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국립박물관에 깃든 우리 역사와 문화

신선들이 숨긴 비경, 진경으로 녹여내다

송현숙

입력 2017. 09. 1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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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겸재정선미술관


지하 1층·지상 3층 연면적 3305㎡ 규모

65세 양천현령시절 진경산수화 ‘경지’에

 

지하 1층·지상 3층의 연면적 3305㎡ 규모로 2개의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 진경문화체험실, 옥상공원 등이 알차게 마련돼 있다.

내금강을 그린 국보 217호 〈금강전도〉(1734). 주역의 이치와 태극 사상까지 녹여낸 진경산수화의 명작으로 꼽힌다.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2013년 여름, 모 일간지 1면에 서울시가 강서구에 대규모 공원을 개발한다는 뉴스가 실렸다. 회색빛 도시 서울에 미국의 브루클린식물원과 같은 명소를 개발한다니, 누구나 관심을 가질 만한 ‘굿 뉴스’였다. 그런데 더욱 눈길을 끈 것은 나란히 게재된 산수화였다.


250여 년 전 산수화에 현대인이 열광하는 이유

‘화성(畵聖)’으로 불리는 조선 후기 대표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의 〈종해청조(宗海聽潮)〉였다. 18세기 양천 지역 풍광이 고스란히 담긴 이 그림을 바탕으로 자연미를 재현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에는 낡은 아파트들이 즐비했던 서울 인왕산 수성동 계곡 일대가 정선의 《장동팔경첩(壯洞八景帖)》 속 그림처럼 복원돼 시민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도대체 250여 년 전 정선이 그린 진경(眞景)산수화에 현대인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이러한 궁금증을 풀고 싶다면 지하철 타고 겸재정선미술관(관장 김용권)으로 가보자.



양천현령 재직 5년, 절정의 진경산수 작품을 남기다

9호선 양천향교역 1번 출구로 나와 김포공항 방향으로 7분 정도 걸어가면 미술관이 있다. 강서구에서 정선의 예술적 업적을 기리고, 진경 문화의 계승·발전을 위해 지난 2009년 4월 문을 열었다. 지하 1층·지상 3층의 연면적 3305㎡ 규모로 2개의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 진경문화체험실, 옥상공원 등이 알차게 마련돼 있다.

그런데 왜 정선의 고향(현 서울 종로구 청운동)도 아닌 강서구에 미술관이 세워진 걸까?

“정선은 65세 때 종5품 양천현령, 지금으로 말하면 강서구청장으로 5년간 재직하시면서 이 일대 풍경을 많이 그리셨어요. 37세에 금강산 여행에서 그린 《해악전신첩》으로 명성을 얻었다면, 양천현령 시절엔 진경산수화를 원숙한 경지에 올려놓으셨죠. 《경교명승첩》 《양천팔경첩》 등 정선의 대표작들이 이곳에서 탄생했습니다.” 남정화 도슨트의 설명이다.



실경에 가까운 진경 “과거와 현실을 이어주는 통로”

1층 ‘양천현아실’에는 정선이 양천현령으로 재임할 때 머물렀던 양천현아를 복원해 현아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정선이 그린 강서구 일대의 뛰어난 경치가 담긴 그림들을 감상할 수 있다.

정선이 그린 산수화에 현대인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그림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실경(實景)에 가까운 진경 때문이다.

사실 조선시대 사회·문화는 중국의 영향이 컸다. 그러다 조선 후기, 청나라가 들어서면서 우리만의 학문과 예술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이때 진경산수화풍이 새롭게 등장했다. 이전에는 그리는 이의 마음속에 있는 산천을 담아내는 ‘관념(觀念)산수’가 주류였다. 안견의 〈몽유도원도〉, 중국 고서 속 신선 그림 등이 대표적이다.

정선은 영감을 주는 부분을 가장 크게 부각하고 나머지는 없애거나 혹은 다른 쪽에 있는 좋은 것을 끌어다 놓기도 했는데, 그의 그림을 본 이들은 ‘신선들이 살고 있고, 우리가 살고 싶은 진짜 경치’라고 해서 진경산수화라 불렀다. 그렇다면 실경과 진경의 차이는 무엇일까.

남정화 도슨트는 “똑같은 산을 보더라도 비가 내린 뒤의 모습이 다르듯, 화가가 어떤 풍경을 봤을 때 첫 영감을 표현하는 기법에 있다”면서 “정선의 작품은 현대 도시 건설에서 옛것을 복원하는 데 참고할 수 있는 최고의 자료이자 과거와 현실을 이어주는 통로”라고 말했다.



“정선 덕분에 우리나라 회화가 외래 화풍의 그늘에서 벗어나”

정선의 일대기와 화풍의 변화를 보고 싶다면 2층 ‘겸재정선기념실’로 가면 된다.

그의 작품세계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는데 조선 후기 시인인 사천 이병연(1671~1751)이다. 5살 연상의 고향 동무였던 이병연은 정선과 평생 시화를 주고받은 소울 메이트였다. 정선이 회화로 명성을 떨치게 된 결정적 계기도 이병연 덕분이라 할 수 있다. 금화현감이었던 이병연의 초청으로 금강산을 유람한 뒤 그린 《신묘년풍악도첩》(1711)과 《해악전신첩》(1712)을 계기로 그의 명성이 중국까지 퍼졌기 때문.

특히 국보 217호로 지정된 〈금강전도〉(1734)는 돌가루를 사용해 금강산 일만이천 봉을 입체적으로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주역의 이치와 태극 사상까지 녹여내 명작 중의 명작으로 손꼽힌다. 또 정선이 만년을 보낸 인왕산 인근 풍경을 그린 〈인왕제색도〉(1751·국보 제216호), 천 원권 화폐 뒷면에 인쇄된 〈계상정거도〉(1746) 등 수많은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정선과 함께 조선을 유람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청하성읍도〉 〈산수도〉 등 정선의 혼이 담긴 진본을 전시 중인 원화 전시 코너는 꼭 들러봐야 할 공간이다. 어린 자녀와 동행한다면 체험실에서 터치스크린을 이용한 산수화 그리기, 스탬프 찍기와 탁본 꾸미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다.

김용권 관장은 “18세기 초 정선이 꽃피운 진경산수화풍 덕분에 우리나라 회화가 외래 화풍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했다”면서 “미술관에서 정선이 내뿜는 지적·미적 향기를 통해 우리의 삶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드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매주 월요일, 1월 1일, 명절 당일 휴관. 관람료 500~1000원. 문의 02-2659-2206~7.

송현숙 기자 < rokaw@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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