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그대 향한 사랑, 나라사랑으로

“왜 새 시작 안 했냐고? 지금이라도 살아올 것 같아…”

송현숙

입력 2017. 05. 31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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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25전쟁 미망인 정금원 여사와 육군7사단 이규학대대의 인연


다리에 관통상 입고 돌아왔던 남편, 낫자마자 다시 전장에 몸 던져

군사분계선상에 잠들어 있는 그… 유골조차 거둘 수 없었어요

남편 이름 딴 대대에 기념관까지 만들어 기억해주니 고마울 따름이죠

 

 


 


지난달 24일 육군7사단 연승연대 이규학대대 명예6중대장으로 위촉된 정금원(왼쪽) 할머니가 남편 고(故) 이규학 소령의 65년 직속 후배인 우용관 대위의 손을 잡고 대대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 대한민국! 이 땅의 평화와 번영은 순국선열이 흘린 피와 땀의 결정체다. 임들 덕분에 누리는 이 평화와 번영, 그 뒤에는 유가족의 눈물이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또다시 6월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나라에 바친 이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이달 매주 목요일, 나라를 지키다 한 줌 흙으로 돌아간 가족을 향한 그리움과 사랑을 나라사랑으로 이어가는 유가족을 만나본다.


명예 중대장 위촉된 80대 할머니

“위촉장 제1호! 정금원 여사! 항상 이규학대대 장병들을 친자식처럼 아껴주시는 귀하를 대대 명예6중대장으로 위촉합니다. 2017년 5월 24일 육군7사단 이규학대대장 중령 이상욱!”

지난달 24일, 육군7사단 연승연대 이규학대대에서는 작지만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서울에서 홀로 사는 정금원(89) 할머니가 대대 명예6중대장으로 위촉된 것. 선물로 받은 정글모를 쓴 채 중대원들 손을 일일이 잡아주고 안아주는 모습이 영락없는 친할머니다. “장병들이 다 내 자식 같다”는 정 할머니. 이 부대와는 어떤 인연이 있는 걸까?



 


중대장으로 몸담았던 대대서 이름으로 남게 된 남편

“60여 년 만에 남편 부대에서 나를 찾는데 당연히 와야지.” 이들의 만남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KBS ‘가요무대’ 6월 특집방송에 출연한 정 할머니와 남편 고(故) 이규학 소령(1928~1953·추서 계급)의 사연을 접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부대는 정 할머니를 직접 찾아 나섰다. 사단 출신 전쟁영웅의 뜨거운 애국심을 본받고, 미망인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사단은 고인을 부대의 정신으로 부활시켰다. 고인이 중대장으로 몸담았던 대대를 그해 10월 ‘이규학대대’로 명명하고 현판식을 했으며, 현관에 소규모 기념관까지 설치했다. 기념관에는 그의 일대기와 주요 전공은 물론 정 할머니가 평생 보물처럼 간직해온 친필 편지와 사진, 훈장증, 전역통지서 등 기록물을 함께 전시해 부대 장병과 방문객들에게 살아있는 역사 교육의 장이 되도록 했다. 또 부대는 특별한 날은 물론 평소에도 왕래하고 소식을 전하며 정 할머니를 사단의 어머니로 섬기고 있다.

정 할머니는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킨 내 남편이 대대의 이름이자 상징이 된 것도 기쁜데 때마다 안부를 물어주고 찾아줘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명예6중대장으로 위촉된 정금원 할머니와 중대원들이 포옹을 하고 있다.

 


휴전 이틀 전 406고지전서 장렬히 전사… 지금의 GOP 선 지킨 장본인

충북 단양 출신인 이규학 소령은 1949년 소위 시절 정 할머니와 결혼했다. 하지만 신혼의 단꿈은 이듬해 6월 25일, 북한의 불법 남침으로 산산이 부서졌다. 남편은 곧장 전투에 나섰고, 정 할머니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단양에서 안동, 영천을 거쳐 부산으로 끝없는 피란길에 올랐다.

시련은 한꺼번에 찾아온다고 했던가? 남편이 전투 중 수류탄 파편에 맞아 다리에 관통상을 입고 부산으로 후송된 데 이어 어린 자식마저 앞세웠다. 넋 놓고 슬퍼할 수도 없는 전쟁통, 젊은 아내는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53년 투병생활을 마치고 전방 7사단으로 향한 남편은 연이은 승전보로 아내를 위로했고, 정부는 용감하게 싸워 혁혁한 전과를 올린 당시 이규학 대위에게 금성화랑무공훈장을 수여했다.

정전회담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그해 7월, 예하 연대 2대대 6중대장으로 전속한 이 대위는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406고지전투에 나섰다. 영화 ‘고지전’의 배경이 된 바로 그 전투다. 당시 남한 전력의 30~40%를 담당했던 화천발전소를 두고 서로 뺏고 뺏기는 공방전이 펼쳐졌다. 이 전투에서 그는 중공군 포탄에 맞아 전사했다. 휴전 발효 이틀(24일)을 앞두고 벌어진 일이었다.

“하늘이 무너졌죠. 죽지 못해 살았어요. 그러다 우연히 신문에 난 육군본부 군무원 구인 광고를 보고 지원해 다행히 합격했고 새 삶을 시작했죠. 군인들 속에서 일하다 보니 군복 입은 군인이 다 내 남편 같았어요. ‘이규학’이라는 이름의 병적 기록부를 보면 ‘혹시 남편이 아닐까?’ 몇 번이나 확인하고 또 실망하고 그랬죠. 왜 재혼하지 않았느냐고? 남편 눈 감은 걸 못 봤잖아요. 지금이라도 살아서 돌아올 것만 같아요.” (정 할머니)

남편을 향한 그리움은 나라사랑으로 이어졌다. 정 할머니는 정년 퇴임 후 대한민국 전몰군경미망인회의 회원으로 일선 군부대 위문과 전적비 환경 정화 활동 등에 참여하고 있다. 이규학대대장 이상욱 중령은 “406고지전투는 6·25전쟁 최후의 전투이자, 7사단 현 작전지역에서 치른 유일한 전투”라면서 “당시 6중대장으로 참전한 이규학 소령 등 선배 전우들이 잘 싸워주신 덕분에 지금의 GOP 선을 지키게 됐다”고 그 의미를 설명했다.



대대 현관에 조성된 이규학기념관을 둘러보는 정금원 할머니와 대대 용사들.

 


‘이규학 DNA’ 물려받은 용사들 “상무정신 계승할 것”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고 이규학 소령의 묘에는 전쟁에 나서기 전 아내에게 맡긴 머리카락과 손톱이 안장돼 있다. 그의 유해는 칠성전망대 전방으로 보이는 406고지 군사분계선(MDL)상에 잠들어 있다. 전사한 장소를 알지만 국방부 유해발굴단이 들어가 유골을 수습할 수 없는 곳이다. 이런 정 할머니의 한(恨)은 대대원들이 풀어주고 있다.

대대장 이 중령은 “저희 대대가 지난해 사단 선봉대대로 선정된 데 이어 최근 과학화전투훈련단에서 진행한 훈련에서는 무월광에 1000m가 넘는 고지에서도 대항군에 맞서 용감히 잘 싸워 좋은 결과를 냈다”면서 ‘이규학 DNA’를 물려받은 후 더욱 강해진 정신력과 전투력을 설명했다.

6중대장 65년 직속 후배인 우용관(33·육사65기) 대위는 “우리 대대가 이규학대대로 명명된 만큼 그분의 상무정신을 잘 이어받아서 앞으로도 전투대비태세 유지와 본연의 임무 수행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정 할머니는 생전에 한 가지 바람이 있다고 했다. “나 같은 미망인이 또 생기지 않도록, 이 땅의 평화를 튼튼히 지켜주오. 그리고 6·25전쟁 미망인 30만 명 가운데 3만 2000여 명이 생존해 있어요. 이분들의 아픔을 기억해주고, 후세들에게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것이 지금 기성세대가 해야 할 일임을 잊지 말아줘요. 전쟁은 소설이 아니라고.”

송현숙 기자 < rokaw@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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