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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소국 恨 맺힌 한인 역사…강대국 건설이 恨 푸는 길

기사입력 2017. 12. 15   17:47

<5·끝>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간 하바롭스크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유럽으로 가자~! 남북 분단으로 섬 아닌 섬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유럽에 가는 것’은 로망이 아닐 수 없다. 탐방단도 설레는 가슴을 안고 우수리스크에서 하바롭스크까지 야간열차를 타고 달렸다. 665km를 9시간 15분 만에 야간열차로 갔으니 평균 시속 75km 정도였다. 하바롭스크에서는 러시아의 동방 진출의 꿈을 엿볼 수 있지만 전혀 예기치 못한 시설도 볼 수 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1891년 착공하여 1916년 완성되었다.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 모스크바까지 9288km를 6박 7일간 60개 역을 거쳐 가는데, 취중 사고 위험 때문에 열차 내에서 주류 판매와 음주가 금지다. 우리는 4인 1실 침대칸에 모여 담소를 나누며 밤새 달려 하바롭스크에 도착하였다.

하바롭스크는 러시아 극동 연방관구의 수도이자 하바롭스크 지방의 주도이다. 역에 내리니 광장의 거대한 동상이 눈에 들어온다. 동상을 좋아하는 러시아의 낯익은 풍경이다. 이 동상은 17세기 말에 동진하던 러시아제국의 카자크 탐험가들의 지도자인 예로페이 하바로프이고, 그 이름을 본따서 도시 이름을 하바롭스크라고 지었다고 한다. 유명한 아무르 강(흑룡강)가에는 동시베리아 초대 총독이자 시베리아 철도를 기획한 러시아 영웅 무라비예프 동상이 있었다. 러시아 최고가 화폐인 5000루블에 나와 있을 정도이니 동방으로 진출하려 했던 러시아의 꿈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 외에 전혀 예기치 못한 장소도 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변해 있지만 하바롭스크 전범 재판이 열렸던 당시 장교회관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군 관동군 지도부와 생체 실험 및 세균전 관계자들에 대한 군사재판이 열렸던 곳이란다. 새삼 일본의 잔학성에 분노가 일었다. 



아무르강변의 무라비예프 동시베리아 총독 동상. 2006년에 발행된 최고가 화폐인 5000루블의 주인공이다.


한인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와 연해주 복귀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한인의 아픈 한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중국과 소련은 8월에 불가침조약을 맺고 한인 강제이주에 대한 결의문을 체결한다. 한인이 일본과 내통할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이유에서였다.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한인이 중앙아시아로 갈 때 첫 출발지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수리스크로 가는 길목의 라즈돌리노예역이다. 우리 시골역보다 더 한적해보였던 이곳에서 1937년 9월부터 12월까지 3개월간 2차에 걸쳐 강제 이주가 진행되었다. 1차는 국경 지역 거주 한인들이, 2차는 연해주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소나 돼지처럼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간 것이다.

한겨울 40여 일의 기차 수송 끝에 도착한 곳은 연해주에서 6000여km나 떨어진 반(半)사막 지대인 중앙아시아였으며 집 한 채 없는 허허벌판으로 제정러시아 시대부터 유배지로 유명했던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와 인근 우쉬토베,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 남부였다. 당시 숙청을 총지휘했던 소련 내무인민위원 니콜라이 예조프의 보고서에 강제 이주 한인은 총 17만1781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벌판에서 땅굴을 파면서 고단한 삶을 시작했던 그들은 카자흐스탄의 솝호스, 우즈베키스탄의 콜호스 등과 같이 소련 최고의 모범 집단농장으로 바꿔낸다. 지금도 미개척지가 널려 있는 시베리아 벌판도 통일 후 한국인이 진출하면 옥토로 바뀔 수 있으리라. 통일이 필요한 이유를 여기서도 볼 수 있었다.

다행히 소련이 해체된 이후 1993년 4월 러시아 의회는 지난 과오를 인정하고 고려인 명예회복법안을 채택하여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은 연해주로 재이주할 수 있게 된다. 이들은 중앙아시아에서 민족 갈등의 위기감, 경제적 생활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회를 찾고자 연해주로 돌아왔다. 현재 연해주에 5만여 고려인이 살고 있는데 3만여 명이 재이주해 정착한 사람들이다. 약소국의 설움이 아직도 진행 중인 것이다.



1937년 중앙아시아로 한인 강제 이주 당시 출발지인 라즈돌리노예역.


구한말 상황보다 더 악화된 현 상황

현재 우리는 어떠한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현재 한반도 상황이 구한말 시대와 유사하다고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때보다 더 악화되었다고 본다. 구한말시대는 통상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부터 1897년에 선포된 대한제국이 1910년 8월 한일병합될 때까지를 일컫는다.

구한말 당시 청나라는 아편전쟁과 청일전쟁 패배로 국력이 쇠락했고, 러시아는 동방정책으로 부동항 개설을 위해 연해주를 확보하여 세력을 팽창하다가 러일전쟁 패배로 주춤하던 시기였으며, 미국도 남북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 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던 상황이었다. 다만 일본은 메이지유신으로 국력이 강성해져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며 주변국을 침략하던 상황이었다. 이때 조선은 쇄국 정책을 펼쳤으나 이내 강대국의 각축장으로 유린된 역사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지금은 어떠한가? 중국은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유라시아에 대한 일대일로, 태평양 통제를 위한 도련선전략, 인도양 장악을 위한 진주목걸이전략 등 국가전략으로 중국 몽(夢)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는 신동방정책과 군사력의 질적 개선으로 강대국의 위상 회복에 나서고 있으며, 미국은 이미 세계 제1의 강대국이 되었고, 일본은 군사적 역할을 확대하면서 보통국가화를 차근차근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오히려 남북분단 상태에 북 핵 미사일 위협에 직면한 상황이다. 서울대 송호근 교수도 “사실 오늘날 보면 그때보다 외부적인 상황은 더 나빠졌다. 주변 외세의 4강 구도는 변하지 않았고 여기에 통제 불능의 북한 핵이라는 변수까지 생겼기 때문에 훨씬 더 악화된 상황”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남북통일로 5080의 강대국이 되자

통일이 답이다. 북한 인권을 해결하고 국제평화에 기여하는 길은 바로 통일이다. 북한 주민을 공포와 기아로부터 구해내고 북한 핵 위협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길도 통일이다. 주변 4강국 틈에서 눈치만 보는 것에서 벗어나 주도권을 잡으려면 통일 강대국으로 가는 게 답이다. 대한민국 경제 슬럼프를 벗어나는 길도 통일이다. 국민소득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가 되는데 25개국 평균 8.2년, 독일과 일본은 5년이 소요되었다. 우리는 2006년에 ‘2050’, 곧 국민소득 2만 달러, 국민 5000만 명을 달성하였으나 아직도 3만 달러 달성을 못 하고 있다. 남북이 통일되면 5080 즉 국민소득 5만 달러, 인구 8000만으로 성장하여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통일 비용을 걱정하는데 2014년 국회 예산정책처에서는 평화통일 시 통일 비용은 4657조 원이 소요되지만 통일 편익은 1경4451조 원이라고 제시했다. 분단 상황에서 소요되는 분단 비용은 소모적이지만 통일 비용은 투자 비용이며 통일 이후 45년간 발생하는 경제적 편익이 3배로 많다는 것이다.

남북이 통일되면 북한의 많은 지하자원과 한국의 기술력이 결합하여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다. 도로 포장률 6% 등 북한의 낙후된 기간산업에 대한 투자로 건설 붐이 일어날 것이다. 통일이 되면 반도 국가에서 해양 국가, 대륙 국가로 도약하여 인천공항이 세계 허브공항으로 되었듯이 부산항, 원산항이 세계 허브항구로 발돋움할 수 있지 않을까?

필자는 1회에서 선열들의 독립을 위한 노력을 ‘항일무장투쟁’에서 ‘독립전쟁’으로 바꿔나가자고 제언한 바 있다. 독립전쟁의 투혼을 남북통일의 노력으로 이어가자. <김칠주 가톨릭대학교 안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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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유럽으로 가자~! 남북 분단으로 섬 아닌 섬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유럽에 가는 것’은 로망이 아닐 수 없다. 탐방단도 설레는 가슴을 안고 우수리스크에서 하바롭스크까지 야간열차를 타고 달렸다. 665km를 9시간 15분 만에 야간열차로 갔으니 평균 시속 75km 정도였다. 하바롭스크에서는 러시아의 동방 진출의 꿈을 엿볼 수 있지만 전혀 예기치 못한 시설도 볼 수 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1891년 착공하여 1916년 완성되었다.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 모스크바까지 9288km를 6박 7일간 60개 역을 거쳐 가는데, 취중 사고 위험 때문에 열차 내에서 주류 판매와 음주가 금지다. 우리는 4인 1실 침대칸에 모여 담소를 나누며 밤새 달려 하바롭스크에 도착하였다.

하바롭스크는 러시아 극동 연방관구의 수도이자 하바롭스크 지방의 주도이다. 역에 내리니 광장의 거대한 동상이 눈에 들어온다. 동상을 좋아하는 러시아의 낯익은 풍경이다. 이 동상은 17세기 말에 동진하던 러시아제국의 카자크 탐험가들의 지도자인 예로페이 하바로프이고, 그 이름을 본따서 도시 이름을 하바롭스크라고 지었다고 한다. 유명한 아무르 강(흑룡강)가에는 동시베리아 초대 총독이자 시베리아 철도를 기획한 러시아 영웅 무라비예프 동상이 있었다. 러시아 최고가 화폐인 5000루블에 나와 있을 정도이니 동방으로 진출하려 했던 러시아의 꿈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 외에 전혀 예기치 못한 장소도 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변해 있지만 하바롭스크 전범 재판이 열렸던 당시 장교회관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군 관동군 지도부와 생체 실험 및 세균전 관계자들에 대한 군사재판이 열렸던 곳이란다. 새삼 일본의 잔학성에 분노가 일었다. 



아무르강변의 무라비예프 동시베리아 총독 동상. 2006년에 발행된 최고가 화폐인 5000루블의 주인공이다.


한인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와 연해주 복귀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한인의 아픈 한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중국과 소련은 8월에 불가침조약을 맺고 한인 강제이주에 대한 결의문을 체결한다. 한인이 일본과 내통할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이유에서였다.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한인이 중앙아시아로 갈 때 첫 출발지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수리스크로 가는 길목의 라즈돌리노예역이다. 우리 시골역보다 더 한적해보였던 이곳에서 1937년 9월부터 12월까지 3개월간 2차에 걸쳐 강제 이주가 진행되었다. 1차는 국경 지역 거주 한인들이, 2차는 연해주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소나 돼지처럼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간 것이다.

한겨울 40여 일의 기차 수송 끝에 도착한 곳은 연해주에서 6000여km나 떨어진 반(半)사막 지대인 중앙아시아였으며 집 한 채 없는 허허벌판으로 제정러시아 시대부터 유배지로 유명했던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와 인근 우쉬토베,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 남부였다. 당시 숙청을 총지휘했던 소련 내무인민위원 니콜라이 예조프의 보고서에 강제 이주 한인은 총 17만1781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벌판에서 땅굴을 파면서 고단한 삶을 시작했던 그들은 카자흐스탄의 솝호스, 우즈베키스탄의 콜호스 등과 같이 소련 최고의 모범 집단농장으로 바꿔낸다. 지금도 미개척지가 널려 있는 시베리아 벌판도 통일 후 한국인이 진출하면 옥토로 바뀔 수 있으리라. 통일이 필요한 이유를 여기서도 볼 수 있었다.

다행히 소련이 해체된 이후 1993년 4월 러시아 의회는 지난 과오를 인정하고 고려인 명예회복법안을 채택하여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은 연해주로 재이주할 수 있게 된다. 이들은 중앙아시아에서 민족 갈등의 위기감, 경제적 생활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회를 찾고자 연해주로 돌아왔다. 현재 연해주에 5만여 고려인이 살고 있는데 3만여 명이 재이주해 정착한 사람들이다. 약소국의 설움이 아직도 진행 중인 것이다.



1937년 중앙아시아로 한인 강제 이주 당시 출발지인 라즈돌리노예역.


구한말 상황보다 더 악화된 현 상황

현재 우리는 어떠한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현재 한반도 상황이 구한말 시대와 유사하다고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때보다 더 악화되었다고 본다. 구한말시대는 통상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부터 1897년에 선포된 대한제국이 1910년 8월 한일병합될 때까지를 일컫는다.

구한말 당시 청나라는 아편전쟁과 청일전쟁 패배로 국력이 쇠락했고, 러시아는 동방정책으로 부동항 개설을 위해 연해주를 확보하여 세력을 팽창하다가 러일전쟁 패배로 주춤하던 시기였으며, 미국도 남북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 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던 상황이었다. 다만 일본은 메이지유신으로 국력이 강성해져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며 주변국을 침략하던 상황이었다. 이때 조선은 쇄국 정책을 펼쳤으나 이내 강대국의 각축장으로 유린된 역사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지금은 어떠한가? 중국은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유라시아에 대한 일대일로, 태평양 통제를 위한 도련선전략, 인도양 장악을 위한 진주목걸이전략 등 국가전략으로 중국 몽(夢)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는 신동방정책과 군사력의 질적 개선으로 강대국의 위상 회복에 나서고 있으며, 미국은 이미 세계 제1의 강대국이 되었고, 일본은 군사적 역할을 확대하면서 보통국가화를 차근차근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오히려 남북분단 상태에 북 핵 미사일 위협에 직면한 상황이다. 서울대 송호근 교수도 “사실 오늘날 보면 그때보다 외부적인 상황은 더 나빠졌다. 주변 외세의 4강 구도는 변하지 않았고 여기에 통제 불능의 북한 핵이라는 변수까지 생겼기 때문에 훨씬 더 악화된 상황”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남북통일로 5080의 강대국이 되자

통일이 답이다. 북한 인권을 해결하고 국제평화에 기여하는 길은 바로 통일이다. 북한 주민을 공포와 기아로부터 구해내고 북한 핵 위협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길도 통일이다. 주변 4강국 틈에서 눈치만 보는 것에서 벗어나 주도권을 잡으려면 통일 강대국으로 가는 게 답이다. 대한민국 경제 슬럼프를 벗어나는 길도 통일이다. 국민소득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가 되는데 25개국 평균 8.2년, 독일과 일본은 5년이 소요되었다. 우리는 2006년에 ‘2050’, 곧 국민소득 2만 달러, 국민 5000만 명을 달성하였으나 아직도 3만 달러 달성을 못 하고 있다. 남북이 통일되면 5080 즉 국민소득 5만 달러, 인구 8000만으로 성장하여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통일 비용을 걱정하는데 2014년 국회 예산정책처에서는 평화통일 시 통일 비용은 4657조 원이 소요되지만 통일 편익은 1경4451조 원이라고 제시했다. 분단 상황에서 소요되는 분단 비용은 소모적이지만 통일 비용은 투자 비용이며 통일 이후 45년간 발생하는 경제적 편익이 3배로 많다는 것이다.

남북이 통일되면 북한의 많은 지하자원과 한국의 기술력이 결합하여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다. 도로 포장률 6% 등 북한의 낙후된 기간산업에 대한 투자로 건설 붐이 일어날 것이다. 통일이 되면 반도 국가에서 해양 국가, 대륙 국가로 도약하여 인천공항이 세계 허브공항으로 되었듯이 부산항, 원산항이 세계 허브항구로 발돋움할 수 있지 않을까?

필자는 1회에서 선열들의 독립을 위한 노력을 ‘항일무장투쟁’에서 ‘독립전쟁’으로 바꿔나가자고 제언한 바 있다. 독립전쟁의 투혼을 남북통일의 노력으로 이어가자. <김칠주 가톨릭대학교 안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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