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전쟁, 의술을 꽃피우다

총 대신 배낭…전장 누비며 희생적 인술 펼치다

입력 2017. 08. 10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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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6·25전쟁 전몰 군의관과 의무병


 의무병 미 육군 3270명 부상·830명 전사…미 해군은 108명 전사

장루이 소령·제럴드 마틴 중위 등 목숨 바쳐 자유민주주의 수호

 

 


 

 




제네바 협약에 따르면, 적군이라도 의무병·의무부사관·군의관 등의 의무요원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 의무요원은 호신용 무기 외의 살상 무기를 소지할 수 없으며, 자신이 지닌 무기는 ‘적이 자신과 자신이 보호해야 할 환자를 공격하려는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다.

지난 제2연평해전 당시 참수리-357정의 박동혁 의무병처럼 부상한 아군을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야 하는 경우, 총탄과 파편을 맞고 부상할 확률이 전투병보다 결코 적지 않다.

기록에 따르면 6·25전쟁에서 미 육군 의무병은 수많은 목숨을 구했지만 3270명이 부상했고, 830명이 전사했다. 또 미 해군 의무병은 108명이 전사했다. 나중에 미 육군에서는 3명(2명은 사후 추서)이, 미 해군에서는 5명(4명은 사후 추서)이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받았다.

군의관이라고 위험에 노출되는 데서 예외는 아니다. 나는 두 전몰 군의관의 추모비를 본 적이 있다. 강원도 홍천에서 인제 쪽으로 44번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갈색 표지판이 눈에 띈다. ‘줄 장루이 추모공원’이다.

길을 따라 들어가 보면 석대 위에 베레모를 쓴 군인의 동상이 서 있는데, 총 대신 왼쪽 어깨에 배낭을 메고 있다. 줄 장루이(Jules Jean-Louis, 1917∼1951) 소령이다.

프랑스 앙시베시 출신의 장루이 소령은 1951년 11월 26일 6·25전쟁에 참전해 남성리전투·지평리전투·1037고지전투 등 5개 지역 전투 중 이동병원의 의무대장으로서 부상병 치료와 주민들의 질병을 치료했다. 1951년 5월 8일 홍천군 장남리 전투에서 한국군 부상병 두 명을 구출했지만, 자신은 지뢰를 밟아 34세에 전사했다.

홍천군은 지난 1986년 한불수교 100주년과 장루이 소령 산화 35주년을 맞아 그의 전사지에 추모공원을 조성했다. 어깨에 배낭을 메고 전장을 누비며 인술을 베풀었던 그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6·25전쟁 중이던 1950년 11월 유엔군은 거제도 신현읍 일대에 포로수용소를 세워 북한군·중공군 포로를 수용했다. 1999년 포로수용소 유적관이 개관하고, 2002년 유적공원이 준공됐다.

의무시설로는 포로수용소의 경비병과 포로들의 의무관리를 위해 설치한 64야전병원이 재연돼 있다.

미국 메릴랜드주 하퍼드 출신의 미 해군 군의관 제럴드 마틴(Gerald A. Martin, 1922∼1951) 중위는 1091함대 역학관리팀 소속으로 64야전병원에 근무했다.

그는 한국 K-9 공군기지에서 일본 다치가와 공군기지로 가던 중 C-46D 수송기가 다네자와 산에 추락해 29세로 산화했다. 나는 1983년에 3개월간 거제기독병원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했는데 그때는 허름한 비석 하나만 있었으나 지금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6·25전쟁 당시 자신들의 고국에서 수만 리 떨어진 동양의 작은 나라에 와서 인술을 펼치다 꽃다운 나이에 전사한 프랑스와 미국 출신의 두 군의관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들이 목숨을 바쳐 수호한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와 이들이 베푼 희생적 의술(인술)은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을 것이다.

 


<황건 인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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