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국방일보-한국관광공사-강원도 공동기획 이달의 면회길

고고한 자태에 반하고 순백의 장관에 넋잃다

김용호

입력 2017. 07. 07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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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길


 

 

 

 

 

강원도 인제는 예전에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오지로 유명한 곳이다. 춥고 험난할 뿐 아니라 면회나 외출이 매우 불편하고 힘들었다. 군에 보낸 자식을 면회하려면 2~3일은 족히 잡아야 다녀올 수 있는 대한민국의 변방이었다. 이후 50여 년의 세월이 흘렀고 서울에서 인제는 반나절 생활권으로 바뀌었다. 불편하고 싫었던 인제가 힐링 여행지, 모험스포츠 명소로 떠올랐다. 요즘 인제에서 가장 핫한 곳은 원대리 자작나무 숲길이다.

 

 

 

 

 

 


자작나무 숲길 탐방로 2012년부터 개방

원정임도, 군에서 장비·인력 투입해 조성

 

 


숲 입구 주차장에서 3㎞ 정도 탐방로를 따라가면 하얀 알몸의 자작나무 숲이 시야에 들어온다.

원래 이곳은 울창한 소나무 숲이었으나 솔잎혹파리가 창궐해 대부분 벌목하고 1989년부터 7년간 자작나무 70여만 그루를 심어 2012년부터 산림청이 일반에 개방했다.

자작나무 숲으로 가는 길은 원정임도(원정리~정자리)나 원대임도를 이용하면 된다. 원정임도는 군과 인연이 깊다. 1979년 마을 주민들의 숙원사업을 군에서 장비와 병력을 투입해 원대리~원정리 산등성이를 따라 10㎞의 길을 내준 것. 당시 주민들이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세운 ‘국군에 대한 감사 기념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겨레를 지키면서도 숭고한 봉사 정신으로 우리의 오랜 숙원인 원대대교, 원남도로, 원정도로 등을 이루게 하여 우리의 대동맥을 이어 주었나니. 이 고마움, 이 감격 어이 잊으리. 전 지역민은 우리 국군의 드높은 뜻을 영원히 기념하고 그 고마운 뜻을 여기에 새기도다.”

자작나무 숲길 탐방로는 4개 코스다. 1코스(0.9㎞)는 순백의 자작나무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이다. 2코스(1.5㎞)는 자작나무와 낙엽송이 어우러진 ‘치유 코스’다. 3코스(1.1㎞)는 작은 계곡을 따라 트레킹할 수 있는 ‘탐험 코스’이며, 4코스(2.4㎞)는 원대봉 능선을 따라 천연림과 자작나무가 조화를 이룬 ‘힐링 코스’다.

탐방로는 ‘국군에 대한 감사 기념비’를 지나 원정임도로 잡았다. 금강송과 수풀 사이에 자작나무가 드문드문 있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자작나무 비율이 높아진다. 앞뒤와 옆을 둘러봐도 절경이다. 하얀 자작나무, 흑갈색 낙엽송, 분홍빛 금강송이 하모니를 이룬다. 탐방로를 50여 분쯤 걸었을까? 1코스 자작나무 숲길 입구에 도착했다. 향긋한 나무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바로 자작나무 특유의 자일리톨(껌 원료) 향기다. 머릿속이 박하처럼 맑아진다.

누가 숲은 전체를 보고 미세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게 좋다고 했던가. 본격 탐방에 앞서 산등성이를 따라 숲 전체를 조망해봤다. 미로처럼 얽힌 탐방로가 시야에 들어오고 백지장 같은 자작나무가 빼곡하다. 마치 필통에 하얀 볼펜을 가득 꽂아놓은 듯하다.

자작나무 숲 전망대 ‘하늘 만지기’에 오르면 자작나무 군락은 초록 옷과 어우러져 온통 연둣빛 세상이 펼쳐진다. 곳곳에는 문화재 복원에 쓰이는 아주 ‘귀하신 몸’ 금강송이 빼어난 자태를 뽐낸다.


자작나무 숲 해설가 김진록 씨가 탐방객들을 대상으로 인제 자작나무 숲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천연 방부제·공기정화 기능 갖춰

‘팔만대장경’·신라시대 ‘천마도’ 등에 사용



숲을 조망한 후 구불구불한 탐방로를 따라 1코스로 진입했다. 숲은 강렬한 햇볕을 막아 한여름에도 시원하다. 바닥에 다다르자 인디언 집 2개가 보이고, 어린이를 위한 ‘자작나무 숲 속 교실’도 시야에 들어온다.

기름기가 많아 탈 때 ‘자작자작’ 소리가 나서 자작나무라 이름 붙은 자작나무는 쓰임새도 다양하다.

특히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도 으뜸이다. 오랫동안 썩지 않는 40~50년생 자작나무 껍질을 여러 겹 사용한 신라시대 ‘천마도’(국보 207호)는 현존하는 신라 최고의 그림으로 그 가치와 보존성을 인정받고 있다. 또 기름 성분이 있어 천연 방부제 역할을 하며 공기정화 기능까지 갖춰 천 년이 가도 변하지 않아 해인사 팔만대장경(국보 32호)의 일부도 자작나무로 제작됐다.

재미있는 일화는 자작나무 껍질로 연애편지를 쓰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자작나무는 깊게 보면 한 그루의 나무, 넓게 보면 하나의 숲이다. 자작나무 숲을 제대로 즐기려면 계곡에서 산등성이를 향해 올려다봐야 한다. 잔가지 하나 없이 날씬하고 쭉쭉 뻗은 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 있다. 이때 햇빛이 비스듬히 비치면 자작나무 몸통이 거울처럼 환하게 빛을 반사해 숲은 대낮처럼 밝아진다.

자작나무는 혼자 있을 때보다 숲이 되어 있을 때 더 아름답다.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자작나무를 한동안 보고 있으면 무아지경에 빠진다.


자작나무 숲속의 인디언집.

 

 

 

촬영장으로 인기 많은 ‘명품 숲’

스트레스 해소·심폐 기능 강화에 탁월

 


명품 숲인 만큼 드라마·영화 촬영장으로 인기가 높았다. 육군특전사에 근무하고 있는 이승기 상병이 2012년 숲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또 영화 ‘내 심장을 쏴라’, 드라마 ‘용팔이’ ‘무림학교’를 비롯해 예능프로그램 ‘1박2일’ 등이 천혜의 비경을 배경으로 촬영해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2014년과 2015년에 20만 명 넘는 탐방객들이 찾았을 정도로 명소로 급부상했다.

자작나무 사이로 난 1코스를 300여m쯤 지날 무렵 만나는 쉼터가 정겹다. 트레킹족이 숲속 벤치에서 숨을 돌리기에 그만이다. ‘자작나무가 낙엽송을 만났을 때’ 2코스로 들어서면 용감한 특전용사들의 얼굴에 위장크림을 발라놓은 것처럼 하얀색과 흑갈색 띠가 선명하다. 비포장 길은 잘 발달한 남성 근육처럼 툭 튀어나온 자작나무 뿌리가 많아 발걸음을 옮길 때 조심해야 한다.

자작나무는 미인 나무라고도 한다. 20m 이상 쭉쭉 뻗은 미끈한 몸통과 매끄럽고 흰 나무껍질(樹皮) 덕분에 ‘나무의 여왕’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숲속의 여왕인 자작나무는 사람을 순수하게 정화하는 힘이 있다. 현대인들의 스트레스 해소와 장·심폐 기능 강화에 좋고, 살균 작용이 있는 피톤치드가 풍부해 가족과 연인들의 건강한 삼림욕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천천히 돌아봐도 1시간30분이면 충분하다. 매끈매끈한 자작나무 몸을 만져보는 맛도 그만이다. 단단하면서 촉촉하다. 그래서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날머리는 원대임도로 잡고 숲속 삼림욕을 즐기며 대자연의 품격을 마음껏 느껴보자.

 

김용호 기자 < yhkim@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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