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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사 10월18일] 1950년 무공훈장령 제정

신인호 기사입력 2017. 10. 15   15:36 최종수정 2019. 10. 20   15:27

1950년 10월 18일 첫 제정

태극·을지·충무·화랑 등 등급명은

1951년 8월 19일 개정 때 등장

 

훈장은 군인과 명예를 상징한다. 
 국방일보DB


“군인에게 애인이란 총이고, 군인에게 돈이란 자신의 훈장과 약장이며, 군인에게 명예란 자신이 군인이라는 것이다(더글러스 맥아더).”


군인과 명예를 상징하는 훈기장(勳記章)의 존재와 가치가 어떤 것인지를 웅변해주는 대표적인 명언이다. 우리나라 무공훈장 제도는 1950년 10월 무공훈장령 제정을 계기로 정립되기 시작했다.

근대적 의미에서 우리나라 훈장은 1899년 ‘표훈원 관제’와 1900년 ‘훈장조례’가 제정되면서 시작됐다. 금척대훈장, 이화대훈장, 태극장, 자응장(紫鷹章) 등이 이 당시의 훈장으로, 이 가운데 자응장이 무공이 뛰어난 무관에게 주는 일종의 무공훈장이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는 ‘건국공로훈장령’이 1949년 4월 27일 제정되어 건국포장, 면려포장, 공익포장 등과 함께 방위포장이 수여됐다. 방위포장은 국방 또는 치안에 노력해 그 공적이 현저하거나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인명을 구조한 자에게 수여했다.

무공과 직접 연관된 군인에게 수여되는 육군훈기장은 3개월 뒤 육군 차원에서 제정됐다. 군은 건군 후 6·25전쟁 전까지 공비토벌과 38선에서의 충돌 등 전투에서 공을 세운 유공 장병들을 표창하기 위해 미군제도를 참고해 전공장(갑종), 특별상이군인장, 육군상병장, 공비토벌기장 등 5종류의 육군훈기장을 제정하고 1949년 7월 15일 공포한 것이다.


당시 이 훈기장을 받은 장병들은 군복에 약장도 패용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훈기장들은 국가제정이 아니었고 잠정적인 조치였던 탓에 정식 국가제정이 나오면서 무효화됐다. 다만 한국군 최초의 훈기장이요, 포상을 위한 노력이었다는 의미를 남겼다.

국가(정부) 차원의 무공훈장 제도가 정립되기 시작한 것은 1950년 10월 들어서였다. 정부는 6·25전쟁 중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시킨 뒤 장병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그해 10월 18일 대통령령 제385호로 ‘무공훈장령’을 제정했다. 등급은 1등부터 4등까지였는데, 태극·을지·충무·화랑 등 훈장 등급명은 1951년 8월 19일 무공훈장령이 개정되면서 디자인 변경과 함께 등장했다. 그리고 1963년 12월 14일 ‘상훈법’이 제정되면서 그때까지의 각종 훈장·포장령이 통·폐합됐으며, 2013년 3월 개정된 상훈법에는 현재와 같은 무궁화대훈장 등 12가지 훈장으로 규정하고 있다.

현재 군인들에게 해당되는 훈·포장은 태극·을지·충무·화랑·인헌 등 5개 등급의 무공훈장과 무공포장, 통일장·국선장·천수장·삼일장·광복장 등 5개 등급의 보국훈장과 보국포장이 있다. 과거에는 무공훈장 서훈 요건으로 ‘전투 참가’가 필수였으나 2010년 7월부터 전투 참가 외에 ‘접적 지역에서 전투에 준하는 직무 수행’이 추가되는 등 그 범위가 확대됐다. 접적 지역이란 적과 접하고 있는 제1선을 말하는데 북방한계선(NLL), 일반전초(GOP) 등지에서 직무 수행 중 순직한 군인에게도 무공훈장이 수여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같은 무공훈장 수여 기준은 1950년 무공훈장령이 제정된 후 60년 만에 바뀐 것으로, 우리나라 안보 환경 변화를 수용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신인호 기자 < idmz@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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