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잊혀진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노령 한인들 군자금 모금·총기 모집 ‘너도 나도’

입력 2017. 11. 28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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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노령 귀화선인 규합



군 자치기관 의원·감사위 의장에 선출

아내와 아이들 이사 잠시 행복한 생활

김하석의 무력시위운동 계획에 동참

임시정부 대한국민의회 외교부장 맡아


슬라비얀카에 살던 최재형은 일본 침략군이 상륙하자 1918년 자신의 행방을 알리지 않고 가족의 품을 떠나 니콜스크-우수리스크로 갔다. 최재형은 우수리스크에서 군 자치기관의 의원과 자치기관 감사위원회 의장으로 선출됐다.

그러나 최재형은 그 이전에도 의병부대와 함께 작전하기 위해 집을 떠나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을 때가 많았다. 최재형의 아내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는 참을성 있는 여성으로 흔들림 없이 꿋꿋하게 남편의 소식을 기다렸다.

늦가을이 되어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최 엘레나는 슬라비얀카에 있던 모든 재산과 큰 서재는 그대로 놓아둔 채 일본 점령군을 피해 간단한 침구와 귀중품을 챙겨서 아이들과 함께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났다.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는 블라디보스토크에 살고 있는 자신의 동생 김 콘스탄친 페트로비치의 집에 머물렀다. 김 콘스탄친 페트로비치는 블라디보스토크 시에 있는 남자중학교에서 최초 고려인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 후 최 엘레나는 김 콘스탄친 페트로비치의 집에서 가족을 데리고 니콜스크- 우수리스크로 이사했다.

최재형은 그곳에서 과거에 했던 항일운동을 이어나가면서 파르티잔 부대의 특별임무를 띠고 비밀리에 무기를 공급하는 사업을 했다. 최재형의 가족은 잠시 평화롭게 살 수 있었다. 5명의 자녀는 학교에 다니고 막내 아이는 여섯 살이 됐다. 그러나 최재형의 가족과 아이들에게는 잠시의 평화였고, 그 후에 닥칠 큰 불행은 점점 최재형과 한인 의병들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돼 다가오고 있었다.

 



한편 1919년 3월 초 서울에서 러시아 연해주로 온 김하석은 블라디보스토크 및 니코리스크 한족회와 서로 연결해 한족독립기성회를 조직하고 한족독립운동 계획을 수립하기로 했다. 그 계획은 노령 동청철도 연선 지방, 간도 훈춘 및 서간도 지방에 산재한 동지 중에서 1만여 명을 모집해 조선 국내로 들여보내 무력시위운동을 전개할 두 가지 안(案)을 제시했다.

첫째는 모집한 1만여 명의 동지를 두 부대로 나눠 우선 5000명을 선발대로 편성하기로 했다. 선발대는 무기를 휴대하지 않은 채 두만강 국경을 건너 함경북도로 침입해 태극기를 흔들고 큰 소리로 만세를 부르기로 하고 도중에서 일본 관헌에게 체포 혹은 구속당하는 자는 그대로 두기로 했다.

또한 후방 제2대 5000명은 무기를 휴대하고 간도 및 훈춘의 각 지방에서 함경북도 국경지대를 습격해 한 지점을 점령하기로 하고, 그곳을 한족공화임시정부의 소재지로 하거나 혹은 간도에 임시정부를 조직하기로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둘째는 동지 1만 명이 무기를 휴대하고 함경북도를 습격해 한 지점을 점령한 후에 한족공화정부를 설치하고 동시에 조선 각지에서 의병을 봉기시켜 일본 군경과 대항하는 안이었다. 1안과 2안의 목적은 기본적으로 성패에 구애받지 않고 조선 각지를 병란지로 만들어 미국이나 기타 열강의 간섭을 유도함으로써 한족자결문제를 강화회의 의제로 상정하는 데 목표를 두기로 했다.

 

일본군이 상륙할 때까지 최재형이 거주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슬라비얀카 해안의 현재 모습. 
 필자 제공

김하석은 서울에서 동행한 수 명의 동지와 함께 노령한족회와 협력해 이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의병규합, 의연금 모금 및 무기류 모집에 진력했다. 노령 귀화선인의 규합은 얀치혜에 거주하는 최재형과 하바롭스크에 거주하는 김인수가 담당했다. 노령 거주 한인들은 군자금 모금 및 총기 모집을 위해 대대적으로 노력해 총기는 1호에 1자루씩 제공하기로 했다. 의병들의 규합은 이범윤이 담당했다. 이범윤은 훈춘, 안도현, 무송현 방면으로 밀사를 파견해 옛 부하들을 규합하려고 했다. 김약연은 한 알렉산드르, 최 니콜라이 두 사람을 대동하고 간도로 돌아와 간도 동지와의 연락 및 독립군 규합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한편 재러 한인들은 대한국민의회라는 정식 명칭으로 회장에 문창범, 부회장에 김철훈, 서기에 오창환 등의 명의로 3월 17일 독립선언서를 배포했다. 또 3월 중순 대한국민의회는 최재형을 외교부장에, 이동휘를 선전부장에, 김립을 이동휘의 부관에 선임하고, 이동휘를 간도에 파견해 독립운동의 선전·선동에 종사하게 했다.

처음에는 이범윤을 선전부장에 임명해 옛 부하들을 모으려 했으나 이미 노인이 된 이범윤이 감당하기 어려워 이동휘가 이범윤과 홍범도의 옛 부하를 소집해서 지도하게 했다. <문영숙 작가·안중근 홍보대사>

참고서적: 박환 저 『시베리아 한인민족운동의 대부 최재형』, 문영숙 저 『독립운동가 최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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