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병영생활의 핵심은 인성

의존적인 ‘정’에서 벗어나 ‘전우’라는 냉철함으로

입력 2018. 07. 16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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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병영에서 심리적 독립을 선언하라


 

병영생활에서 심리적 독립은 인성적으로 성숙할 기회를 제공한다. 병사들이 북카페에서 독서를 하고 있다.  국방일보 DB

 

한국 사회는 ‘정’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혈연에서부터 지연, 학연에 이르기까지 연결고리가 많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을 하는 순간, 고향을 묻고 비슷한 동네이면 출신 학교는 자동이요, 사돈에 팔촌까지 한 바퀴 돌고 나면 대충 퍼즐이 맞춰진다. 때로는 누가 묻지 않아도 먼저 퍼즐 맞추기를 시도하는 사람이 있지만, 정작 물어봐도 구체적인 답을 회피하는 이도 있다. 한마디로 정으로 얽히기 싫다는 자기표현이다. 상호 간에 이런 퍼즐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병영은 이 모든 관계를 뛰어넘을 ‘전우’ 그 자체로 뭉쳐지기 때문이다. 자기중심적인 인적관계를 따질수록 공과 사의 구별도 못해 명확한 태도를 보이지 못하게 되며, 불안한 심리적 감정의 노예가 될 뿐이다.

인간의 ‘정’을 요구하는 미성숙에서 벗어나라

어릴 때부터 각기 자라온 환경은 다르다. 입대 전에 가족과 떨어져 생활해 본 적이 없는 사람도 있고, 일찌감치 중·고등학교 때부터 자취 또는 기숙 생활에 익숙한 이도 있다. 전자는 부모와 가족을 떠나 생활한다는 자체가 외롭고 힘든 시간임을 깨닫고, 그러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인성교육의 통찰시간이 될 것이다. 후자는 더 일찍이 가족을 떠났으니 객지 생활의 외로움에 다소 익숙한 듯하지만 가족에 대한 애틋함은 마찬가지다. 이러한 환경적 분리와 심리적 독립은 정서적으로 인성발달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특히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자취나 기숙생활 때보다 더 애틋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달려 갈 수 있는 것과 달려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것의 차이다. 그러므로 병영생활은 인성적으로 이전보다 훨씬 더 성숙할 기회라고 할 수 있다.

병영의 독특함은 ‘정’이란 것이 많이 있을 것 같으면서도, 때로는 ‘냉정함’이 더하다는 것이다. 군인정신 자체가 온정주의가 아닌 철저한 냉정함이 없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감수성을 대표하는 ‘정’이나 ‘기분’ 따위를 매사에 들먹여서 살아남을 곳이 아님을 순간순간 깨달을 수밖에 없다.



자기주도적인 삶의 걸림돌에서 벗어나라

군 생활에 대부분 잘 적응하지만, 심리적으로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사회나 가족으로부터 떨어지면서 분리불안의 깊은 연결고리를 차단하지 못했을 때 일어나는 결함 중 하나다. 그 결함은 바로 인격적인 ‘정’을 갈망하는 잠재의식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번 기회에 내 속에 숨겨진 유아적 의존심이 얼마나 강한지를 느껴 보라. 그리고 삶의 걸림돌에서 벗어나라.

‘정’이란, 심리적 요인은 어쩌면 연결고리이자 나 자신을 지탱하는 생명줄이다. 마치 아이가 엄마 배 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 탯줄을 끊었을 때처럼 난생처음 경험하는 불안감인 것이다. 아직도 근본적인 불안함을 극복하지 못했다면 무슨 일에서든지 주도적인 인생을 살 수 없다. 왜냐하면 혼자 있고 싶어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상대방에게 매달리고 싶어 하는 모순된 이중성의 노예이기 때문이다.

특히, 병영은 이 단계를 극복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서야 할 미묘한 시점이다. 이 과정을 극복하지 못해 공황장애를 호소하거나 신경증적인 고위험군의 부작용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는 부모나 가족이란 ‘정’의 울타리 속에서 누군가가 정신적 지주처럼 의존의 대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나를 대신했던 아바타가 사라지고 오히려 나를 통제할 외계인들의 냉정과 냉혈의 소굴로 착각하는 불안한 심리가 자리 잡고 있다.

대부분 병영생활 시작쯤에 한번쯤은 쿵 하고 벽에 부딪히듯 갈등에 빠질 때가 있다. 자기 뜻대로 안 될 때다. 정이 많다는 것은 기분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특성이 강하다. 누구나 기분을 표현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기분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순간적인 감정을 폭발시킬 것인지의 결정은 전적으로 본인의 감정 조절에 달렸다.



모순된 자기감정의 수도꼭지를 조절하라

누구를 막론하고 정에 이끌리다 보면 공사를 구분하지 못해 매 순간 갈등을 조장하며, 판단력이 흐려져 주변 사람까지 곤경에 처하게 할 때가 많다. 자기 기분대로 살기를 희망하기에 감정의 수도꼭지를 조절하지 않으면 불필요한 감정이 흘러넘쳐 홍수가 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때로는 물 한 방울 없이 가뭄에 바싹 타들어 간 논바닥이 되기도 한다. 그럴수록 언제나 욕구불만에 가득 찬 자기 요구사항은 많아지고, 타인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니 유아적 의존심을 달래줄 사람은 없고 자신감 상실로 이어진다.

사회에서는 그런데도 정서적으로 독립했다는 착각 속에 살았었다. 하지만 통제된 병영생활에서는 자기 기분대로 뭔가 할 수 없다는 상실감이나 무능함에 어찌할지 모른다. 이전까지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감정까지 통제받으며 행동의 제약 없이 별짓을 다하고 살아왔으니 이제 와서 숨이 막힐 수밖에 없다. 이러한 행동은 한마디로 아직도 유아기적 의존성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다.

돌아보라! 당신의 응석 부리는 어린아이 같은 감정을 어르고 달래 줄 사람이 있는가? 이제부터 진정한 삶과 병영의 의미를 깨닫고 스스로 성장하는 기회는 결코 지금밖에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병영생활에서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것을 배우고, 전우들과 함께 서로 마음을 열어 허심탄회하게 말하고 공감하는 인성을 실천하라. 그러면서 내 속에 있는 온갖 감정을 자기 용광로 속에 녹여버릴 것을 명령하라. 어떤 지휘관의 명령이 아니요, 바로 지금 이 순간 내가 내게 명령을 내릴 때, 바로 ‘정’보다 냉철한 이성적 판단의 기쁨을 발견할 것이다.

<최원호 서울 한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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