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러리 DMZ 식물 155마일

노루귀

입력 2018. 01. 17   18:36
업데이트 2019. 01. 17   13:51
0 댓글

겨울이면 눈 덮인 전선에서 먹이를 찾아 산을 내려오거나, 눈으로 길이 막혀 이곳저곳을 헤매는 야생동물을 만나는 일이 종종 생깁니다. 커다란 멧돼지 가족들은 위협적이지만 노루나 고라니 혹은 산토끼들이 발자국을 남기며 뛰어가는 모습은 여간 귀엽고 반가운 것이 아닙니다.

식물 중에도 노루가 있습니다. 아니 ‘노루’란 이름이 붙은 식물들이지요. 분홍색 꽃이 아름다운 노루오줌, 노루가 은혜를 갚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노루발풀, 흰 꽃이 순결한 노루삼,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노루귀입니다. 모두 다 좋은 숲에 산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진=양형호 작가, 국립수목원 제공
사진=양형호 작가, 국립수목원 제공


10㎝ 미만 분홍·보라색 등 다양한 색으로 개화

한방서 ‘장이세신’ 약재로 진통·진해·소종 등의 효능


노루귀는 그중에서도 가장 가깝게 만날 수 있는 우리 꽃입니다. 그런데 왜 식물 이름이 노루귀가 됐느냐고요?

꽃이 피고 나면 아래쪽에서 잎이 말려 나오는데 그 모습이 마치 솜털이 보송한 노루의 귀와 같답니다. 물론 잎이 다 펼쳐지면 세 갈래로 얼룩진 또 다른 모습이 되지만요. 노루귀는 봄이 오면, 아직 그늘진 곳의 잔설이 녹기도 전에 가장 먼저 꽃을 피운답니다.

날씨는 춥지만, 노루귀를 생각하니 마음만은 봄이 다가오는 듯 느껴지네요. 겨우내 쌓인, 수많은 DMZ 내 야생 꽃들에 대한 그리움이 한 번에 밀려오는 듯싶습니다. 하지만 설레는 새봄, 첫 산행에서 만나게 되는 작고 앙증맞은 그러나 너무도 사랑스러운 노루귀 꽃이 정답기로는 최고입니다.


노루귀는 다 자라봐야 높이가 10㎝를 넘지 못하는, 이른 봄 작게 피는 꽃입니다. 얼었던 땅이 녹기 무섭게 연하디연한 꽃자루를 반 뼘쯤 되는 길이로 내어 보내는데 그 꽃자루에는 보드랍고 하얀 솜털이 다복이 나 있지요.


한자리에서 나오는 여러 개의 꽃자루 끝엔 2㎝가 조금 못 되는 귀여운 꽃이 핍니다. 대부분의 꽃들은 꽃 색이 하나인데 노루귀는 곳에 따라 다양한 색깔들이 나타납니다. 흰색, 연한 분홍색, 진한 분홍색, 하늘색, 아주 드물게는 보라색으로 피고, 다른 색깔의 선이 둘러지기도 하지요.


노루귀의 꽃을 보는 것도 행복하지만, 다양한 꽃 색들을 곳곳에서 찾아내는 재미도 쏠쏠하답니다. 꽃이 한껏 자태를 뽐냈다 싶을 즈음 잎이 나오고, 노루귀 같던 잎새가 활짝 펼쳐지는데 크게 세 갈래로 갈라진 잎의 모양과 약간 두터운 질감, 간혹 잎 표면에 나타나는 흰색의 얼룩이 특색이지요.


노루귀는 눈을 헤치고 작은 꽃을 내민다 하여 파설초(破雪草), 설할초(雪割草)라고도 합니다.

라틴어 학명 중에서 노루귀 집안을 통틀어 부르는 속명 헤파티카(Hepatica)는 간장이란 뜻을 가진 헤파티커스(hepaticus)에서 유래됐습니다. 세 개로 나누어진 잎의 모양이 간장(肝腸)을 닮아 생겨난 명칭입니다. 영어 이름 역시 유사한 뜻의 아시안 리버리프(Asian liverleaf)이고요.

한방에서 부르는 생약 이름은 장이세신(獐耳細辛)이에요. 뿌리를 포함한 모든 부분을 여름에 채취해 볕에 말려 두었다가 약으로 사용하는데 진통, 진해, 소종의 효능이 있어 주로 두통, 치통, 복통과 같은 증상에 진통제로 쓰거나 감기, 장염, 설사 등에 처방한다고 합니다. 잎을 따다가 나물로 무쳐 먹을 수도 있는데 미나리아재빗과의 식물이 그러하듯 독성이 있으니 뿌리를 제거하고 살짝 데친 다음 물에 우려내 쓴맛과 독성을 없애고 먹어야 합니다.

사실 봄에는 지천인 게 산나물인데 구태여 독성 있는 노루귀를 나물로 이용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그보다는 관상용 자원으로 추천하고 싶어요. 작고 앙증맞은 꽃 모양새는 우리가 분에 많이 심어 가꾸는 아프리칸 바이올렛과 크기와 느낌이 비슷하면서도 훨씬 정감 있고 아름답지요. 게다가 노루귀의 꽃 색깔은 아무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니 노루귀를 꽃 색깔별로 모아 화단에 심거나 화분에 담아 키우면 꽃도 보고 잎도 보고 좋답니다.

낙엽 지는 나무 밑에 심어 두면, 나무에 잎이나 꽃이 피기 전에 삭막한 봄의 풍경을 아름다운 야생화로 장식할 수 있습니다. 번식은 종자와 포기나누기가 가능하지만 포기나누기는 뿌리 자체를 잘라 심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므로 대개는 종자번식에 의존합니다. 5~6월이면 벌써 종자가 익는데 이때 채종한 종자를 바로 뿌리는 것이 좋아요. 


게으른 사람은 볼 수 없는 봄날 숲속의 요정 같은 노루귀가 많은 장병 여러분의 사랑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양형호 작가, 국립수목원 제공
사진=양형호 작가, 국립수목원 제공


■ 기사 원문 PDF 파일로 읽기

차가운 눈 헤치고 꽃망울 터뜨리는 파설초

http://pdf.dema.mil.kr/pdf/pdfData/2018/20180118/B201801182001.pdf

국방일보 기획 ‘DMZ 식물 155마일’ 2018년 1월 18일자 ‘노루귀’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