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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인도·태평양 구상’ 공식화… 아직 갈 길은 멀다

입력 2017. 11. 19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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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트럼프가 바꾼 새로운 체스판 ‘인도-태평양’…미·중 격돌


中 중심의 ‘아·태 전략’ 탈피… 트럼프, 아시아 순방서 ‘인도·태평양’ 강조

日 아베 총리, 2007년부터 발빠른 움직임… 中 ‘일대일로’ 맞서 본격 견제

중국 반발·인도의 ‘美 개입’ 경계·동남아 ‘회피 전략’ 등 험로 예상


 



미국이 아시아 패권을 놓고 벌이는 ‘거대한 체스판’ 전략이 바뀌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외교안보 수뇌부의 입에서 ‘아시아-태평양(Asia-Pacific)’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대신 ‘인도-태평양(Indo-Pacific)’이 미국의 패권전략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지난달 18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연설을 통해 “평화와 안정, 항행의 자유, 자유롭고 공개적인 사회구조를 공유한 미국과 인도가 인도-태평양 동쪽과 서쪽의 등대로 기여해야 한다”면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의 화두를 열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을 통해 ‘인도-태평양 전략’을 공식화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6일 도쿄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해양질서 유지 강화는 지역평화와 번영에 사활적으로 중요하며 미·일은 이를 위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 신뢰와 자유·민주주의·인권·법치 등 공동의 가치에 기반한 한미동맹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 안정과 번영을 위한 핵심 축임을 강조하였다”라는 문구를 한미 공동 언론발표문에 삽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베트남 다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최고경영자 회의 기조연설에서도 “인도-태평양”을 거듭 강조하며 이 지역에서의 번영과 자유, 개방을 역설했다.

‘인도-태평양’이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1850년대. 당시 이 단어는 인도네시아 원주민을 지칭하는 “인도-태평양 섬 주민들(Indo-Pacific Islander)”이란 표현에서 처음 사용됐다.

‘인도-태평양’이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지난 2007년 1월 인도의 해군장교인 구프리트 쿠라나 박사가 쓴 논문에 이 단어가 언급되면서다. 쿠라나 박사는 “인도의 경제적 부상과 군사력 확대로 인도양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인도는 아시아-태평양에서 더 이상 배제될 수 없게 됐다”며 아시아 전략에서 인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인도-태평양’ 구상을 제안했다.

쿠라나 박사의 논문 이후 ‘인도-태평양’ 구상에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나라는 일본이었다. 같은 해 8월 아베 총리는 인도의회에서 “인도와 태평양의 결합은 확대된 아시아에서 자유와 번영의 바다로 역동적인 커플을 이룰 것”이라고 했고, 지난 2012년 ‘프로젝트 신디케이트’ 기고문에선 “태평양에서의 평화·안정·항행의 자유는 인도양과 분리할 수 없다”면서 “인도양 지역에서 서태평양에 이르는 해양의 공통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호주·인도·일본·미국 하와이가 ‘다이아몬드’를 형성하는 전략을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즉 중국을 배제한 채 아·태 핵심 축인 일본·호주·미국에 인도를 확장한 ‘인도-태평양’ 개념을 내세웠다.

아베 총리는 지난 2016년 8월 케냐에서 “일본은 태평양과 인도양,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교류를 힘과 위압 없이 자유와 법의 지배,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장으로 길러내 풍요롭게 하는 책임을 지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일본 언론은 아베 총리가 중국을 본격적으로 견제하기 위해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비전을 공식적으로 제기한 것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이후 일본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에 맞서 ‘아시아-아프리카 성장회랑’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고, 인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미국 조야에 ‘인도-태평양’ 개념을 적극 설파했다.

미국이 처음 공식적으로 ‘인도-태평양’ 개념을 언급한 건 지난 2010년이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하와이 연설에서 “우리는 글로벌 무역과 상업에서 인도-태평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하고 있다”면서 “태평양에서 인도 해군과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인도-태평양’이 지정학적·지경학적인 전략적 개념으로 부상한 것은 올해 초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다. 아직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서가 공표되지 않아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역대 정부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의 한계를 극복하고 안정적인 아시아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는 반성에서 나온 것이란 분석이 많다.

냉전시대 이후 미국의 역대 정부는 ‘아시아-태평양’ 중시 전략을 펼쳐왔지만 발칸사태, 중동전쟁 등으로 안정적인 ‘아태 전략’을 전개하지 못했다. 오바마 행정부 때 이르러 “재균형” 정책을 통해 미국의 대외정책의 무게 중심을 이 지역으로 다시 가져왔지만, 이때도 중동에서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 등으로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 반성이 나왔다. 그러는 동안 중국은 고도성장과 국방력 강화를 통해 아태 지역의 중심국가로 영향력을 확대하며 지역 맹주로 군림하게 됐다.

그 결과 미국은 신흥 G2 강국인 중국이 중심이 되는 아·태 전략에서 벗어나 인도와 동남아시아로 전략적 초점을 확대하는 한편, 핵심 참가자로서 안정적으로 전략적 이익을 확보할 수 있는 ‘인도-태평양’ 구상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최근 “호주·인도·일본 등지에서 권위주의 국가인 중국이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는 ‘아시아-태평양’의 대안으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구상을 제기해왔다”고 보도했다.

아·태 지역의 생존과 경제적 번영을 위해선 인도양을 제외할 수 없다는 지경학적 고려도 있었다.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에 따르면, ‘인도-태평양’ 고리 부분에 세계 통상 최대 중심지인 ‘믈라카 해협’이 자리 잡고 있는데, 현재 세계 컨테이너 수송량의 절반 이상, 세계 해운 수송의 3분의 1이 인도양을 지나 이곳을 통과하고 있다. 한국의 에너지 수입의 67%, 일본은 60%, 중국의 원유수입의 80%가 인도양-믈라카 해협-남중국해를 통과하고 있다.

인도양-믈라카 해협-남중국해 수송선은 한·중·일 3국에게 생명선과 같은 곳이지만 여러 나라에 걸쳐 영유권이 중첩돼 있어 지정학적으로 불안한 지역이다. 특히 중국은 원유 수입을 믈라카 해협 수송선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어 자원안보가 위협받고 있다. 이를 ‘믈라카 딜레마’라고 부른다. 이 때문에 중국은 난사군도에 인공섬을 만들어 미국 및 인접 국가들과 충돌을 빚고 있고, ‘일대일로’ 사업을 통해 중국 내륙으로 직접 수입하는 우회 수입선 확보에 나서고 있다. 한편 미국·일본·호주는 ‘항행의 자유’를 내세우며 중국의 인공섬 건설에 반발해왔다.

미국이 ‘자유롭게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내세우고 있지만, 중국은 미국과 일본이 인도, 동남아시아까지 전선을 확대해 ‘믈라카 수송선’의 제해권을 확보하고 중국의 확장을 봉쇄하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중국 외교부 겅솽 대변인은 13일 정례 브리핑에서 “지역적 협력은 정치화하거나, 배타적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구상이 안착하기 위해선 중국과의 갈등을 완화할 수 있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인도-태평양’의 핵심국가인 인도조차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과도한 개입을 경계하면서 ‘비동맹 외교’를 통해 미·중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있고, 동남아시아 국가들 또한 항행의 자유와 공동 번영에는 긍정적 반응을 보이면서도 미·중 간 마찰에 있어서는 ‘회피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윤태형 뉴스1 국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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