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아미
육군22사단 쌍호연대 본부중대 전현준 일병
아버지가 갑작스레 떠나서일까
가장의 무게 짊어진 대학생 아들은 말수가 줄고 점점 어두워졌죠
활짝 웃는 얼굴 얼마 만인지… 모두에게 고마워요
위축된 몸과 마음 바꿔보려 우울증 치료 받고 적극적으로 생활했죠
목소리로 희망 전하는 ‘성우’ 꿈꾸며 ‘내 나이 때 아버지는 어땠을까’ 상상도 해요
갑작스럽게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아들은 너무 빨리 어른이 됐다. 겉으로는 항상 ‘괜찮다’며 웃음으로 넘겼다. 뭐든 참기만 했다. 그게 마음의 병이 됐다. 입대 후 아들은 스스로 걸어 잠근 마음의 빗장을 풀기 시작했다. 엄마는 감사했다. 용기를 낸 아들이 고마웠다. 육군22사단 쌍호연대 본부중대 전현준(21) 일병을 만나기 위해 어머니 한민옥(50) 씨가 지난 12일 부대를 찾았다.
아들아, 울어도 괜찮다
어머니는 아들을 보기 위해 캄캄한 새벽길을 달려 경기도 안양에서 강원도 고성의 부대가 있는 곳까지 한달음에 왔다. 위병소 앞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본 전 일병은 반가움이 컸던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부대 장병들은 고단한 혹한기 훈련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생활관을 찾으면 아들들이 쉬는 데 방해가 될까봐 조심스러워 했다. 장병들이 조금 더 쉴 수 있도록 병영도서관에서 아들과 오랜만에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여동생 얘기, 훈련 얘기, 여느 모자지간처럼 즐거워 보였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전 일병은 군 생활 적응이 힘들었고, 꽤 벅차 했다. 급기야 우울증 약까지 먹게 됐다.
한씨는 “엄마는 우리 현준이가 속앓이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털어놓았으면 좋겠어. 힘들었을 텐데 잘 이겨내 줘서 고맙다”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아들과 동기인 전우들과 일일이 악수하면서 아들과 잘 지내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전우들은 눈물을 쏟아내는 전 일병을 서로 안아주며 진심을 다해 위로해줬다.
엄마, 걱정 마세요
전 일병은 지난해 6월 14일 입대했다. 평소 말수가 적고, 낯가림이 심했다. 군대 가면 위축된 자신을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중대장과 수없이 상담도 했다. 대대 포 관측병에서 연대 통신병으로 보직도 옮겼다.
“연대장님께서 직접 만든 교육자료, ‘쌍호인의 마음가짐’을 읽으면서 저를 바꿔보고자 용기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군 병원을 다니며 우울증 약도 챙겨 먹고 뭐든 더 적극적으로 생활했어요. 시간이 조금씩 흘렀고, 요즘의 제 모습을 보면 입대 전과는 확연히 다른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어머니도 아들이 ‘마음의 병’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느끼고 있다.
“지난번에는 전역을 앞둔 선임이 방상내피를 선물해 줘서 따뜻하게 지내고 있다고 남다른 전우애를 자랑하더라고요. 또 얼마 전에는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후임을 걱정하며 어떻게 도와줄지를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현준이가 대견하고 사랑스러웠어요. ”
이어 아들과 엄마는 부대 실내교육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엄마는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통신병인 아들의 임무를 체험했다. 전 일병은 통신장비를 보여주며 설명했다. 휴대용 무전기 핸드토키도 사용하며 마음속 깊이 간직했던 얘기들을 전했다.
“엄마 등장했음!”
“이제 정말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맡은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멋진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겠습니다. 엄마 사랑합니다. 통보. 이상!”
하늘에서 지켜볼 아버지, 잘 해내겠습니다!
아버지는 전 일병이 중학교 3학년 때 뇌출혈로 쓰러졌다. 그 후 후유증으로 4년간 투병했다. 전 일병은 아버지의 병간호를 하는 것은 물론, 시간 날 때마다 아버지가 하시던 제과 일을 도왔다. 그러던 지난 2015년 2월, 전 일병이 대학교 입학식을 마치고 돌아온 날 밤에 아버지는 급성 심근경색으로 조용히 가족 곁을 떠났다.
너무 일찍 가장이 돼 버린 전 일병은 슬픔 속에 대학 1학년을 마쳤다. 여동생이 대학에 입학하자 경제적으로 힘들어질 집안 형편을 걱정하며 휴학 후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었다. 그리고 입대했다. 자신을 바꾸고 싶은 희망이 컸다.
“빨리 군대에 가고 싶었어요. 소심한 성격을 바꾸고 싶기도 했고, 남자들은 군대 갔다 오면 철든다고 하잖아요. 군 생활이 분명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될 거라 믿었습니다.”
어머니는 불평 한마디 없이 가족을 위해 행동하는 아들이 든든했다. 한편으로는 점점 웃음이 사라지는 모습에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와 같다고 봐요. 더 깊어지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데, 스스로 용기 낸 아들이 참 고맙네요. 아들을 극진해 챙겨준 부대 간부들께도 너무 감사드립니다. 요즘, 군 생활 적응도 잘하고, 먹는 약도 줄였어요.”
전 일병은 요즘 아버지의 군 생활을 어머니에게서 듣는다.
“육군17사단에서 하사로 전역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의 제 나이 때 아버지는 어떤 마음가짐이었을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아버지께서 웃으면서 저를 지켜보실 것 같네요. 아버지! 아들이 잘 해내겠습니다!”
본부중대장 이용복 대위는 “현준이는 처음 면담할 때만 해도 소극적인 병사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긍정적으로 변화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싶어 혼자 노력을 많이 했다고 대답했다”면서 “달라진 전 일병을 보면 지휘관만이 알 수 있는 기쁨과 보람이 느껴진다. 항상 응원하고 있으니 힘든 게 있으면 언제든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가족, 그 든든한 이름이 용기를 준다
전 일병은 군 생활을 잘하고자 하는 각오가 남달랐던 만큼 자기계발에도 열심이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현재 목소리로 웃음과 희망을 전할 ‘성우’를 꿈꾸고 있다. ‘모든 일에는 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생각에 친한 동기와 일과 후 체력단련실로 향한다. 틈틈이 운동해 ‘몸짱’이 되는 것을 새해 목표로 삼았다. 또한 일본어에 관심이 있어서 어머니께 교재를 보내달라고 해 독학 중이다. 이 밖에도 다양한 책을 읽으며 지식을 쌓고 있다. 이런 아들의 모습에 엄마도 함께했다. 컴퓨터 관련 자격증 취득에 도전했다. 현재 필기는 합격했고, 실기를 준비하고 있다.
전역 후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고 싶다는 전 일병.
“가족이 있어 정말 행복하고 든든합니다. 그동안 걱정 끼쳐 드렸으니 이제는 밝은 아들의 모습, 부대에서는 멋진 용사의 모습으로 즐겁게 또 최선을 다해 남은 군 생활에 임하겠습니다. 충성!” 글=조아미/사진=조용학 기자
아들에게!
지난해 6월 14일, 입영식에서 집합하라는 소리에 연병장을 향해 제일 먼저
달려가던 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어른거리는데 어느덧 새해 1월이 됐구나.
2016년은 너에게도 가족들에게도 평생 잊지 못할 의미 있는 한 해가 될 것 같다.
가끔 받아보는 전화나 편지에 늘 ‘선임이나 간부들이 잘해줘서
군 생활이 할 만하다. 걱정 말라’고 해서 잘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네가 면담에서 눈물을 보였다는 간부님의 얘기에 얼마나 놀라고
걱정스러웠는지 모른단다. 그러다 지난달 부대를 찾아 면회외박(면박)을 신청했지.
마침 근무 중이던 중대장님께서 뜻밖에 중대장실에 초대하고
너의 변화된 모습을 아낌없이 칭찬하며, 엄마에게 응원을 보내주던
따뜻한 모습을 오래도록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아.
면박 때 너무나 씩씩하고 밝게 변한 네 모습을 보면서 엄마는 마음의 부담을 덜었다.
격려와 위로의 말을 아끼지 않으신 인사 장교님·부중대장님 모두 너무나 고마운
분들이시다. 엄마는 22사단에서 우리 아들이 복무 중인 게 더없이 감사하단다.
간부님과 선임을 존경·존중하고, 동기들이나 후임들에겐 배려와 격려를 아끼지 않길 바란다. 이제 얼굴에 다시 환한 미소가 번지고, 강건하고 군인다운 모습으로
거듭나고 있는 현준이를 보면서 엄마에게는 새해가 선물 같구나.
오늘도 모든 군 장병들과 그 가족들의 안녕을 기원하며. 사랑하는 엄마가!
어머니께!
어머니, 자랑스러운 아들 일병 전현준입니다!
벌써 7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어느새 일병이 됐습니다.
지난밤 전화로 “추울 텐데 감기에 걸리지는 않았니?” “필요한 것은 없어?” 하고
걱정하시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네요.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머니가 보내주신 따뜻한 옷들과 기도, 하늘에서 저를 지켜주시는 아버지 덕분에
저는 점점 더 단단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처음 자대에 왔던 때가 생각나네요. 과연 새로운 곳에서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어요. 하지만 다행히 저를 위해주는 간부님들과 선임들,
그리고 함께 노력하는 동기·후임들 덕분에 상담과
진료를 받으며 점점 적응할 수 있었어요.
어머니! 더 이상 걱정 마세요. 그동안의 군 생활이 저를 강하고 긍정적으로
만들어 줬어요. 멋진 남자가 돼서 다시 만나는 날에는 웃는 얼굴로 뵙겠습니다.
하늘에서 저를 지켜봐 주시는 아버지! 언제나 기도해주시는 어머니!
그리고 늘 나를 생각해주는 동생!
언제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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