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전선에서 날아온 세 통의 편지
전쟁에서는 목숨이 담보되지 않는다. 살아서 고향에 갈 수 있을지, 전선에서 혼이 될지 알지 못한다. 6·25전쟁 때 전선에서 날아온 세 통의 편지가 있다. 오늘은 강원도 김화지구 전투에서 전사한 고(故) 김종섭 하사가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이야기다.
김종섭 하사는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동생에게 각각 편지를 남겼다.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동안 안부를 여쭙지 못한 죄송한 마음과 어머니·조부의 만수무강을 비는 효심이 가득 담겨 있다. 어머니란 존재는 그리움의 대상이자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다. 김 하사 역시 전선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판단됐을 그 절망적인 순간에 어머니를 떠올렸을 것이다.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는 “멀리서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영수엄마 앞. 서로 손을 놓고 헤어진 지도 벌써 수개월이 지나도록 무정하게도 이제야 생각이 떠올라 새삼스레 멀리 있는 당신에게 일자서신을 전하오”로 시작된다. 다른 편지에 비해 분량은 적으나 생사를 위협하는 긴장감 속에서도 놓을 수 없는 아내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 묻어 있다.
마지막으로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는 “중공군을 빨리 물리쳐야 자유와 행복 속에서 동생과 상봉할 수 있기 때문에 시베리아 북풍이 얼굴을 휘감는 추운 겨울이나 온몸이 찌는 듯한 무더운 여름철에도 더욱더 용기 충천하여 적과 싸우고 있다”거나 “너의 웃음과 함께 껄껄 웃고 싶다” 등 혈육에 대한 애정과 함께 조국을 지키는 군인의 굳은 각오가 가득하다.
편지의 주인공인 김 하사는 끝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68년의 세월이 지나며 빛이 바래고 잉크도 희미해졌지만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쓴 그의 편지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여전히 가득하다.
고인의 편지들은 그의 부인이 정성스럽게 보관해 오다가 1998년 세상을 떠나며 며느리에게 가보로 물려줬다. 며느리인 박현자 씨는 개인의 아픈 역사를 통해 우리 모두 전쟁의 교훈으로 삼길 바라는 마음으로 2004년 전쟁기념관에 기증했다. 이 빛바랜 편지는 부군에 대한 그리움이 커서인지 아니면 수없이 들여다봐서인지 탈색이 심하고 훼손도 많이 돼 있다. 현재 이 편지들은 전쟁기념관 기증실에 김종섭 하사의 가족사진과 함께 전시돼 있다.
역사는 기록과 기억을 바탕으로 복원된다. 편지 역시 큰 의미에서 본다면 기록의 일부다. 김종섭 하사는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의 하나였던 김화지구 전선에서 자신의 생생한 체험기를 편지로 남겼다. 편지는 그에게 유일한 희망이자 의지의 힘이었다. 전선에서 가족에게 보낸 김 하사의 편지를 통해 국가와 가족의 소중함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본다. <강현삼 전쟁기념관 유물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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