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조아미 기자의 아들과 함께 하는 하루

아픈 부모 옆에서 속앓이 많았지? 이제 우리 가족에게도 봄이 올거야

조아미

입력 2017. 02. 16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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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1함대 인사참모실 인사계획과 남경식 병장


내가 중2 때 위암 판정을 받은 아버지

‘청천벽력’ 어머니의 갑상선암 진단까지

군대조차 인생의 장애물처럼 느껴졌다

묵묵히 임무 다하는 전우들 보며 반성하고

‘나도 행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아르바이트 하며 생활비 보태고

전액 장학금으로 학비 걱정도 덜어준 아들

속으로 상처가 깊어가는 줄 미처 몰랐지

입대 후 손편지도 보내고 연락도 잦아지고

보이지 않는 벽 허물게 돼서 너무 기쁘구나

 

 

 

요즘 말하는 ‘흙수저 인생’이라 생각했다. 식비가 아까워 밥을 굶기 일쑤였고, 책 살 돈이 없어 교재 없이 교실에 들어가기도 했다.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해 부모님을 탓했다. 돈과 지위를 얻고자 학창 시절 앞만 보고 달렸다. 물질이 행복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걸로 생각했다. 가족 모두에게 짜증 내는 일도 많았다. 자연스럽게 말수는 줄어들고, 웃음도 사라졌다. 설상가상으로 부모님이 암에 걸렸다. 가세까지 기울어 부모님에 대한 원망은 더 늘어났다. 군대도 처음엔 장애물로 느껴졌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이상하게도 그 속에서 행복함을 느꼈다. 함께 근무하는 모든 전우가 선생님이었다. 그리고 가족이 그리워졌다. 아빠의 든든함, 엄마의 따뜻한 손길···. 삐뚤어졌던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해군1함대사령부 인사참모실 인사계획과에 근무하고 있는 남경식(25) 병장을 만나기 위해 아버지 남정원(59) 씨와 어머니 김남아(53) 씨가 16일 처음으로 부대를 찾았다.


 

 

 

전투복 입은 부모님, 블루캠프병 임무 체험

부모님은 경남 마산에서 강원도 동해까지 아픈 몸을 이끌고 먼 길을 달려 아들을 보러 왔다. 부모님을 만난 남 병장은 표현은 서툴렀지만 얼굴만큼은 밝았다. 부모님도 말없이 그저 아들만 바라봤다. 부모님은 가장 먼저 아들이 지내는 생활관을 찾아 함께 지내는 병사들을 만났다. 일일이 인사하며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생활관을 둘러보며 안도하는 모습으로 “햇볕이 잘 들어 오네요. 아들이 예민해서 걱정했는데 생활관 내부가 깨끗하고 너무 좋다”고 했다.

남 병장이 중학교 2학년이던 지난 2007년 아버지는 위암 3기 판정을 받았다. 어머니도 지난 2014년 ‘갑상선암 3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이 나왔다. 다행히 현재 아버지는 10년이 지나 거의 완쾌됐다. 어머니는 아직 투병 중이다. 말수가 적은 아들을 보고 어머니는 “집안 형편이 어렵고 부모가 아프니 스트레스를 혼자 속으로 삭이고, 말을 잘 안 하게 된 것 같다”고 걱정했다.

지난 2015년 8월 31일 입대한 남 병장은 부대에서 블루캠프병이다. ‘블루캠프’는 해군 병사들이 군 복무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전문가 상담, 심리치료 등을 통해 선도·치유하는 프로그램이다. 블루캠프 관리병은 캠프에 입소한 병사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소통하면서 그들이 군 복무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부모님은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블루캠프병인 아들의 임무 체험에 나섰다. 군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한 병사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조언을 했다.



 

 



7월에 전역하면 가족과 여행 가고파

입대 전 남 병장은 치열하게 살아왔다. 대학 생활을 하며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용돈을 충당하는 것은 물론 생활비까지 보탰다.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밤에는 조용히 공부할 수 있어서 일부러 야간 아르바이트를 택했어요. 그땐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린 것 같아요.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은 보이지 않더라고요.”

부모님에게는 전액 장학금을 타 학비 걱정을 덜게 해준 장한 아들이다. 아버지는 “경식이는 뭐든 혼자서 척척 알아서 잘한다. 우리 부부도 아들을 믿고 있다. 그래서 불만 없이 잘 지내는 줄 알았는데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부모님은 아들이 자신들을 원망하고, 탓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딸들과는 달리 살갑지 않은 아들 녀석이고, 멀리 떨어져 지내 가족 간에 소통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그런 아들이 입대 후 손편지도 보내고 연락을 자주 하는 등 보이지 않는 부모님과의 벽을 허물어 갔다.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는 군 생활로도 이어졌다.

“처음엔 군대가 인생의 장애물처럼 느껴졌습니다. 제가 원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죠. 누구의 잘못도 아닌 어쩔 수 없는 상황은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하며, 오히려 그 속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러자 현재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어요. 그런 과정에서 저도 뭔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옆에서 ‘다시 해 보자’고 용기를 준 전우들은 남 병장의 선생님이 됐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묵묵히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병사들을 보며 자신을 반성했다.

회계사가 꿈인 남 병장은 23개월의 군 생활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자기계발에도 열심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평일에는 일과 후 2~3시간, 주말에는 온종일 세무회계 등을 공부한다. 원격 수강 강좌로 미리 대학 학점도 취득했다. 이 밖에 운동과 독서로 여가를 즐기고 있다. 남 병장은 입대 전 58㎏이던 몸무게를 12㎏ 늘려 현재 177㎝에 70㎏을 유지하고 있다.

아버지는 “입대 전 너무 말라서 걱정했는데 지금 딱 보기 좋게 살이 쪘다. 더 쪘으면 좋겠다”며 “암도 유전적인 요인이 크다고 들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운동으로 다져진 건강한 몸을 만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는 7월 30일 전역하는 남 병장은 전역 후 가장 먼저 가족과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군 생활을 하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많이 깨달았습니다. 두 분 부모님이 앞으로 더 건강해지면 누나·여동생과 함께 가족여행을 가고 싶네요. 물론, 남은 군 생활 동안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전역하는 날까지 의미 있는 군 생활을 해 나가겠습니다.”

 

 

 

 

 

철없이 내뱉은 모진 말들, 용서하세요


사랑하는 엄마

엄마를 처음 만난 지 벌써 2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엄마는 제가 커오는 동안 늘 저와 같이 계셨습니다. 제가 처음 몸을 뒤집을 때, 처음 말을 했을 때, 처음 거짓말을 했을 때, 운동회 때, 학예회 때 등 모든 곳에 계셨습니다. 그 모든 추억을 저는 엄마와 함께했네요.

그런 엄마를 저는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냥 당연히 엄마, 그냥 당연히 존재하는 존재, 그렇게 느꼈을 뿐입니다. 엄마가 느꼈을 아픔과 슬픔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엄마의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을지, 엄마의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을지, 엄마의 꿈은 무엇이었을지, 엄마는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꽃을 좋아하는지. 지금 생각해 보니 참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

이렇게 하나둘 생각해 보니 지난날 엄마를 원망했던 것이 부끄럽습니다. 왜 더 주지 못하느냐고 왜 더 가지지 못 했느냐고 내뱉었던 모진 말들이 참 부끄럽습니다. 저는 이미 충분히 받고 있었습니다. 매번 끼니를 걱정해주셨고, 잠자리를 봐 주셨으며, 어디 아픈 곳이 없는지 항상 걱정해 주셨죠. 부끄럽게도 그때는 몰랐습니다. 지금까지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큰 자산을 제게 몸소 전해주셨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힘은 모두 엄마가 주신 거예요. 엄마의 눈물과 땀으로 제가 존재하네요.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어머니. 부끄럽지 않게 살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열심히 살아온 너에게박수를 보낸다, 사랑해 아들


아들에게

‘엄마 편지 자주 할게요. 답장 꼭 해주세요’라며 집을 나선 때가 엊그제 같은데 시간이 꽤 흘러 어느덧 병장이 됐구나.

군 생활 초기엔 힘들고 불안해 서로 많은 편지가 오고 갔지. 그땐 참 너도 힘들고 나도 힘들었는데 잘 견뎌 줘 고맙구나. 그때 주고받았던 편지는 가계부에 고이 붙여두고 한 번씩 눈시울 적시며 읽어보곤 한단다.

가슴 아픈 현실 속에 정말 어렵고 힘들게 살았지. 뒤돌아보면 가슴이 먹먹해지는구나. 비 온 뒤 땅이 굳듯이 이젠 바닥이라 생각하면 희망이 샘솟는 것 같아. 이젠 올라갈 일만 남았다. 많은 여유가 생긴 건 아니지만 한숨 돌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온 결과라 생각한다. 아빠는 위암 수술 한 지 이젠 10년으로 접어들어 거의 완치되셨고, 엄마도 갑상선 암 수술한 지 3년이 지나 얼마 전 병원에서 큰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했단다. 아빠는 직장 생활 잘 하시고, 누나도 군무원 시험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데 7월이면 좋은 결과 있으리라 생각한다. 동생 혜지도 이젠 중학생이 됐다. 열심히 살아온 우리 가족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구나. 아들도 얼마 남지 않은 군 생활 최선을 다해 마무리 잘하고 전역하길 바란다. 너와 함께 갔던 서원곡 둘레길에 홍매화가 꽃망울이 맺혀 금방이라도 터질 듯 참 보기 좋다. 그 꽃망울이 꼭 우리 가족을 보는 것 같구나. 혹독한 겨울을 잘 참고 견뎌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홍매화처럼 우리 가족에게도 이제 좋은 일만 생길 것 같다. 아들 사랑한다.


조아미 기자 < joajoa@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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