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철길따라 3800km 안보대장정

'춘천 가는 기차'는 변했지만 추억과 낭만은 여전했다

김철환

입력 2017. 11. 29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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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경춘선


 


 

엄밀히 이야기하면 경춘선은 ‘철도’와 ‘전철’ 사이의 애매한 영역에 존재한다. 무궁화호의 마지막 운행 이후 망우부터 춘천을 잇는 경춘선은 열차 여행의 설렘 대신 빠르고 잦은 전철의 편리함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전망 좋은 2층까지 구비한 ITX-청춘이 용산과 청량리에서 출발해 춘천을 향하면서 열차여행 코스로서의 매력도 되찾게 됐다. 아름다운 북한강의 풍광을 배경으로 6·25전쟁의 흔적을 곳곳에 담은 경춘선을 살펴봤다.

 

 

● 경춘선은- 1939년 첫 개통, 젊음의 낭만 넘치는 열차로 각광


경춘선은 1939년 처음 개통된 이후 농산물과 임산물의 수송로, 국토 개발의 균형을 이루는 중간지점, 젊음의 낭만이 넘치는 여행 열차 등 다양한 변화를 거쳐 오늘날 복선 전철의 모습을 갖게 됐다. 일제 치하에서 첫 열차 운행을 시작한 경춘선은 현재의 서울시 동대문구 제기동에 위치했던 ‘성동역’과 춘천 사이를 연결하는 총 연장 93.5㎞ 철도였다. 이후 대한민국의 성장기였던 1971년 서울의 시가지 확장에 따라 시내 구간이었던 성동역부터 성북역 구간이 폐지됐다.

북한강을 끼고 달려 풍광이 좋기로 유명한 경춘선은 열차 여행의 매력을 담은 수도권 인근의 관광지로서 청평역과 가평역, 강촌역 인근을 발전시켰다. 특히 강촌과 대성리는 대학교 엠티(MT)의 요충지로서 20세기 말까지 황금기를 구가하기도 했다. 80~90년대 춘천 가는 무궁화호가 출발하던 청량리역에는 MT에서 먹을 식자재를 두 손에 들고 등에는 기타를 멘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1989년 발표된 가수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기차’는 이와 같이 당시 경춘선이 품고 있던 젊은이들의 향기와 매력을 가득 담아 큰 공감을 일으킨 바 있다.

21세기에 들어서며 본격 추진된 복선전철화 사업을 비롯한 시대의 변화는 경춘선에도 많은 변모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일단 2010년 12월부로 경춘선 무궁화호가 운행을 중단했다. 이후 운행을 시작한 수도권 전철은 상봉역에서 춘천역까지 1시간20분가량 소요되며, 운행 빈도도 훨씬 잦아져 춘천을 서울 생활권으로 바짝 끌어당기는 효과를 가져왔다. 2012년부터는 준고속 열차인 ITX-청춘도 운행을 개시했다. 하지만 81.3㎞의 복선전철 구간 중 절반가량만 기존 철로를 활용해, 나머지 구간 역들은 폐역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과거 역을 중심으로 발전했던 관광지들은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반면 가평의 남이섬과 자라섬을 비롯한 경춘선 일대의 가족관광지들이 새롭게 발전하고 있고, 기존 철로를 활용한 자전거길, 전철로 가볍게 찾을 수 있는 등산 코스 등 건강과 웰빙을 중심으로 한 여행도 각광받고 있다.

달리는 열차가 바뀌고 철로도 달라졌지만, 아름다운 북한강변의 자연경관이 그대로인 이상 경춘선은 수도권 국민이 즐겨 찾는 관광지로 그 역할을 지속할 것으로 기대된다.


 

● 가평- 자라섬·남이섬의 관문…포화 속 미40사단이 지은 가평고

 

경춘선 가평역은 내륙의 유명한 섬인 ‘자라섬’과 ‘남이섬’을 향하는 관문이다.

재즈페스티벌로 유명한 자라섬은 북한강 내에 자리한 20만 평 규모의 아름다운 섬으로, 4㎞에 이르는 매력적인 수변 산책코스와 한적한 분위기를 즐기려는 캠핑족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2004년부터 이어온 재즈페스티벌은 가을이 한창인 10월 자라섬을 문화의 향기가 넘치는 곳으로 장식해주고 있다. 이미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유명한 관광지로 거듭난 남이섬의 주소지는 강원도 춘천이지만, 선착장이 가평군에 위치해 가평역에서 접근이 용이하다.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관광 100선’ 중 한 곳인 남이섬은 초기 한류 폭풍을 아시아 국가들에 불러일으킨 ‘겨울 연가’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초겨울 날씨임에도 오전부터 남이섬에 입도하려는 관광객들이 탄 선박이 물안개를 가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와 함께 단풍이 아름다운 명지산과 청정한 자연휴양림 축령산을 비롯해 도마치 계곡, 유명산, 운악산, 호명호수, 청평호반, 용추계곡 등 가평 8경과 아침고요수목원, 쁘띠프랑스 등 개성 넘치는 문화 관광시설에서도 여가를 즐길 수 있다.

가평에서 만날 수 있는 대표적인 6·25전쟁의 흔적으로는 ‘가평고등학교’가 있다. 6·25전쟁 당시 가평에 주둔하던 미40사단의 조지프 클리랜드 사단장은 전쟁통에 천막교실에서도 학업의 끈을 놓지 않고 공부에 열심인 대한민국 학생들 모습에 감동을 받아 부대 장병들의 기부금을 모아 현 가평고등학교의 전신인 ‘가이사 중학원’을 설립했다. 가이사라는 교명은 19세 나이로 전사한 미40사단의 첫 전사자 케네스 카이저 중사를 기리기 위한 것으로, 올해 초 가평군 북면에 그를 기리는 ‘카이저 길’이 지정되기도 했다. 미40사단은 여전히 매년 가평고등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면서 6·25전쟁부터 시작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 강촌- 옛 추억이 가득한 관광명소

 


수많은 대학생이 성인으로서의 설렘을 안고 단체 외박을 하기 위해 첫발을 내딛던 옛 강촌역은 이미 추억만 남아 있는 쓸쓸한 장소로 변모해 있었다. 전철역 이전 직후에는 옛 강촌역도 추억의 명소로서 관광지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이 이어졌었다. 옛 강촌역과 김유정역 사이에 레일바이크가 놓였으며, 철로가 철거된 역사는 그래피티가 가능한 곳으로 발전시켜 기념촬영 포인트로 성장시키고자 했었다. 하지만 전철역과 붙어 있는 김유정역 레일바이크와 달리 옛 강촌역은 대중교통에서 동떨어져 있기에 이용객이 드물어, 강촌 출발 레일바이크는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는 김유정역에서 편도로 강촌역까지 온 관광객들이 출발지로 돌아갈 때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잠시 스쳐 지나가는 곳이 되고 말았다.

그래피티의 빛도 바래고, 그 위에 덧씌워진 여행객들의 낙서도 2010년대에 멈추어 있는 모습이 무상함을 느끼게 했다. 역 인근 조형물에 새겨진 ‘강촌역에서는 산도 구름도 기차도 강물 속으로 떠난다’는 글귀가 오히려 이제는 쓸쓸함을 더하는 듯했다. 그래도 여전히 사륜 스쿠터와 자전거 등을 타고 강가의 정취를 느끼고 싶은 젊은이, 또는 옛 추억이 그리운 30~40대라면 강촌은 여전이 매력 있는 관광지다.

 

 

● 춘천- 닭갈비·막국수 먹거리부터…레일바이크·소양강 처녀상 등 볼거리까지 다양


춘천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가진 강원도청 소재지이며, 경춘선으로 수도권과 직결된 도시다. 춘천 하면 ‘닭갈비’와 ‘막국수’가 떠오를 정도로 확고한 지역 명물을 갖고 있으며, ‘김유정 문학촌’, ‘김유정역 레일바이크’, ‘소양강 처녀상’, ‘소양강 스카이워크’ 등 다양한 관광 상품도 갖추고 있다. 일단 춘천역을 나서면 예전 미군기지였던 캠프 페이지 터의 너른 주차장이 눈에 띈다. 과거 이곳이 미군기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흔적은 한쪽에 우뚝 서 있는 물탱크와 그 옆의 막사로 쓰던 건물뿐이다. 현재 물탱크와 막사는 ‘꿈자람 물정원’이라는 물놀이장의 일부로 활용되고 있으며, 향후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레저·교육 시설로 지속 발전시켜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춘천역을 나선 뒤 소양강가로 향하면 거대함에 압도되는 소양강 처녀상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그 앞에는 6·25전쟁을 기억하게 하는 ‘포니 브리지’ 기념비가 자리하고 있다. 포니 브리지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7월 미62건설공병대대가 건설한 목교로, 62공병대대의 지휘관이었다가 청천강 전투에서 전사한 프랭크 포니 대령의 이름을 따 명명됐다. 오늘날 소양2교의 전신인 이 다리는 60년대까지 춘천시민들의 유용한 교통로로 활용되기도 했었다. 더불어 기념비는 한미 공병 간 우의를 다지는 곳으로 지난 6월에도 양국 공병 관계관들이 모여 교류행사를 가진 바 있다.

이와 함께 1930년대 우리 문학을 이끈 춘천 출신 문인 김유정 생가와 함께 한옥단지를 조성한 김유정 문학촌에는 문화의 향기를 느끼기 위한 중장년부터 교과서에서 배운 작품에 대한 현장학습을 나온 학생들까지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있었다. 2002년 복원된 김유정 생가에서는 겨울을 앞두고 초가를 교체하는 작업이 한창이었으며, 그의 문학 작품의 한 장면을 재현한 동상들 앞에는 기념촬영을 하는 관광객들이 이어졌다.

김유정의 이름을 딴 ‘김유정역’ 인근에는 ‘강촌레일파크’에서 운영하는 레일바이크가 있다. 김유정역에서 옛 강촌역까지 이어지는 8.5㎞ 구간을 달리는 레일바이크는 과거 무궁화호를 타던 이들이 차창 밖으로 즐기던 아름다운 풍광을 고스란히 체험할 수 있다. 지금은 갈대가 멋스럽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코스모스가 아름다움을 더했다고 한다. 이날 함께한 2공병여단 장병들은 낙엽만 굴러도 웃음이 터지는 20대 청년들인 만큼 달리는 내내 호방한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사실 운동 부족의 현대 도시인들의 경우 오랜만에 밟는 페달의 묵직함과 자신의 약해진 체력에 초반부터 웃음이 터지긴 한다. 이후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경치와 함께 호흡하다 보면 ‘힐링’이란 단어가 갖는 의미가 실제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강촌레일바이크의 특징은 마지막 터널 구간에서 가상현실(VR) 게임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 불덩이를 날리는 괴물들과 맞서는 VR 게임이 진행될 때 터널 내에서는 효과음과 함께 실제 불기둥이 솟아 실감을 더했다.

이날 레일바이크에 오른 장병들은 “가족과 친구, 연인 등 춘천을 찾은 모든 지인들에게 권하고 싶은 즐거운 체험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김철환 기자 < droid001@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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