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해안선따라 1만5000km 안보대장정

한걸음에 우리 역사·문화… 또 한걸음에 장병 땀·의지 담다

이석종

입력 2016. 12. 28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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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자 결산 방담


 


 


2016년 한 해, 대한민국의 동·서·남해안 1만5000㎞를 따라 안보 현장을 순례하는 기획 ‘해안선 따라 15000㎞ 안보 대장정’을 진행해 왔다. 서해안 최북단인 인천 교동도에서부터 동해안 최북단인 강원도 고성까지 이어지는 안보 대장정을 통해 육·해·공군, 해병대 장병들의 굳은 조국 수호 의지와 전략적 요충지인 해안의 중요성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장정의 막을 내리며 지면에 다 싣지 못했던 취재 뒷이야기를 풀어본다.


1월 - 교동도를 아시나요?

맹수열 기자 = 강화도에서 약 3.5㎞의 긴 다리를 건너면 낯선 풍경이 펼쳐집니다. 바로 ‘시간이 멈춘 섬’ 교동도의 모습이죠. 육안으로도 북한 땅을 볼 수 있는 교동도는 지리적 특수성 때문에 예전에는 출입이 어려운 지역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민간인들도 간단한 절차만 거치면 쉽게 찾아올 수 있는 지역이 됐죠. 특히 몇 해 전 인기 TV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된 뒤 교동도는 많은 관광객이 찾는 관광지로 탈바꿈했습니다.

변화의 물결을 타기는 했지만 교동도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바로 이곳을 지키는 해병대의 존재죠. 해병대는 1951년 교동도에 진입한 뒤 지금까지 이곳을 지키고 있습니다. 섬에서 만난 많은 주민들의 말에는 해병대에 대한 강한 신뢰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번 겨울에는 생생한 안보현장이면서 동시에 추억과 낭만을 느낄 수 있는 교동도를 찾아가 보시면 어떨까요? 다른 곳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는 교동도의 황해도식 냉면도 추천합니다.


 

2월 - 북한 핵실험 직후 통합방위현장을 보다

이석종 기자 = 대한민국의 관문, 인천의 취재는 인천광역시청에서 시작했습니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이어진 장거리 미사일 발사 도발 직후여서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한 안보 상황이었고 강화된 민·관·군 통합방위역량이 절실했기 때문입니다. 인천시의 협조로 접적지역인 인천의 통합방위역량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취재 직전 있었던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도발 때 얼마나 빠르게 주민들에게 경보가 전달됐는지, 대북 확성기 방송이 진행되는 현장과 상황실 사이에 얼마나 긴밀한 협조가 이뤄지는지 알 수 있었죠. 하지만 취재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인천의 통합방위체계를 설명하기 위해 실무책임자인 김동빈 인천광역시 재난안전본부장을 인터뷰했는데 내부 심의보고서에는 ‘인터뷰가 겉도는 느낌을 줘 마무리에 방점을 찍지 못했다’는 혹평이 실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근대화와 궤를 같이하는 인천의 역사와 안보적 의미를 인식하게 된 건 소중한 자산으로 남았습니다.

 

 

4월 - 잊지 못할 새만금 방조제 ‘자전거 순찰’

이영선 기자 = 서해안 중남부의 ‘새만금 방조제’를 탐방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으로도 행운이었습니다. 당시 장병들이 어떻게 경계임무를 수행하고 있는지 직접 살펴볼 수 있었는데요.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자전거를 이용한 임무 수행이었습니다. ‘자전거 순찰’은 방조제 한쪽에 설치된 자전거 도로를 따라 2인1조로 달리며 이상 유무를 확인하는 방법인데 색다르게 지켜봤던 기억이 납니다. 해안에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날씨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맑았던 날씨가 불과 한 시간 뒤엔 짙은 해무가 끼며 믿을 수 없을 만큼 흐려졌고, 석양을 배경으로 장병과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이런 날씨가 우리에게는 단순한 좌절(?)을 안기는 데 그치지만, 작전을 하는 장병들에겐 생명과 직결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해안 수색정찰 시 해무와 바위에 끼는 바다이끼 등은 장병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가 된다는 것이죠. 부대 관계자는 “이 때문에 간·만조 시기를 고려한 작전 등 장병들의 안전을 위해 항상 주의하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6월 - 아름다움 뒤에 숨은 안타깝고 아픈 흔적

이주형 기자 = 제주도 하면 먼저 멋진 자연경관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이번 해안선 탐방에서 절실히 느낀 것은 아픈 역사가 제주 곳곳에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알뜨르 비행장, 해안가 동굴진지, 가마오름에 만들어진 땅굴 등은 모두가 일제강점 시대의 잔재이자 서글픈 흔적이었습니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아야 한다’고 하죠. 앞으로 제주도를 가게 되면 경관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런 흔적도 찾아보면서 안보에 대한 생각도 한번 해주셨으면 합니다. 안타까운 일도 있었습니다. 제주해군기지 인근의 강정마을입니다. 아직도 그곳에는 기지를 반대하는 일부 주민들이 있습니다. 하루빨리 서로 간의 갈등을 치유하고 화합하면서 민군이 모두 상생과 발전의 길로 함께 나가기를 기원합니다.

 

 

9월- 열정을 담은 새벽 취재, 휴대폰이 바다에 휩쓸렸다?

조아미 기자 = 9월에는 울산광역시를 비롯해 경북 포항·울진 등 동해안 허리 라인을 따라 해안선을 취재했습니다. 먼동이 트기를 기다리는데, 경북 포항시 흥해읍 해안에서 수색정찰을 하는 해병대1사단 장병들이 눈에 띄었죠. 장병들의 모습을 수첩과 카메라에 빠른 속도로 담아냈고 지면에 멋진 일출과 장병들의 모습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습니다. 다시 취재를 위해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한재호 기자의 휴대폰이 안 보이는 겁니다. 차를 멈추고 휴대폰 추적에 나섰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새벽에 사진 촬영을 한 바닷가까지 갔죠. 이미 바닷물이 사진 촬영 지점보다 훨씬 안쪽으로 넘어들어왔고 포클레인이 모래를 열심히 퍼내며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포기해야 할 상황이었는데 마침 공사현장을 살피러 나온 마을 이장이 “이거 찾는 거죠? 제가 방금 바닷물에 빠질 뻔한 거 주웠습니다”라며 휴대폰을 건네주는 겁니다. 너무 감사했죠. 배꼽 인사를 여러 차례 하고는 다음 취재를 위해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10월 - 뜬눈으로 밤 지새우는 고마운 해안선의 장병들

안승회 기자 = 10월 비 내리는 동해는 잊을 수 없습니다. 남성미를 물씬 풍기며 거칠게 몰아치는 파도가 마음속 깊은 곳의 답답함을 깨끗하게 쓸어가는 듯했죠. 하지만 아름답기만 했던 바다에 어둠이 몰려오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모두가 잠들었을 시간, 대한민국 해안을 굳건히 지키는 국군 장병들의 본격적인 하루는 그때야 시작됐습니다. 훈련이 아닌 실제 해안경계작전 현장에 투입되는 장병들. 칠흑같이 어두운 밤, 손전등 없이도 잘 걸어가는 한 장병에게 말을 건네자 “수백 번 다니다 보니 책임 지역이 내 집 안 같이 훤하다”라는 답변이 돌아왔죠. 순간 울컥할 정도로 고마웠습니다. 우리가 이처럼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바다를 지키는 장병들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11월- 신기한 대한민국과 해안선의 장병들

김상윤 기자 = “한국, 참 신기한 나라예요. 북한 문제로 매우 불안한 상태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서울에 와보니 한국 사회는 평온하고 시민들의 표정은 밝았어요. 이유가 뭐죠?” 얼마 전, 한국에 갓 부임한 주한프랑스대사관의 미리암 생피에르 공보관이 국방일보를 방문했습니다. 그녀의 기습 질문에 잠시 대답을 고민하던 순간, 올 한 해 해안선에서 만난 장병들이 떠올랐습니다. 세계에서 몇 안 남은 분단국가를 바라보는 외부의 불안한 시선과 달리, 대한민국은 오늘도 안녕합니다. 모든 국민은 큰 걱정 없이 일하고, 웃고, 잠들죠. 국군에 대한 신뢰 없이는 불가능한 일상입니다. 지난 11월 최전방 동해안 철책에 몰아치는 해풍은 너무도 차가웠습니다. 철책을 점검하는 장병들의 거칠고, 빨갛게 달아오른 두 손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지켜줘서 고맙다.’ 쑥스러워 망설이다 전하지 못한 이 한마디가 아쉬움으로 남네요.


정리= 지난 1년간 해안선 15000㎞를 발로 뛴 여러분의 생생한 취재 현장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남은 한해 마무리 잘하시고 독자들을 위해 내년에는 더욱 열심히 취재현장을 누벼주시기 바란다.

이석종 기자 < seokjong@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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