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6·25전쟁의 진실과 비밀

통일 멈춰진 그날, 전선을 채운 건 허탈감뿐…

입력 2017. 04. 1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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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휴전되던 날의 전선


1953년 7월 27일 밤 10시

요란한 호루라기 소리 휴전 알려와

마지막까지 유리한 고지 얻기 위해

휴전 앞둔 전선 더욱 치열하게 싸워

 

정전협정 서명 마친 클라크 장군

“희망 발견할 수 없다”며 침통

‘휴전반대·북진통일’ 국민의 열망도

적막에 싸여 안개처럼 흩어져

 

 

1953년 7월 27일 문산에서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이 정전협정에 서명하고 있다. 클라크 사령관은 판문점 조인식에 참여하지 않고 유엔 회담 대표 숙소가 있던 문산에서 따로 서명했다.  국방부 제공

 


‘리멤버 7·27’을 아십니까? 미국은 6·25 한국전 참전용사와 그 희생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한국전 참전용사 휴전기념일’을 정해놓고 매년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에 조기를 게양한다. 링컨기념관 앞에서는 6·25 휴전 기념 평화콘서트 및 촛불행사가 개최된다. 그러나 정작 한국은 기억에도 없는 듯 눈감고 지나간다.


재미교포 참전용사 이배영(83·포병중위) 씨는 휴전 전날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1953년 7월 26일, 나는 한국전선 동해안의 고산지대 건봉산(910m) 정상에 서 있었다. 보병연대 작전지휘소 벙커에서 나의 임무는 전투 중인 보병연대에 포병 화력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수주 전 바로 이 고지에서는 적 인민군의 야간기습공격으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휴전을 앞두고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기 위해 최후의 결전을 벌인 것이다.

나는 미리 포격 제원을 준비했던 지점에 조명탄 사격을 요청, 전투 지역을 밤새 대낮같이 밝혔다. 적은 조명 아래서 숨을 곳이 없었다. 멀리 산 아래 보이는 동해상의 미군 전함에서도 함포 포탄이 날아와 4000∼6000m 떨어진 적진에서 폭발하며 천지가 진동하는 장관이 펼쳐졌다. 적은 많은 사상자를 내고 아침 해가 뜨기 전에 퇴각하고 말았다. 마지막 전과는 대단했다.

 

휴전 협정 서명을 나흘 남겨 놓고 한창 공사 중인 조인식장 건물. 그동안 협상장으로 사용해 왔던 목조 건물(새 건물 터 뒤쪽)은 장소가 비좁아 새 건물을 따로 지었다. 1953년 7월 23일.  연합뉴스

 


그리고 몇 시간 후 7·27 휴전이 성립됐다. 그날은 피아간 전선이 모두 잠잠했다. 그냥 생눈으로 적진을 노려보는 시선에는 여러 갈래의 상념이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밤 10시가 되자 전 전선에 걸쳐 ‘호루라기’ 소리가 요란하게 2중창 4중창으로 고요를 깨트렸다. 전투중지 효력 발생 신호다. 3년1개월간 끊임없던 총성이 멈추는 순간이었다. 동족상잔의 혈투로 조국강산이 피로 물들고 수백만이 목숨을 잃은 비극의 현장에 막이 내려지는 순간이었다.

크리스마스 고지에서 휴전을 맞은 필리핀 참전용사 피카체 씨는 중공군이 필리핀 사람을 데려와 필리핀어로 ‘필리핀인은 집으로 돌아가라’고 소리치는 일이 자주 있었는데 그때마다 박격포 세례를 퍼부었다고 했다. 그리고 7월 27일 상부로부터 ‘휴전이 임박했으니 적이 이상한 반응을 보이면 모든 화력을 다 써서 보복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밤 9시45분 사격중지명령이 떨어졌다. 순진한 일부 병사들은 참호 밖으로 나가 만세를 부르다 적의 공격을 받아 큰일 날 뻔했다. 그 후 밤10시가 되니 온 천지가 조용해졌다.

6·25전쟁은 애통의 역사다. “휴전반대” “북진통일”을 외쳐온 국민의 열망이 안개처럼 사라졌다. 적막에 싸인 전선의 장병들은 절망과 허탈감을 느낄 뿐이었다.

1953년 6월 25일, 월터 로버트슨 미 국무부 극동 담당 차관보가 대통령 특사로 서울에 왔다. 휴전을 반대하는 한국을 달래기 위해서다. 이승만 대통령은 12일 동안 그를 잡아두고 한국이 필요한 모든 것을 요구했다. 한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한국군을 20개 사단으로 증강하며, 2억 달러의 긴급원조와 1000만 파운드의 식량원조를 즉시 이행한다는 계획이 발표됐다. 휴전하는 대신 미국이 한국의 경제성장과 안보를 책임지는 후원자가 될 것을 약속했다.

 

 

1951년 11월 26일 유엔군 연락장교 제임스 레이(왼쪽) 대령과 인민군 연락장교 장춘산이 판문점에서 휴전선을 정하는 협상을 시작하며 지도에 38선을 긋고 있다.  국방부 제공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유엔군사령부의 윌리엄 해리슨 중장과 북한의 남일이 회담장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쌍방이 준비한 18개 문서 중 첫 번째 문서에 서명했다. 12분 만에 끝났다. 서명이 끝나자 그들은 각자 아무 말 없이 일어나 서로 인사도 없이 헤어졌다. 그 후 영어·중국어·한국어로 된 그 문서에 김일성·펑더화이·클라크 장군이 각각 서명했다. 클라크 장군은 서명을 마치고 “나는 지금 이 순간 전혀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희망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침통한 자신의 느낌을 말했다. 정전협정 체결로 일단 휴전은 시작됐다. 그로부터 64년이 지났다. 오늘의 모습은 어떤가?

 

6·25전쟁 휴전협정 체결 시 미국 대표인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이 서명할 때 사용했던 책상(등록문화재 464호).  문화재청 제공

 


휴전으로 인해 38선이 휴전선으로 바뀌었을 뿐 외형적으로 큰 변화는 없다. 오히려 북한의 도발로 긴장이 감돌고 있을 뿐이다.

휴전을 앞둔 전투에서 쌍방은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 결과 서부전선에서는 옹진반도와 개성을 적에게 내주었지만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 등 5개 섬과 주변 해역은 국군이 확보했다. 중부전선에서는 화천·철원평야가 대한민국 품에 들어왔고, 동부전선에서는 양양·속초·설악산·간성·고성을 차지했다. 북한은 남쪽으로 850평방마일의 영역을 차지했고, 대한민국은 북으로부터 2350평방마일의 영토를 수복했다.

그러나 고향을 북한에 두고 피란 내려온 실향민들은 평생 동안 북한 하늘을 바라보며 살았고, 휴전선을 허물지 못한 천추의 한을 남긴 채 하나둘씩 사라져 가고 있다.

휴전된 지 64년! 지금 1953년 7월 27일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잠들어 있는 우리의 아들, 아버지, 형제, 남편! 그들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는데 우리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주었는가? 침략자인 북한은 핵과 탄도미사일을 개발해 전쟁놀이를 즐기면서 제2의 6·25를 획책하고 있는데 우리는 무슨 대비를 하고 있는가? 사드(THAAD) 하나 우리 의지대로 우리 땅에 배치하지 못하고 국론이 분열되는 오늘의 현실이 더 가슴 아프다. 과연 우리는 스스로 안보를 책임질 수 있는가? 이 땅에서 숨 쉬고 있는 자들이 대답할 차례다.

‘아∼조국이여! / 조국을 위해 바친 충정/ 전우 구하려다 용감히 산화한 아들/

겨레의 십자가 지고 / 조국이여, 내 사랑하는 조국이여! / 조국을 부르다 가신 내 님이여 / 임의 뜻 영원하리!’

묘비에 새겨진 비문을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갈 때마다 답답해지는 노병의 가슴을 무엇으로 뚫을 수 있단 말인가?

휴전이 돼 군인들이 모두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고향 집에는 소 한 마리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았다. 농토도 황폐화됐다. 아들의 전사통지를 받고 통곡하던 부모님을 우리는 잊을 수 없다. 전후의 암울한 현실과 1960년 4·19 당시 혼란했던 한국의 사회상을 보고 영국 기자는 ‘코리아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 더미에서 장미꽃이 피어나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고 우리를 비하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수모를 다 극복하고 장미꽃을 피웠고, 불과 50년 만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뤄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가 됐다.

그러나 안보 상황은 정전협정이 맺어진 1953년과 비교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북한의 핵개발과 ICBM급 탄도미사일 개발은 한국을 넘어 미국까지 위협하고 있다. 북한은 유엔의 계속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지난 2017년 3월 6일 아침 또다시 동해 상공을 향해 탄도미사일 4발을 쏴 올렸다. 미사일은 모두 1000㎞를 날아가 일본 EEZ 해상에 떨어졌다. 중국은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가운데 한미가 이를 추진하자 무역 보복은 기본이고 관광금지, 한류문화 통제 등으로 맞서고 있다. 국내 사정과 맞물려 내우외환의 심각한 위기에 놓여있는 것이다.

<배영복 전 육군정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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