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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해서 불러온 막말… “감당할 수 있겠어요?”

기사입력 2017. 11. 27   17:05

<230> 나는 부딪히면 바로 폭발한다

 

 

정조, 스스로 ‘태양증’ 있다고 밝힌

다혈질 왕…가감 없는 성격·언행 보여

상대를 무시·비교하는 태도 표출

자신의 감정 모두 드러내는 것은

상대에게 오히려 불신 키우는 결과로

 


정조는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이끈 학자적인 군주, 개혁군주로 알려져 어쩐지 성품도 온화할 것 같다. ‘정조실록’은 정치 행위를 기록한 역사서인 만큼 정조의 성격이 적나라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상당히 무게감 있고 백성을 사랑하며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 정도다.

 

직설적 표현이 친밀감의 제스처?


그런데 몇 년 전 공개된, 심환지에게 보낸 정조의 편지 297통을 보면 뜻밖의 반전이 보인다. 정조의 가감 없는 성격과 언행이 바로 그 반전이다.

정조는 스스로 ‘태양증’이 있다고 표현할 정도로 다혈질이었다. “나는 태양증이 있어 부딪히면 바로 폭발한다.” 노론 벽파의 수장, 심환지에게 정조는 이렇게 고백했다. 훗날 아들 순조의 장인이 된 김조순에게는 “옳지 못한 짓을 보면 바로 화가 치밀어 얼굴과 말에 나타나며 아무리 억누르려고 애를 써도 태양증 기질을 고치기 어렵다”고 말하기도 했다.

스스로 진단을 내린 그대로 정조는 과연, 대단히 직선적인 성격이었다.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신뢰하던 측근, 서용보에 대해 정조는 심지어 ‘호로자식’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이 사람은 그저 돌아가는 세태만 지켜볼 뿐이다. 참으로 호로자식이니 안타까운 일이다. 요즘에 하는 꼴은 점점 본색을 가리지 못하니 어쩌겠는가?” 그런가 하면 심환지에게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경은 이제 늙어서 머리가 허옇다. 그런데 매번 입조심을 못 해서 문젯거리를 만드니 경은 정말 생각 없는 늙은이다. 너무너무 답답하구나.’

당시 관료 중에 물의를 일으킨 자가 있었는데, 심환지가 이 사건을 서용보에게 전해주자, 정조는 자기가 서용보에게 말하지 않은 내용까지 말을 옮겼다고 노발대발한 것이다. 정조는 ‘생각 없는 늙은이’로도 부족했는지 “앞으로 경을 대할 때는 나 역시 입 다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으니 정말 우습게 되었다. ‘이 떡 먹고 이 말 말아라!’라는 속담을 명심하는 게 어떤가?”라고 비아냥댔다. 나이 많은 정승에게 속담까지 들먹이며 대놓고 깎아내렸다.

원래 조선은 임금이라고 해서 정승과 대신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존경을 표하며 예를 다했다. 하지만 정조는 평소 ‘군왕은 친밀하지 않으면 신하를 잃는다. 현명한 신하를 사사로이 대해야만 큰일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심환지에게 보낸 그 많은 편지도 이런 생각이 반영된 것이었고, 그만큼 정조는 심환지를 친밀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정조는 편지에서 오늘날의 ‘ㅋㅋ’에 해당하는 ‘呵呵’라는 표현까지 사용한다.

그런데 정조의 이런 태도와 직설적인 표현을 단순히 신하와 친밀해지기 위한 제스처로 간주해야 할까?

1797년 7월 인사이동이 있었다. 당시 이조판서였던 이재찬의 인재 발탁이 못 미더웠던 정조는 심환지에게 서용보를 통해 이조판서의 인재 천거에 개입하도록 지시했다. 그런데 심환지가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던지, 정조는 심환지를 두고 “지금 경의 꼴은 참으로 ‘장 80대’에 해당한다 하겠다. 경이 강력한 의지를 갖추고 움직여주지 않으니 내가 믿을 수가 없다. 소심할 때 소심하더라도 용기를 내야 할 곳에서는 용기를 내야 하는데, 나서서 일해야 할 때 오히려 머뭇거리고 두려워하니 부끄럽지도 않은가”라고 했다. 정조 스스로 심환지를 친밀한 신하로 생각해, 하루가 멀다하고 편지를 보낸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심환지라면 이런 직설적인 표현이 어떻게 느껴졌을까?

자신감과 신뢰감의 딜레마

 

정조는 세손 시절부터 그저 공부만 하고 책만 읽었다고 회고할 정도로 소외돼 있었다. 즉위한 후에도 생명의 위협을 느껴서 재위 7년이 될 때까지 밤에 옷을 갖춰 입고 잤을 정도였다. 그만큼 학문적으로는 큰 성과를 이뤄, 스스로 임금인 동시에 스승을 자처할 정도로 자신감을 키웠다. 하지만 이런 자신감은 태양증이라고 표현되는 성격과 함께 상대를 깎아내리고 무시하고 비교하는 언행으로 표출됐다. 이런 태도는 아랫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줄 수 없다.

현명한 신하와 사사로이 친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정조는 개인적인 편지로 이를 실천하려 했지만, 국가경영에서 국왕은 국왕의 위치가 있고, 신하는 신하의 위치가 있는 법이다. 정책을 결정하고 조정하는 데 개인적인 편지를 이용해 막말하고 자신의 감정을 모두 드러낸 것은 편지를 받는 상대에게 오히려 불신감만 키우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조는 심환지에게 받은 편지를 모두 태워 없애버리라고 신신당부했지만, 심환지는 한 통도 없애지 않고 모두 스크랩해서 현재까지 남아있게 됐다는 것이 그 방증이다.

조직이 잘 운영되려면 리더는 가장 기본적으로 언행부터 조심해야 한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속담이 있는 것처럼 일상생활에서뿐만 아니라 조직의 운영도 상사와 부하직원이 서로 존중해야 신뢰가 쌓이고, 효과적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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