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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국군조직법 공포… 국방의 골격 갖춰지다

기사입력 2018. 01. 24   17:02

4 국방체제의 정비



대한민국 국방조직과 제도는 정부조직법, 국군조직법, 국방부직제령, 병역임시조치령, 병역법, 해병대령, 공군설치령, 군인복무령에 의해 체제를 갖추며 정비돼 나갔다.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법률 제1호로 제정된 정부조직법은 정부 행정조직의 대강(大綱)을 정해 통일적이고 체계 있는 국무수행(國務遂行)을 할 수 있도록 규정됐다.






1948년 7월 17일 제헌헌법 등 공포

정부조직법 제4조에 의하면 행정 각부는 내무부, 외무부, 국방부, 재무부, 법무부, 문교부, 농림부, 상공부, 사회부, 교통부, 체신부 등 11부가 있었다. 각 부에는 장관 1인과 차관 1인을 두고, 그 밑에 비서실, 국(局), 과(課)를 두도록 했다. 국방부본부에는 비서실, 제1국(인사·행정), 제2국(정신교육·보도), 제3국(군수·후생), 제4국(방첩·검찰) 및 항공국(航空局) 등 5개국이 있었다. 이범석(李範奭) 국방부 장관의 초대 비서실장에는 후에 국무총리를 지내는 강영훈(육군중장 예편) 중령이, 장관 전속부관에는 박병권(육군중장 예편, 제14대 국방부 장관) 중령이 보직됐다.

국군의 통수와 군정 및 군령에 관한 법령은 1948년 7월 17일 공포된 제헌헌법(制憲憲法)을 비롯해 정부조직법, 국군조직법, 국방부직제령, 공군본부직제령 등이다. 그중에서도 핵심 법령은 국군조직법과 국방부직제령이다. 국군조직법은 최용덕 국방부 장관의 임시부관으로 임명된 신응균(육군중장 예편) 육군항공 이등병에 의해 만들어졌다. 신응균은 일본 육군소좌 출신이었으나 광복 후 자숙하는 차원에서 군 간부로 들어오지 않고 육군항공대에 입대해 이등병으로 있었다. 신응균은 국내 최고의 군사이론가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국군조직법이 이등병에 의해 만들어진 셈이다. 신응균의 부친은 제3대 육군참모총장과 제4대 국방부 장관을 지낸 신태영(육군중장 예편, 국방과학연구소 초대소장 역임) 장군이다. 신응균은 신태영의 장남이다. 두 부자가 모두 육군중장으로 전역했다.


“대통령은 국군을 통수한다”

국방법령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국군통수체계는 대통령을 정점으로 국방부 장관, 국군참모총장(國軍參謀總長), 육·해·공군 총참모장으로 연결됐다. 그리고 대통령의 통수(統帥)에 대한 법률적 근거는 헌법에 “대통령은 국군을 통수하고, 국군의 조직과 편성은 법률로 정한다”라고 명확히 명시됐다. 통수권 행사에 대해서는 1948년 11월 30일 공포된 국군조직법에 “대통령은 국군의 최고 통수자(統帥者)로서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국군 통수상 필요한 명령을 발(發)할 권한이 있다”고 돼 있다.

또한 국방부 장관은 군령권 행사를 더 원활히 하기 위해 국방부 편제에 미국 합참의장에 해당하는 국군참모총장과 연합참모회의(聯合參謀會議)를 설치해 운용하도록 했다. 국군참모총장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했다. 국군참모총장은 현재의 합동참모의장에 해당하는 직책으로, 각군 총참모장을 통해 각군에 대한 군령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국군조직법에 그 권한과 책임이 명시돼 있다. 국군참모총장의 임무는 대통령 또는 국방부 장관의 지시를 받아 국방 및 용병(用兵) 등에 관해 육·해군을 지휘통할(指揮統轄)하며 일체의 군정에 관해 국방부 장관을 보좌하는 것이었다. 국군조직법에는 국군참모총장이 각군에 대한 군령권을 효율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국방부에 연합참모회의를 설치할 수 있게 했다. 지금의 합동참모회의에 해당한다.


육해공군총사령관에 정일권 준장 임명

연합참모회의는 육·해군의 작전과 용병 그리고 훈련에 관한 중요한 사항을 심의하는 군 최고의 합의기구였다. 연합참모회의는 의장인 국군참모총장, 국군참모차장, 육·해군의 총참모장과 참모부장(參謀副長, 현재 참모차장 해당), 국방부 항공국장·제1국장·제3국장, 그리고 국방부 장관이 지명하는 육·해군 장교로 구성됐다. 초대 국군참모총장에는 육군의 채병덕(6·25때 전사, 육군중장 추서) 대령이 임명됐으나 후에 채병덕이 제2대 육군총참모장에 임명되면서 국방기구 간소화 방침에 따라 국군참모총장 직책은 1949년에 폐지됐다. 따라서 6·25전쟁 발발 때는 우리 군에 합참의장 제도가 없었다. 이에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은 6·25전쟁이 발발하고 서울이 함락된 직후 육군참모부장이던 정일권(육군대장 예편) 준장을 육군소장 승진과 동시에 육군총참모장에 임명하면서 육해공군총사령관을 겸하도록 했다.

미군 및 유엔군과의 연합작전 협의를 염두에 두고 지금의 군 서열 1위인 합참의장에 해당하는 육해공군총사령관 직책을 부여했던 것이다. 실제로 전쟁 기간 정일권 장군은 육해공군총사령관 직책을 갖고 미군 및 유엔군과 연합작전을 협의했다.

국방조직과 체제가 어느 정도 정비되자, 정부에서는 대한민국 국군의 최고 계급인 장성(將星) 진급식을 이승만 대통령 주관하에 중앙청 광장에서 성대히 거행했다. 그때가 1948년 12월 1일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준장 진급자는 모두 5명이었다. 광복군 출신으로 육군의 김홍일(육군중장 예편)과 송호성(육군준장 예편, 6·25때 납북), 항일애국지사인 해군의 손원일(해군중장 예편), 일본군 출신으로 육군의 이응준(육군중장 예편)과 채병덕이었다. 이어 정부에서는 다음해인 1949년 2월 1일 군이 급속히 확장되자 장성들을 다시 진급시켰다. 이때 최초의 소장 진급자가 4명 나왔다. 육군의 김홍일·이응준·채병덕, 해군의 손원일 제독이다. 그때 육군의 정일권과 이형근(육군대장 예편)이 준장으로 진급했다.


1953년, 백선엽 장군 국군 최초 대장 진급

공군에서는 다음해인 1950년 5월에 공군총참모장 김정렬(공군중장 예편)과 국방부 차관 최용덕(공군중장 예편)이 준장으로 진급했다. 규모가 타군에 비해 작았던 해병대에서는 1950년 9월에 해병대사령관 신현준(해병중장 예편)이 준장으로 진급했다. 이후 정일권 장군이 1951년 2월에 국군 최초로 중장에, 뒤를 이어 백선엽(7·9대 육군참모총장과 4대 합참의장 역임) 장군이 1953년 1월에 국군 최초의 대장(大將)으로 진급했다. 건군 5년 만에 대장이 배출됐다. 이로써 국군은 국방법령에 의해 국방조직과 체제를 정비하고, 군의 골격을 갖추게 됐다. <남정옥 전 군사편찬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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