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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 중요성 간파…중국어 교육 강화한 영조

기사입력 2017. 12. 24   11:26

<234·끝> 흰 걸 검다고 해도 어떻게 알겠는가

 중국어 능통한 자 파격 인사…문관 대상 강좌 열고 시험까지

국가적 자존심보다 ‘완벽한 외교’ 우선…리더의 덕목 엿보여

 





수능시험부터 대학원 진학시험, 입사시험 등등 영어능력을 요구하는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우리 역사를 보면 요즘만큼은 아니어도, 주변 나라 언어 교육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조선 시대 사역원은 중국어, 여진어(만주어), 몽골어, 일본어를 가르치는 국가기관이었다. 이미 조선 초부터 외국어에 능통한 인재는 귀천을 따지지 않고 등용해 통역, 번역 등 외교에 필요한 업무에 투입했다. 그런데 조선 후기가 되면 외국어 공부는 역관들만 한다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천시하는 경향까지 생겨났다. 점차 사역원 학생들에 대한 특전이 없어지면서 학생 수가 줄었고, 중국어 선생들조차 교재를 잘 읽지 못하는 정도가 됐다. 청나라를 무조건 멸시하는 풍조까지 더해져 만주어를 하는 사람은 더 드물었다.

정조 때 청나라로 간 사신들이 황제를 만나는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전날 건륭제가 특별히 조선 사신들에게 선물을 내려 청나라 예부에서는 감사 인사를 원했다. 그래서 조선 사신들이 궁궐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건륭제가 나타나 조선 사신들을 쳐다보며 “그대들 중 만주어를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사신단의 최고책임자 이은이 만주어를 하는 역관 현계백을 시켜 감사 인사를 올리게 했다. 건륭제는 만족한 듯 머리를 끄덕이고는 다시 물었다. “그대는 만주어를 잘하는데, 그대의 사신도 만주어를 할 수 있는가?” 역관이 못한다고 대답하자 황제는 또 물었다. “그러면 중국어는 할 수 있는가?” 역관은 “그 또한 못합니다”라고 답했다. 황제는 만주어는 고사하고 중국어도 못하면서 조선을 대표하는 사절단으로 온 사신들을 한 번 쓱 쳐다보고는 지나갔다.

참 낯 뜨거운 장면이다. 조선 사신이 중국어도, 만주어도 못하면서 오로지 역관들의 입을 빌려 국제관계를 끌어가려 하니 청나라 쪽에서도 답답했던 일이 이미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지기 30년 전에 이미 영조는 이런 상황을 염려해 사역원 학생뿐만 아니라 문관들에게도 중국어를 익히도록 엄한 명령을 내린 적이 있다. 중국어 강좌도 열고 시험도 시행했다. “역관들이 비록 중국어를 잘한다 해도 문관들이 이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역관들이 흰 걸 검다고 해도 어떻게 알겠는가?” 영조는 젊은 문관 관료들을 중심으로 중국어를 열심히 공부하도록 했다. 또 북쪽 경계지역 고을에 만주어 통역관을 배치하도록 했고 중국어나 만주어에 능통한 자에 대해 파격적인 인사도 단행했다.

하지만 당시 관료들이 역관을 낮춰보는 인식은 여전했고, 심지어 정조조차도 청나라의 언어에 대한 실상을 잘 알지 못했다. 청나라 사신이 조선에 오면 조선에 만주어를 아는 사람이 드물어 중국어 통역관을 놓고 이중 통역을 하기도 했다. 그러니 사신들은 마음 놓고 자기들끼리 조선 관료의 면전에서 만주어로 비밀 이야기를 했다. 보다 못한 영의정 김상철이 정조에게 이런 사태를 보고하면서 만주어를 가르쳐야 한다고 건의했다. 하지만 정조의 대답은 “만주어가 중국어보다 중요한가?”였다.

이 당시 외국어 교육이 겉돌고 있었던 이유는 만주어를 배우는 것에 국가적 자존심을 거는 게 맞는 거냐는 명분적 사고도 있었고, 현지교육이 안 되는 것도 문제였다. 외국에 가지는 않고 우리나라에서 교재만 가지고 어학교육을 하니 제대로 되지가 않았다. 사역원 학생이 모두 153명인데 매년 16명만 중국 해외연수를 갈 수 있었다.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어학교육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영조는 조선 초부터 강조해 왔던 외국어 능력을 문관들에게까지 요구했다. 당시는 관료 중에서 중국말이나 만주말을 잘하면 마치 별종을 보는 것처럼 신기해하는 분위기였고, 18세기 후반기의 대표적 실학자인 박제가가 따돌림을 당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하지만 영조는 국제관계의 중요성을 깨닫고 외교적 대화나 문서를 다루는 데 결함이 없도록, 문관들의 외국어 능력을 강조했다. 실제 상황에서 통역관이 대부분의 역할을 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를 지휘하고 감독하는 사신들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조직에서 리더가 모든 것을 혼자서 끌고 나갈 수는 없다. 그래서 주위에 참모도 두고, 능력 있는 인재를 사업에 파견한다. 하지만 자기가 주관하는 사업의 큰 개요는 꿰뚫고 있어야 한다. 영조가 외국어 능력을 강조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리더가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기본은 갖추고 있어야, 영조 말마따나 검은 걸 희다고 하는 부하를 가려낼 수 있다.

<알림>
지난 2013년부터 연재해온 ‘엠키스와 함께하는 인문학 산책’이 이번 회를 끝으로 막을 내립니다. 우리 군의 든든한 지식베이스캠프 ‘엠키스’는 인터넷(www.mkiss.or.kr)과 인트라넷(mkiss.mnd.mil)을 통해 계속 만나실 수 있습니다. 그동안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 혜 경 호서대 창의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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