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잊혀진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불꽃같은 조국 사랑, 우리 가슴에 영원히 타오르리

입력 2017. 12. 26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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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끝> 연재를 마치며


최재형 선생이 순국 직전까지 살았던 우수리스크에서 열린 4월 참변 추도식 모습.  필자 제공
최재형 선생이 순국 직전까지 살았던 우수리스크에서 열린 4월 참변 추도식 모습. 필자 제공



기업·교육·독립운동가 등으로 자신의 모든 것 조국·민족 위해 헌신

선생의 위대한 삶, 지금 우리에게 무한 자긍심 갖게 하는 계기 되길


최재형 선생이 순국한 지 올해 2017년이 97주기가 되는 해다. 2020년이 되면 최재형 선생 순국 100주기를 맞는다. 그동안 최재형 선생의 일대기를 알아본 것처럼 연해주 초기 독립운동사에서 최재형 선생만큼 많은 일을 한 사람도 없고, 최재형 선생처럼 한인들의 존경을 받은 인물도 없다.

최재형 선생만큼 교육에 힘쓴 사람도 없고, 최재형 선생만큼 러시아에서 인정을 받은 사람도 없다.

노비로 태어나 모국인 조선에 아무것도 빚진 것이 없었는데도, 자신의 모든 것을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했다.

이러한 최재형 선생이 서훈을 받은 연도가 1962년이다. 대한민국은 1962년이 돼서야 나라를 위해 순국한 모든 애국지사에게 비로소 처음으로 서훈을 시행한 것이다. 국내에 후손이 없었던 최재형 선생이 이때 신분이 노비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독립장을 받았다.

게다가 더더욱 안타까운 일은 우리나라가 북한과 대치하는 상황이라서 소련이 건재했던 시기에는 소련 국적의 최재형 선생을 언급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고 러시아와 재수교를 하면서 양국의 교류에 물꼬가 트이고 학자들이 현지에 가서 조사하고 사료를 발굴하면서 연해주 독립운동사가 깜깜한 어둠에 갇혔다가 조금씩 밝혀지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초기 연해주에 거주하던 한인들은 오로지 일본을 상대로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항일투쟁을 했음에도 광복 후 러시아에서 활동한 항일투사들이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제대로 평가돼야 할 것이다.

현재 우수리스크에 있는, 최재형 선생이 마지막까지 거주하던 집은 대한민국 정부가 구입해 ‘최재형 박물관’으로 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있다. 이르면 2018년엔 완공될 것이다.

지금까지 러시아 연해주 역사탐방 여행객들은 최재형 선생이 살던 집에 들르긴 했지만, 러시아인이 살고 있어서 안을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필자가 2012년에 우수리스크에 가서 최재형이란 인물을 사료로서 처음 대했을 때도, 러시아인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먼발치에서 벽에 붙어 있는 최재형의 집이라는 현판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머지않아 연해주를 찾는 관광객들은 ‘최재형 박물관’에 가서 최재형 선생에 대한 여러 자료와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최재형 선생은 알면 알수록 파란만장한 삶을 산 거인이다. 최재형 선생의 삶은 예술로 승화시켜도 무궁무진한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인물이며, 국내는 물론 재외동포들에게도 멋진 롤 모델이 되고도 남는다.

최재형 선생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은 앞으로 더욱더 빛날 것이다. 한인들에게 ‘페치카’로 불렸던 따뜻한 인간애는 휴머니즘의 최상에 도달할 것이고, 국가를 사랑하는 애국정신은 최재형 선생이 살아온 이력이 충분히 입증해준다.

기업가, 교육가, 독립운동가, 언론인, 자상한 가장의 삶까지 모든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멋진 삶을 살다가 일본의 총탄에 순국한 최재형 선생을 지금까지 알리지 못한 채 교과서에도 등재되지 못한 것은 후손으로서 너무나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기념비는 우리 선조들이  일제 치하 독립운동을 활발히 전개했던 역사적인 현장을 기리고자 세운 것이다.  필자 제공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기념비는 우리 선조들이 일제 치하 독립운동을 활발히 전개했던 역사적인 현장을 기리고자 세운 것이다. 필자 제공


필자는 2012년에 청소년 소설 『까레이스키, 끝없는 방랑』을 출간한 직후, 고려인의 삶을 더듬어 보려고 우수리스크에 들렀다가 이름조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최재형이란 인물을 사료로 처음 만났다. 그 후 최재형 선생을 연구한 교수들의 책과 논문을 통해 최재형 선생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됐고, 최재형 선생이야말로 청소년들에게 멋진 롤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독립운동가 최재형』을 2014년에 출간했다. 그 후 ‘최재형기념사업회’와 인연이 되어 최재형 선생을 알리고 기리는 일에 봉사하고 있다.

2011년 설립된 ‘최재형장학회’는 고려인 후손 대학생들에게 학자금을 후원하는 단체로 최재형 선생과는 혈연도, 지연도, 학연도 연결되지 않은 80이 넘은 순수한 기업인 어르신들이 십시일반 정신으로 만든 단체로서 2015년 (사)최재형기념사업회로 거듭났다.

‘최재형기념사업회’는 2015년 서울 국립현충원에 최재형 선생 부부 위패를 부부위패비 5번에 봉안했다. 이것도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비영리법인 단체인 ‘최재형기념사업회’가 한 것이다.

앞으로 ‘최재형기념사업회’에서는 최재형의 교과서 등재를 목표로 최재형 선생을 알리고 선양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선진국일수록 국가를 위해 희생한 영웅들을 가장 숭고하게 기린다. 이제 우리 대한민국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순국선열들을 제대로 모시는 일등 국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진정한 애국자를 제대로 알리고 선양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국가기관에서도 최재형 선생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위대한 애국자를 기리는 일에 격려와 지원을 해주기 바라며, 최재형 선생의 위대한 삶의 자취가 모든 국민에게 자긍심을 갖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를 갈망한다.

1년 동안 최재형을 연재할 수 있도록 지면을 할애해준 국방일보에 감사를 드리며 국방일보 독자들께도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끝으로 최재형의 사료를 발굴하셔서 꼼꼼히 책으로 펴내 연재를 하는 동안 참고할 수 있도록 해주신 수원대학교 박환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문영숙 작가·안중근 홍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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