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6·25전쟁의 진실과 비밀

지·해·공 무차별 도발에 핵 위협까지 北 적화통일 야욕, 60여 년 세월에도 ‘그대로’

입력 2017. 05. 02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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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끝나지 않은 전쟁 (도발 상 )


북한, 테러의 대상 방법 가리지 않고

IS 능가하는 ‘무차별적 테러’ 자행해

 

 

 

 





북한은 정전협정 이후 64년 동안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지상, 해상, 공중에서 끊임없이 대남도발을 자행해왔다. 북한의 도발은 계산된 군사작전이며 적화통일전략이 변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그동안 1만여 건의 도발을 자행했다. 1996년 4월 4일에는 ‘정전협정 준수 임무 포기 선언’을 발표했다. 협정에 구애받지 않고 계속 도발하겠다는 본성을 드러낸 것이다.


북한의 도발은 초기에는 간첩 침투, 요인 납치, 사회 교란을 목적으로 한 무장공비 남파 등 무력시위 위주였다. 1970년대에는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면서 겉으로는 대화를 요청,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는 척했으나 뒤로는 파렴치하게 남침용 땅굴을 팠다. 땅굴은 4개나 발견됐으며 ‘더 많은 땅굴’이 존재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80년대에는 더욱 과감해져서 무장공비 침투 외에 해외 특수공작원에 의한 요인 암살, 항공기 폭파도 서슴없이 자행했다. 대표적인 것이 1983년 10월 9일 미얀마 수도 아웅산에서 전두환 대통령 암살을 기도한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이다. 4년 뒤인 1987년 11월 29일에는 특수공작원 김현희를 시켜 인도양 상공에서 KAL기 폭파 사건을 일으켰다.

90년대 이후 소련체제가 붕괴하면서 유럽에서는 공산체제가 몰락했으나 유독 한반도에서만큼은 김일성 사망(1994.7.8)에도 불구하고 아들 김정일과 손자 김정은 체제로 세습이 이뤄졌다. 북한은 2000년대 이후 군사력 우위를 선점할 목적으로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 등 해상 도발을 자행하고,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핵전쟁을 향한 위협과 도발을 계속하고 있다. 주요 도발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청와대 기습 기도 사건

1968년 1월 21일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목적으로 한 청와대 기습 기도 사건이 발생했다. 북한 124부대 소속으로 특수 게릴라 훈련을 받은 무장공비 31명이 서울까지 침투하는 과감성을 보였고, 청와대 뒤 북한산 줄기를 타고 청와대 문 앞 세검정까지 침투한 사건이다. 군에서는 한 달 동안 대간첩작전을 벌여 29명을 사살하고 김신조를 생포했다. 나머지 1명은 포위망을 뚫고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후방지역 방어를 위한 예비군이 편성됐고, 국민의 안보의식이 크게 향상됐다.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북한이 저지른 도발 중 가장 야만적인 것은 1976년의 판문점 도끼 만행이다.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미군 장교 2명이 북한군이 휘두른 도끼에 맞아 죽은 사건이다.

이 사건은 유엔군 측이 경비초소의 시야를 가리는 미루나무 가지를 자르는 과정에서 북한군 경비병들에 의해 자행됐다. 여름철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은 정기적으로 해온 매우 정상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이날은 갑자기 나타난 북한 경비병들이 도끼를 휘둘러 유엔사령부 측 경비대장 보니파스(Bonifas) 대위와 배럿(Barrett) 중위가 중상을 입고 후송 중 사망했다. 그 외 미군과 카투사 9명도 중경상을 입었다.

이 사건은 즉시 전 세계에 보도됐고, 유엔군의 경계태세가 데프콘2에서 데프콘3으로 격상됐다. 이런 조치는 휴전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사흘 후(21일) 한미 양국은 제1공수여단과 1사단, 미2사단 전투공병 등 813명으로 구성된 특수임무부대를 편성하고, 만일에 대비해 F-4 팬텀 전투기, B-52 전략폭격기 등이 한반도로 전개한 가운데 항공모함까지 동원하는 군사작전에 들어가 문제의 미루나무를 완전히 제거했다. 사건의 중대함을 인식한 김일성도 같은 날 오후 5시 전군에 전투준비명령을 내리고, 평양 시민을 황해도 등 지방으로 소산시키는 조치를 취했으며 국가동원령도 내렸다. 일촉즉발의 위기까지 갔다. 결국, 김일성의 유감 표명으로 끝났다.


 


 

 

 

김현희 KAL기 공중 폭파 사건

 

1987년 11월 29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출발한 대한항공 858 여객기가 북한 특수공작원 김현희(당시 25세)와 김승일(당시 70세)에 의해 공중 폭파된 사건이다. 탑승자 95명, 승무원 20명 등 115명 전원이 사망하는 끔찍한 사고였다. 북한이 88서울올림픽을 방해할 목적으로 기획한 도발이란 점에서 경악을 금치 못한다. 김현희와 김승일은 북한 조선노동당 소속 공작원으로 대한항공 858기를 폭파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들은 일본 위장 여권을 소지하고 부녀지간으로 위장해 탑승한 후 기내에 시한폭탄을 숨겨두고 내리는 수법을 썼다. 비행기는 두 사람이 중간기착지인 아부다비 공항에 내린 후 인도양 상공에서 폭파됐다.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으나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수사기관은 일본인 두 사람이 아부다비 공항에서 내렸다는 정보에 따라 두 사람을 추적했으며, 잡힐 위기에 처하자 김승일은 청산가리 앰풀을 입에 넣고 깨물어 자살했고 김현희는 미수에 그쳐 검거됐다. 김현희로부터 일체의 자백을 받아냄으로써 북한 소행임이 밝혀졌고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다.

북한은 테러의 대상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지상, 해상, 공중을 구분하지 않고 목적 달성을 위해 항공기까지 납치·폭파한다. 1958년 2월 15일 부산 수영비행장을 떠나 서울로 향하던 KNA기가 평택 상공에서 북한 무장공비들에 의해 납치돼 평양 순안공항에 강제 착륙했다. 북한은 세계가 만행을 규탄하자 탑승자 26명을 돌려보냈다. 또 1969년 12월 11일에는 승객 47명과 승무원 4명을 태우고 강릉을 출발해 서울로 오던 KAL기가 대관령 상공에서 납치돼 원산으로 끌려갔다. 66일 만인 1970년 2월 14일 승객 39명이 판문점을 통해 돌아왔으나 12명은 아직 귀환하지 못하고 있다. IS를 능가하는 무차별적 테러를 자행하는 집단이 바로 북한이다.


<배영복 전 육군정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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