장비로는 레이더와 음파탐지기(SONAR·소나)가 설치됐다.

PC급과 PCE급 함정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작전 구역이다. PC급은 항구 근처나 연안이 주된 활동 무대였다. PCE급은 대양에서 대잠작전과 함선 호송 임무를 수행했다.


한국 해군은 PCE급 함정에 이순신 제독이 임진왜란 때 승전을 이끈 해상 전적지의 이름을 부여했다. 1955년 2월과 9월에 인수한 4척의 PCE급 함정은 노량함, 명량함, 한산함, 옥포함으로 명명됐다.


이 함정들은 미국 포틀랜드에 있는 2개의 조선소에서 1942년과 1943년 사이에 건조됐다. 각지에서 호송 임무를 수행하다 예비역으로 전환됐으며, 6·25전쟁 직후 한국 해군에 대여됐다.


1967년 5월 열린 거진함 인수식. 사진 = 해군본부 제공
1967년 5월 열린 거진함 인수식. 사진 = 해군본부 제공

1967년 5월 열린 거진함 인수식. 사진 = 해군본부


'새싹계획'에 따라 1961년 4척 추가 획득


1961년 12월 인수한 4척의 PCE급 함정은 당포함, 벽파함, 율포함, 사천함으로 명명했다. 1960년 제5대 해군참모총장에 취임한 이성호(중장 예편) 제독은 본인이 작전참모부장이었을 때 수립했던 새싹계획에 따라 전력 증강을 추진해 나갔다. 1961년 인수한 4척의 PCE급 함정도 이 계획의 일환이었다.

당시 각 함정의 인수 요원은 90명으로 구성됐다. 인수 요원들은 미 해군 수송함으로 샌프란시스코까지 이동했으며, 열차를 이용해 동부 찰스턴에 도착했다. 이어 계획된 물자를 적재하고 함정 구석구석을 정비한 뒤 1961년 12월 13일 인수식을 거행했다. 이후 미국 전역을 돌며 함정 정비와 취역훈련을 했고, 1962년 8월 진해항에 입항했다.

미국 함정을 인수하면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평균 185일이 소요된다. 그런데 1961년 인수한 PCE급 함정은 100일이 더 많은 286일이 걸렸다. 함정이 예비역으로 전환된 후 관리대기함으로 오랜 기간 방치돼 수리 소요가 많았고, 취역훈련이 미 해군에 의해 이뤄졌기 때문이다.

한국 해군이 PCE급으로 분류하는 마지막 함정인 거진함은 피격·침몰한 당포함의 대체 함정으로 1967년 5월 인수했다. 거진함은 타 함정과 달리 미 해군에서 MSF(Minesweeper)급 소해함으로 분류됐다.


한국 해군이 인수한 후에는 PCE급으로 분류·운영했다. 함정의 크기와 무장 등이 PCE급과 유사해 동일한 작전을 수행했다. 이 함정은 1943년 미국 오클랜드에서 건조됐으며, 1963년 미 육군으로 잠시 전환돼 어뢰정으로 운용됐다. 1967년 초에는 미 해군에 반납됐다가 한국 해군에 대여됐다.

글 = 윤병노 기자

사진 = 해군본부



■ 기사 원문 

    국방일보 ‘대한민국 군함이야기’, 윤병노 기자

    2018년 9월 20일자 12면  

☞  PDF 보기 : 美에서 8척 대여… 활동 무대 대양으로 확대

윤병노 기자 < trylover@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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