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6·25전쟁의 진실과 비밀

끊이지 않는 북핵·미사일 도발… 전쟁은 현재진행형

입력 2017. 04. 19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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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6·25전쟁이 남긴 것


전쟁의 폐허 딛고 피어난 민주주의

경제·과학·예술 모든 분야 급성장 결실

이산가족의 고통, 전쟁의 상처로 남아

남북 대립은 더욱 심화되고

이념갈등·세대갈등도 커져

남과 북 가른 휴전선 걷어내고

통일 이룰 때 ‘진정한 종전’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을 지속하며 한반도 긴장 상태를 고조시키고 있다.  2016년 4월 북한이 공개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장면.   연합뉴스



1917년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폭력혁명이 성공한 지 100년이 됐다. 그러나 1989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사라졌다. 공산주의로 성공한 나라는 없다. 마르크스가 주장했던 지상낙원은 몽상에 불과했고 현실은 독재와 가난으로 끝을 맺었다. 공산주의는 오직 독재의 수단일 뿐이다.



북한의 김일성도 지상낙원을 선전했으나 ‘이밥(쌀밥)에 고깃국 한 그릇’도 제대로 먹이지 못하고 끝났다. 그가 일으킨 ‘6·25전쟁’은 한반도라는 좁은 땅에서 세계 67개국(유엔 측 64개국, 공산 측 3개국)이 3년1개월 동안 싸운 국제전쟁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김일성은 얻은 게 없다. 이 전쟁을 통해 가장 큰 이득을 본 나라는 대만이다. 마오쩌둥이 6·25전쟁에 참전하느라 대만을 침공하지 못해 살아남는 행운을 얻었다. 중공은 통일의 기회는 잃었지만, 전쟁을 통해 국제사회에 대국 이미지를 각인했고, 그 영향으로 유엔에서 대만을 축출하고 상임이사국이 됐다.

미국은 6·25전쟁에서 전사 5만4246명, 실종 8177명, 포로 7140명, 부상 10만3284명 등 17만 명의 희생자를 내고, 막대한 비용(6900억 달러)을 지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끝난 뒤 총 결산보고서에는 ‘막대한 이익’을 챙긴 것으로 평가됐다. 전쟁 동안 미국의 군수산업은 엄청나게 발전해 전쟁비용을 다 충당하고도 남는 장사를 했고, 유럽과 세계질서 재편 과정에서 세계 제일의 패권국가가 됐다. 특히 일본은 전후 폐허에서 6·25전쟁 덕분에 살아났다. 미국으로부터 군수품 제조 공급의 특혜를 받아 경제도약을 이루고 오늘날 세계 경제대국이 됐다. 1950년 7월 요시다(吉田茂) 총리는 7만5000명의 경찰예비대와 해안보안청을 창설해 자위대로 발전시켰다. 문제는 우리 국내 사정이다. 6·25전쟁은 우리에게 과연 무엇을 남겼는가?



6·25전쟁 딛고 세계 속 강국으로 발돋움

1960년 영국의 기자는 한국의 현실을 보고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구하는 것은 쓰레기 더미에서 장미꽃을 찾는 것과 같다’고 비하했다. 그러나 장미꽃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아름답게 피었다. 놀라운 일이다.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경제·과학·의학·예술·스포츠 등 모든 분야에서 첨단을 넘어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가 됐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다. 이 찬란한 영광의 빛 ‘5000만 송이 장미꽃’이 되어 가슴 가슴마다 희망을 선물했다. 물론 위기를 극복하느라고 희생도 많았다. 그래서 더욱 값지다.

또 다른 영국기자 ‘마이클 브린’은 한국에 대해 ①평균 IQ가 높고 문맹률이 1% 미만인 유일한 나라 ②경제대국 일본을 우습게 보는 나라 ③음악 수준이 세계를 압도하는 나라 ④지하철, 공항이 세계 제1인 나라 ⑤가장 우수한 국어를 가진 나라 ⑥문자 없는 나라에 유엔이 한글을 공급하고 있는 나라 ⑦인터넷, TV, 초고속 통신망이 세계 최고인 나라 ⑧세계 유수 대학의 우등생을 휩쓸고 있는 나라 ⑨세계에서 가장 기가 세고 강인한 민족 ⑩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하고 잠이 없는 나라 등 30여 가지로 설명했다. 지금 우리는 세계 제1의 상품을 151가지나 갖고 있다. 자동차에서부터 첨단무기까지 수출하고 있다. 모두 6·25를 딛고 일어선 덕분이다.



북핵 도발에 사드 배치 등 난제 직면

6·25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현재진행형이고 긴장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휴전 이후 60여 년이 지난 오늘 대한민국은 경제대국이 됐고, 북한은 핵 및 미사일 도발 국가가 됐다. 북한은 유엔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하고 탄도미사일을 계속 발사하고 있다. 끝까지 가겠다는 생각이다. 김정은 체제 이후 더욱 호전적으로 변했다. 친족까지 함부로 죽인다. 체제 불안을 느낀 사람들이 탈북 러시를 이루고 있지만, 북한의 공포정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사드(THAAD) 배치 문제를 두고 내외적으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중·러뿐만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반대 여론이 있다. 안보를 책임질 수 없는 사람들이 적극 반대한다. 그러나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방어수단인 사드는 반드시 필요하다.



휴전회담 장소 판문점, 공산 측의 전략

판문점을 휴전회담 장소로 선택한 것은 공산 측의 전략적 성공이다. 38선 이남의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을 뿐만 아니라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하려고 해도 판문점에 막혀서 할 수가 없었다. 휴전선은 63년 동안 고착돼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 어떻게 보면 3년 동안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도 얻은 결과는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남북의 첨예한 대립과 갈등이 더욱 심화됐을 뿐이다. 휴전선이 없어지고 완전한 통일을 이뤄야 6·25전쟁이 종결된다. 그 시기가 언제 올 것인지! 우리의 사명이다.



남북 이산가족, 치유할 수 없는 고통

전쟁으로 인해 1000만 명의 ‘남북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개인의 고통을 넘어 민족의 고통이 된 것이다. 역사상 외침이 많았던 우리 민족은 ‘혈육의 정’이 남달리 강한 민족이다. 그런데 전쟁으로 부모·형제·자녀가 생이별하고 반세기 넘게 살았다. 1983년 KBS 특별생방송 이후 큰 효과도 있었고, 또 추석 때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이산가족의 한을 다 풀어주지 못해 안타깝다. 그나마 남북 만남의 행사는 중단된 지 오래다. 민족의 슬픔은 치유할 수 없는 전쟁의 상처가 됐다.



이념 혼돈 시대로 접어든 우리 사회

6·25전쟁은 이념전쟁이다. 공산당이 자유민주국가를 적화통일하겠다는 발상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공산당의 잔학성을 경험한 우리는 반공만이 살길이란 것을 깨달았으며 ‘반공정신’이 생존을 위한 가치관이 됐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남남갈등, 보혁갈등, 세대갈등의 이념 혼돈 시대로 접어들었다. 남쪽이 자유방임한 사이 북은 고도의 심리전으로 한국사회를 파고들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도전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존폐 위기까지 걱정된다.


<배영복 전 육군정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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