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전쟁, 의술을 꽃피우다

‘기아문제 해결’ 영웅에서 ‘독가스 개발’ 전범으로 전락

입력 2017. 09. 2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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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노벨화학상 수상자 아내의 자살


질소비료 개발로 식량난 해결 기여

1차 세계대전에 화학부장으로 임명

아내의 만류에도 살상무기를 연구

노벨화학상 받았으나 쓸쓸한 최후

과학자 연구 윤리·책임 문제 대두


 

화생방 훈련 중 가스실 체험은 신병훈련 중 가장 힘들지만,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된다. 최루가스가 가득 찬 콘크리트 가건물에서 방독면을 벗는 순간의 죽음과 같은 공포는 이 훈련을 받아보지 못한 남자는 결코 상상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실제 전장에서 사용되는 신경작용제의 고통에 비하면 최루가스로 눈물과 콧물을 쏟는 괴로움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 것이다.


유대계 독일인 하버(Fritz Haber, 1868∼1934)는 1904년 질소를 이용해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방법을 찾아냈다(N₂ + 3H₂ ↔ 2NH₃). 5년 뒤 보슈(Carl Bosch)가 이 반응의 촉매(철과 특정 화합물)를 찾아 이 화합물의 대량생산을 가능케 했다. 이 하버-보슈법으로 질소비료가 만들어지자 식량 생산이 늘어나게 됐다. 인류를 기아에서 벗어나게 했으니 그들의 연구는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한 셈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발견은 폭탄의 원료가 돼, 무기를 대량 생산하는 데 일조하기 시작했다.

 

클라라 임머바르(Clara Immerwahr, 1889∼1915). 하버의 첫 부인. 권총 자살 당시 12살 된 아들(Hermann Haber)이 있었다.

 


하버는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국방부의 화학부장으로 임명됐다. 그가 맡은 일은 참호전(trench warfare)에서 사용하는 염소가스 등 치명적인 독가스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그는 독가스의 농도와 흡입 시간의 곱이 일정하다는 규칙(하버 법칙, C×t=k, C: 가스 농도(mass/volume), t: 가스 노출 시간, k: 상수)을 발견했다. 즉, 농도가 높으면 잠깐 흡입해도 독성이 나타나지만, 농도가 낮으면 오랫동안 흡입해야 독성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규명한 것이다.

그는 “평화로운 시기에 과학자들은 세계에 속한다. 하지만 전쟁 중에 그들은 자신의 국가에 속한다”며, 프랑스의 그리냐르(Victor Grignard)가 개발하던 겨자가스(mustard gas)보다 먼저, 더 치명적인 독가스를 개발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하버는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졌건 죽음은 죽음일 뿐”이므로 과학자가 전쟁 중에 조국을 위해 살상무기를 연구하는 것은 당연하며, 그것이 화약에 관한 연구이건 독가스에 관한 연구이건 아무런 차이가 없다며 자신의 독가스 연구를 정당화했다.

그에게는 1901년 결혼한 아내 클라라 임머바르(Clara Immerwahr, 1889∼1915)가 있었다. 1915년 남편이 독가스를 만들어 전쟁에 사용하겠다고 하자 그녀는 이런 일은 “과학 이상의 타락”이며 “삶에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는 학문을 오염시키는 야만의 상징”이라는 말로 남편을 만류했다.

 

제1차 세계대전 시 독일군의 독가스 살포 장면(1915).

 


그런데도 하버는 1915년 벨기에에서 자신이 개발한 염소가스를 연합군에게 직접 사용해 적군 수천 명이 사망하게 했다. 이 작전 후 그가 귀가하자 아내는 남편의 행위를 비난하고, 10일 뒤 하버가 러시아군을 독가스로 공격하러 떠나는 날 아침, 남편의 권총으로 자신의 심장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비정한 하버는 죽어 가는 아내를 아들에게 맡기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날 전장으로 향했다.

하버는 공로를 인정받아 1918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33년 유대인을 박해하는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 상황이 바뀌었다. 그는 평생 독일을 위해 일했지만, 유대인이란 이유로 빌헬름 카이저 연구소의 교수직을 사임해야 했다. 하버는 이스라엘 과학연구소로 가던 중 1934년 스위스의 한 호텔에서 65세를 일기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는 국가를 위해 하는 일이니 정당하다고 생각해 사람을 죽이는 연구를 기꺼이 수행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의 삶은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 문제와 국가의 필요 때문에 비윤리적이거나 반인륜적인 연구를 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연구윤리의 문제를 오늘날까지 제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화학무기 금지 협약 때문에 대부분의 화학무기를 파기했다. 그러나 북한은 여전히 대규모의 화학무기를 비축해 두고 있다고 한다. 우리에게 북한의 화학무기는 크나큰 위협이다.

북한과 대치한 우리 장병들은 비상시 10초 이내에 방독면을 착용할 수 있는가? 제독 주사를 사용할 줄 아는가? 평화 시대에 익숙해진 우리는 안이하게 위험을 외면하고 사는 것은 아닐까? 어려운 훈련에서 땀과 눈물을 많이 흘린 병사는 실전에서 피를 적게 흘린다는 이야기가 더 강하게 마음에 와 닿는다.

<황건 인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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