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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터키 갈등 속 “쿠르드인 민족적 자치권 보장돼야”

입력 2018. 04. 18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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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중동 분쟁의 또 다른 뇌관:쿠르드 소수민족 문제


중동서 가장 많은 인구 쿠르드인, 5개국 소수민족으로 전락

터키, 동화·민족 통합책 채택…무장 테러조직 등장 부추겨

쿠르디스탄 해방 위해 ‘쿠르드 정치조직 간 단합·협력’ 필요

 


 

 


지금 중동에서는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와 ISIS테러 조직 궤멸에 앞장섰던 쿠르드민병대의 지위와 역할을 두고 첨예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일등공신 역할을 한 시리아 쿠르드인민방위군(YPG)을 미국이 전폭적으로 지원하면서 터키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터키 당국은 미국과 달리 YPG를 자국 내 테러조직인 쿠르드노동당(PKK)과 깊숙이 연계된 또 다른 테러조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YPG에 대한 미국의 지원과 군사협력 철회를 강력히 요구하던 터키는 급기야 지난 1월 YPG의 거점인 시리아 북부 아피린을 공습하기에 이르렀다.

처음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끼리 서로 분열하는 양상으로 치달으며 중동은 쿠르드 문제로 또 다른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세계 최대 나라 없는 유랑민족

쿠르드족은 누구인가? 3200만 명의 세계 최대의 나라 없는 유랑민족이다. 그들은 지난 1세기 동안 서구의 이해관계와 주변국들의 정책에 따라 협력과 배신을 경험했고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지에서 강제동화와 차별이라는 힘든 적에 맞서 처절한 생존투쟁을 해오고 있다. 이라크 북부 유전지대와 터키 동남부 티그리스강 상류를 포괄하는 ‘쿠르디스탄’에 살고 있는 이들은 인종과 언어에서 이란에 가장 근접한 인도·유럽어족에 속한다. 역사시대 이후 수많은 왕조의 지배를 경험하면서도 언어, 문자, 종교, 민족이라는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해 왔으며 대부분이 이슬람교 수니파에 속한다.


쿠르드족이 주장하는 쿠르디스탄 지도.


쿠르디스탄, 터키·이란 등 5개국으로 분할

쿠르드인들의 비극적 운명은 1차 세계대전 직후 찾아왔다. 수백 년간 오스만 제국의 일원이었던 그들은 1919년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크게 고무되어 자치와 독립의 꿈을 품었다. 더욱이 1920년 8월 10일, 연합국과 터키 정부가 체결한 세브르 조약 제64조는 쿠르드인들이 원한다면 조약 발효 1년 안에 완전한 자치권을 부여하도록 명시했다.

그러나 1923년에 체결된 로잔 조약에서 인위적 영토구획에 의해 쿠르디스탄이 5개국으로 분할되면서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 아르메니아의 영토로 강제 귀속됐다.

하루아침에 나라가 쪼개져 버린 것이다. 유전을 가진 강력한 쿠르디스탄을 원치 않았던 서구와 자국 영토의 4분의 1이 잘려나가는 터키의 강력한 반대로 쿠르드 독립안이 무산된 것이다.

중동에서도 가장 큰 인구집단을 가졌던 쿠르드인들은 5개국에서 각각 소수민족으로 전락했고, 민족 정체성이 소멸될 지경에 이르렀다. 신생국의 독립과 주권 부여라는 화려한 잔치의 그늘에서 인류 세계가 쿠르드인들에 가한 가해와 침묵은 팔레스타인 문제와 함께 20세기 가장 무거운 책임에 속한다. 현재 쿠르드 전체 인구는 터키에 1500만 명, 이라크에 500만 명, 이란에 800만 명, 시리아에 200만 명 정도가 분산돼 있고 인근 아랍과 유럽 등지에 200만 명 정도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쿠르드 인구가 가장 많은 터키는 동화와 민족통합 정책을 채택했다.

1923년 설립된 터키공화국은 기본적으로 쿠르드어의 사용과 교육 자체를 엄격히 금지했을 뿐만 아니라, 터키 헌법 89항에서는 터키 영토 내에 어떤 소수민족도 존재할 수 없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터키정부의 강제 동화정책은 결국 1978년 쿠르드노동당(PKK)이라는 무장 테러조직의 등장을 부추겼다. PKK는 1984년부터 터키 군경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을 개시해 지금까지 무려 5만 명 이상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면서 강력한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2005년부터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 협상이 시작되면서 비로소 터키 정부는 쿠르드인들에게 자국 말을 쓸 수 있는 자유를 주었고, 쿠르드어 신문과 잡지 발행을 허용했다. 2015년 6월 7일의 총선에서는 처음으로 쿠르드 정당 HDP(인민민주당)가 13.1%를 득표해 80명의 국회의원으로 의회에 진출하는 대약진을 이루기도 했다.



자치권 가장 잘 유지된 나라, 이라크

이란의 쿠르드인들은 터키인이나 아랍인보다는 언어 및 문화적인 유사성 때문에 종족적 갈등이 비교적 덜한 편이며 분리·독립보다는 자치권을 유지하면서 이란에 통합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나마 쿠르드인들의 자치가 가장 잘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가 이라크다. 1974년 헌법 개정을 통해 ‘쿠르드인이 주민의 다수를 이루고 있는 지역은 헌법에 의하여 자치를 허용한다’는 내용이 첨가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1976년에는 20만 명의 쿠르드인들이 쿠르디스탄에서 쫓겨나 이라크 남부의 사막지역으로 강제 분산되는 고통을 겪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라크는 반정부 투쟁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수백 개 쿠르드 마을에 군인을 투입해 18만 명을 체포하고 수천 명을 처단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1987~88년에는 사담 후세인의 명령에 의해 치명적인 화학무기를 24개 쿠르드 마을에 투하하는 반인륜적 공격으로 세계의 비난을 받았다.

현재 쿠르디스탄의 자치와 독립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주도적인 정치조직은 이라크의 쿠르드민주당(KDP), 쿠르디스탄 애국동맹(PUK), 시리아의 쿠르드민병대(YPG), 쿠르드민주연맹당(PYD), 터키의 쿠르드노동당(PKK) 등이다. 역설적이게도 쿠르디스탄 해방을 위해 선결돼야 할 가장 큰 과제는 서로 찢어져 경쟁하고 있는 다양한 쿠르드 정치조직 간의 단합과 협력이다.



쿠르드인의 열망, 언젠가는 독립으로

민족적 자치와 문화적 동질성을 근간으로 하는 국가를 요구하는 쿠르드인의 열망이 계속되는 한, 어떤 형태로든 그들의 자치권은 보장돼야 하고, 그 열망은 언젠가는 독립으로 실현될 것이다. 공존과 화해를 부르짖는 21세기의 길목에서 인류사회가 자기 말과 글, 원초적인 민족문화를 거부당한 3200만 명의 또 다른 인류집단을 방치한다는 것은 인류문명에 대한 명백한 오점이다.

이제 서방과 쿠르드인을 소수민족으로 소유하고 있는 주변 국가 모두가 정치적 해결을 통해 ‘쿠르드인들의 문화적 동질성 보장 → 민족적 자치 → 무장투쟁 종식과 상호 불가침 협약 → 독립과 상호협력’이라는 단계적인 목표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감수=국군기무사령부

<이희수 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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