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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전략도 핵심역량 뒷받침 없으면 오래 못 간다

기사입력 2017. 11. 13   16:15

<228> 전쟁은 핵심역량에 달려있다

 

 

1931년 소련과 일본의 노몬한 전투

피플 익스프레스 저가 항공사 교훈

독특한 아이디어로 성공해도

상황 맞춰 기본 역량 육성 힘써야  



1931년에 중국으로부터 만주를 빼앗은 일본은 그곳에 꼭두각시 국가인 만주국을 세웠다. 그래서 중국은 이제 소련의 괴뢰국이 되어버린 몽골과 국경을 맞대게 됐다. 일본은 여기에 관동군을 배치해 지키게 했다.

그런데 이것이 대규모 사건으로 번졌다. 소련군이 여기에 대응한 것이다. 소련군은 400대 이상의 탱크와 300대 이상의 장갑차를 포함한 막대한 물량의 병력과 물자를 동원했다. 일본군은 소련군의 이런 반격 의지와 준비 상태를 알아채지 못하고 주로 병력을 늘리는 데만 주력하면서 소련군을 계속 공격했다. 탱크도 동원했지만 그 숫자는 100대를 넘지 못했다.

일본의 전차는 너무 약해서 소련군 전차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적의 대전차 공격에도 아주 취약해 한 30대 정도가 격파된 다음부터는 피해를 감내할 수 없어서 다 후방으로 보내버렸다. 이제 보병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이 보병들이 적 전차를 아주 잘 잡아냈다. 비결은 화염병이었다. 소련군 전차의 약점인 엔진실에 화염병을 던지면 이것이 인화돼 불이 아주 잘 났다. 보병으로 탱크를 잡는 전술을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 노몬한 전투에서 일본군은 패하고 만다. 일본은 소련과 강화조약을 체결한 이후에는 다시는 북방으로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 전쟁 패배 후에도 일본군 수뇌부는 지상군의 핵심 역량이라 할 수 있는 탱크의 성능 개량을 도외시했다. 지상전의 핵심전략은 탱크인데 자국 탱크가 소련군 탱크를 대적할 수 없다는 걸 알고서도 보병으로 탱크를 잡을 수 있었다는 교훈만 간직한 채 탱크 개발을 추진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태평양전쟁에서 미군 탱크에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미군 탱크는 화염병 공격에도 끄떡없었고, 이 탱크를 잡기 위해 접근한 일본군 병사들은 모두 미군의 기관총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한다.

결국 일본군 탱크의 성능은 미군 전차의 발끝에도 못 미쳐서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고, 과달카날 전투 이후 일본군은 종전까지 한 번의 승리도 거두지 못했다. 지상전의 핵심역량이라고 할 수 있는 탱크의 개발을 도외시했다가 크나큰 대가를 치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해당하는 경영 사례도 있다. 1981년 4월 30일 피플 익스프레스라고 하는 신생 항공사가 뉴저지주 뉴욕과 뉴욕주 버펄로 간에 처음으로 취항했다. 투입된 비행기는 중고 보잉 737기였다. 중고 비행기를 사들여 초기비용을 절감하고 요금을 싸게 해서 효율을 극대화하는 사업을 구상했다. 승객수가 많은 단거리 노선을 시내버스처럼 다니게 하고 발권 업무를 맡은 직원들이 수화물 관리도 하게 했다. 인건비 절감을 위해 항공기 정비는 외주를 줬다.

1981년 말 기준, 95만 명 이상의 승객이 이 항공사를 이용했다. 그리고 84년에 이 회사 매출액은 20억 달러에 달했다. 굉장한 고속성장이었다. 그런데 이 회사의 고도성장 이면에는 문제점도 같이 자라고 있었다. 기존 항공사들도 저가 요금제를 앞다퉈 출시하면서 이 항공사의 경쟁 우위를 지속적으로 위협했다. 또한, 승객과 노선수가 증가함에도 이 회사는 전산 시스템에 전혀 투자하지 않았다. 그래서 전화로 예약을 받고, 시내버스처럼 직접 승객들한테 기내에서 요금을 징수하는 방식을 유지해나갔다.

문제는 또 있었다. 전화로 예약해도 카드 결제를 할 수 있는 컴퓨터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에 신용카드를 받지 못했고, 예약을 펑크 내도 승객들에게 페널티를 물릴 수 있는 시스템이 전혀 없었다. 그런 만큼 노쇼(예약부도)도 많았다. 상황은 악순환을 거듭했다. 최고경영자는 고민 끝에 1985년 10월, 자체적인 전산시스템을 갖춘 항공사를 인수했다. 프론티어 항공사라는 곳이었다. 경영진은 인수한 회사의 시스템을 가져다 쓰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으로 믿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프론티어 항공사는 메이저 항공사처럼 소위 풀서비스 항공사였는데 이에 맞게 개발된 시스템이 피플 익스프레스의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 게다가 이 회사는 부실회사였다. 결국, 피플 익스프레스에 적자를 누적시키는 암덩어리로 작용하면서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피플 익스프레스 전체를 파산 위기로 몰아갔다. 1986년 9월 피플 익스프레스의 최고경영진은 이 회사의 매각을 결정했다.

피플 익스프레스도 저가 운임을 가능하게 한 기발한 구상을 실천에 옮기면서 혜성처럼 등장했다. 이 저가 정책은 한때 메이저 항공사를 위협할 정도였지만 성장에 발맞춰서 거기에 맞는 핵심역량을 키우지 않았고, 그 대가는 회사의 소멸이었다. 아무리 기발한 전략 수행 방법도 핵심역량이 없으면 오래 못 간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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