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36계, 병법을 말하다

천시(天時:하늘의 때)는 지리(地利:지세의 이로움)보다 못하고, 지리는 인화(人和:사람의 화합)보다 못해

입력 2017. 11. 13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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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울료자와 이간계


울료는 전국시대 싸움터에서 깨달은 바를 『울료자』에 남겼다.   필자 제공

 



전국시대 중기 또는 진시황 때

군사전략가 ‘울료’가 쓴 병법서

군주와 장수의 솔선수범 리더십

엄정한 군율로 강군 육성 등 역설


무경칠서에서 『울료자』는 조금 생소하다. 『손자병법』과 『오자병법』 그늘에 가려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11세기 북송 조정은 무과에 응시하려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울료자』를 읽도록 했다. 리더십과 강군 육성으로 국방력 강화를 역설한 점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군주와 장수의 리더십

『울료자(尉료子)』는 전국시대 중기인 위(魏)나라 혜왕 때 군사전략가 울료가 쓴 병법서로 알려져 있다. 이 병서는 무경칠서에서 『육도』 다음으로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모두 24개 장으로 1장 천관(天官: 천체의 방위와 운행·변화)부터 24장 병령 하(兵令 下·엄정한 군법)까지 이어진다. 핵심은 문무(文武), 장수의 리더십, 군사조직과 훈련이다. 편의상 내용에 따라 1장부터 12장까지를 권도(權道·병법의 이치), 13장부터 24장까지를 교령(敎令·군사훈련)으로 구분한다.

울료는 여러 곳에서 군주와 장수의 리더십을 언급했다. 4장 전위(前威)와 8장 무의(武議)에서는 솔선수범으로 ‘천시불여지리 지리불여인화(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 천시는 지리보다 못하고 지리는 인화보다 못함)’라고 했다. 그는 인화를 가장 우선했다. 5장 공권(攻權)과 6장 수권(守權)은 공격과 방어 전술을, 7장 십이릉(十二陵)에서 12장 전권(戰權)까지는 장수의 엄정한 군율 집행과 용병 원칙을 말했다.


정예병 육성으로 국방력 강화

13장 중형령(重刑令)부터 16장 속무령(束武令·부대 통제)까지는 군기 유지를 위한 상벌의 시행에 관한 내용이다. 울료는 전투에서 패해 도주하거나 투항한 자들은 군적(軍賊)으로 삼고 매우 엄격한 군율을 적용했다. 그리고 5명 단위를 오(伍)·10명 단위를 십(什) 등으로 구성해 연대 책임을 물었다. 북한의 주민 감시 시스템인 오호(五戶)담당제가 이를 본뜬 것일까?

17장 경졸령(經卒令)과 18장 늑졸령(勒卒令)은 군대 편제를 서술했다. 경졸은 장병 관리와 편성을 뜻하는데 3개 부대로 편성하고 청·백·황색 깃발과 깃털로 구분했다. 이를 통해 부대 지휘가 용이하도록 했다. 늑졸은 병력을 다스린다는 뜻으로 정병과 기병으로 편성하고 북·징·방울·깃발로 통제했다. 북과 징을 울리는 횟수에 따라 공격과 방어 형태를 달리했다.

19장 장령(將令)은 병영 내 행동수칙인 전장군기를 강조했다. 20장 종군령(踵軍令)은 본대에 앞선 전위부대 편성과 임무를 기술했다. 본대보다 앞선 정찰대를 흥군(興軍), 본대는 대군(大軍), 주요 목을 선점하는 소규모 분견대를 분졸(分卒)이라 했다. 지금의 행군 대형 편성과 비슷하다. 2500년 전 『울료자』를 펼쳐 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21장 병교 상(兵敎 上)은 최소 단위인 오(伍)부터 최대 단위까지 제대별 훈련 방법을 기술했다. 22장 병교 하(兵敎 下)는 12개 전투수칙과 필사즉생을 강조했다. 23장 병령 상(兵令 上)에서 ‘전일즉승 이산즉패(專一則勝 離散則敗: 장병의 뜻을 하나로 뭉치면 승리하고 흩어지면 패함)’라고 문무겸비(文武兼備)를 말했다.


이간계로 통일제국 진(秦) 건설

울료를 진시황 때 인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기』 ‘진시황본기’에 기록이 있고 경졸령과 늑졸령에 나오는 군대 편제나 전투복 색상이 진시황릉에서 발굴된 병마용 배열과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지난 5월 병마용갱을 현지답사했을 때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기원전 233년 승상 이사는 한비자가 죽자 진시황에게 울료를 추천했다. 울료는 범저가 건의한 진나라 통일정책 23계 원교근공 전술로 6국을 무력화하는 이간계를 구사했다.

2장 병담(兵談)에서는 군주가 싸우지 않고 이기는 주승(主勝), 장수가 싸워서 이기는 장승(將勝)을 이야기했다. 주승은 정치력, 장승은 군사력을 말한다. 그는 상대국 상황에 따라 주승과 장승을 적절히 사용했다. 기원전 230년에 시작한 통일전쟁은 가장 먼저 인접한 한나라부터 정복해 나갔다. 228년 이간계로 조나라의 내분을 격화시킨 뒤 수도 한단을 접수했다. 223년에는 초나라를, 221년 제나라를 정벌하고 통일제국 진을 세웠다. 그는 24장 ‘병령 하’에서 장병들의 철저한 교육훈련을 역설했다. 그는 “훈련되지 않은 백만 대군은 잘 훈련된 1만 명보다 못하고, 억지로 싸우는 1만 명은 죽기를 각오한 100명보다 못하다”고 했다. 우리도 지금 강한 훈련이 절실하다. <오흥국 전쟁과 평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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