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전쟁과 게임

총보다 무서운 전염병, 전쟁사를 바꾸다

입력 2017. 12. 20   17:43
0 댓글

<48> 전염병 주식회사


플레이어가 직접 전염병이 돼 인류를 멸망시키는 것이 목적

난도 높아질수록 사람들은 손 잘 씻고 의사들도 열심히 치료

순식간에 퍼지는 병원체 위험성 통해 전염병 예방 의미 전달

 



군대 조직은 많은 사람이 함께 모여 병영이라는 생활 공간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위생 개념에 매우 엄격하고 철저하다. 한두 사람만 전염성 병에 노출되더라도 집단생활 중심의 장병 건강이 흔들리는 것은 순식간이기 때문이다.


위생 관념이 없었던 중세 시절만 하더라도 동양에서의 ‘염병’, 서양의 ‘흑사병’ 등 강력한 전염병이 휩쓸고 지나갈 때마다 수많은 사람이 희생됐고 이로 인해 역사의 흐름이 바뀌기까지 할 정도로 전염병은 공포의 존재였다. 그나마 근대 이후 백신과 위생 개념이 보급됨에 따라 이제는 치명적인 전염병들이 더 이상 일상적인 위협을 만들지는 않지만, 여전히 감기 같은 가벼운 질환들도 전염성을 갖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전염병의 위험성을 게임 ‘전염병 주식회사’는 굉장히 색다른 시각에서 조망하는데, 바로 플레이어가 직접 전염병 자신이 된다는 개념에서다. 게임을 잡은 플레이어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자신의 전염병을 퍼뜨려야 하며, 궁극적으로 전염병을 활용해 전 인류를 멸망시키는 것을 목표로 부여받는다.



전염병 퍼뜨리며 전염병을 깨닫는 게임

전염병을 퍼뜨리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전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병원균의 유전자를 계속 진화시켜야 하는데, 적절한 진화가 아니면 전염성이 제대로 늘어나지 않아 전 인류에게 전염되지 않는 경우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선진국은 높은 항생제 사용으로 병원균이 살아남기 힘들고, 추운 지방과 더운 지방은 각각 기후 문제로 전염병이 쉽게 퍼지지 않는 경우가 나타난다.

특히 지리적으로 고립된 환경에서 전염병을 전파하는 일은 생각보다 고된 일이 된다. 대표적인 고난도 지역으로 손꼽히는 북유럽의 아이슬란드는 오로지 배편으로만 전염 경로가 존재하고, 안 그래도 추운 기후 덕에 설령 전파가 되었더라도 병원체가 그대로 전염 없이 죽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나 남태평양의 뉴질랜드처럼 고립된 지역의 전파가 상당한 고난도로 게이머들에게 손꼽히곤 한다.

무엇보다도 ‘전염병 주식회사’의 가장 큰 난관은 전염성과 치사율의 밸런스 조정이다. 당연히 병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서는 병원균을 진화시켜야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점차 병이 가진 치사율도 올라간다. 자칫 잘못해서 아직 병이 채 퍼지기 전에 치사율이 과도하게 올라가 버리면, 전염시키기도 전에 감염자들이 죽어버리면서 그대로 전염병이 소멸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로 발생하는 것이 ‘전염병 주식회사’의 게임 구조다. 따라서 적절한 수준의 치사율을 유지하며 전 세계로 병을 퍼뜨리는 전략적 자세가 플레이어들에게 요구된다.

적절한 배분을 통해 병이 널리 퍼지더라도 이번에는 인류의 도전이 병원체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각 지역의 의사와 진료기관들의 눈에 병이 발견되면 국제적인 주시가 이루어지고, 병이 심각하다고 판단될 경우 전 세계가 본격적으로 플레이어의 전염병 치료에 예산과 인력을 집중하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진척을 이뤄내는 치료제 연구가 100%를 달성하면 바로 백신과 치료제가 전 세계로 보급되고 전염병은 순식간에 소멸한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최대한 은밀하게 보건당국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전염 루트를 파고들어야만 전 인류 멸망이라는 게임의 목적에 다다를 수 있게 되어 있다.

추울수록, 귀찮을수록 중요해지는 개인위생

박테리아, 진균류, 바이러스와 프라이온을 넘어 심지어 나노 기계 바이러스와 같은 SF적 상상력 영역의 병원체까지 총출동하는 ‘전염병 주식회사’의 다채로운 사례들은 각각 특정 병원체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시나리오를 통해 역으로 각 전염병의 의미를 플레이어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애써 나의 전염병을 살리고, 더욱 강력하게 진화시키고, 더 멀리 퍼져나갈 수 있도록 개조하는 일을 수행하다 보면 저절로 전염병이 번창하기 좋은 환경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특히 게임의 난이도 설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가장 쉬운 난도에서 사람들은 전혀 손을 씻지 않으며, 어려운 난도에서는 사람들이 약간 강박증에 걸린 듯이 손 씻기에 집착한다는 설정이 ‘전염병 주식회사’에는 존재한다. 쉬운 난도에서 의사들은 업무 태만에 물들어 있으나, 고난도에 들어가면 집에 가지 않는 의사들의 빈틈을 전염병은 노려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게임이 전염병 전파를 통해 인간을 절멸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은 사실 일종의 유머 포인트이기도 하다. 오히려 역설적인 입장을 통해 전염병의 위험성을 이해시킨다는 점은 유쾌한 상상과 대중 의학 상식의 절묘한 결합에 의한 결과였으며, ‘전염병 주식회사’는 이러한 점을 인정받아 여러 매체에서 훌륭한 사회적 게임의 사례로 자주 다뤄지기도 한 게임이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면서 아무래도 씻는 일 자체가 귀찮아지기도 하는 것이 병영 내의 겨울일 것이다. 하지만 집단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생, 그것도 특히 병의 시발점이 되는 개인위생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전염병 주식회사’에서 단 한 명의 감염으로 시작되는 병의 전파 속도는 감염자가 늘어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손 씻기의 생활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더 이상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