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북유럽의 전사적지를 찾아서

“역사 잊은 국민에게 미래는 없다!”

입력 2016. 12. 25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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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끝> 덴마크 ②


전몰용사 추모 동상 근처서 만난 중사

청소년 레지스탕스 활약 자랑스레 얘기

코펜하겐 왕립도서관 내 유대인박물관

2차 세계대전 유대인 보호 상세히 기록

 

 

 

카스텔레 요새 부근의 전몰용사 추모 동상. 이 동상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덴마크 해방을 위해 희생한 연합군 장병과 레지스탕스 대원들을 기리기 위해 건립했다.

 


이 글은 ‘북유럽의 전사적지를 찾아서’의 마지막 차례이자 올 한 해 꾸준히 연재해 온 세계 각지의 전사적지를 찾아서 시리즈의 최종회입니다. 그동안 귀한 지면을 제공해 준 국방일보와 많은 격려를 보내주신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뉘하운 운하 거리의 살인적인 음식값

코펜하겐의 뉘하운(Nyhavn)운하는 바닷가에 가까운 서민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1637년 개설된 이후, 항구 노동자들의 선술집과 작은 집들이 많았다. 지금은 다양한 식당과 카페가 많이 생겼고, 특히 가난했던 ‘안데르센’이 이곳에서 집세를 내지 못해 방황하며 살았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운하 근처 야외식당에 들러 가장 서민적인 메뉴인 ‘피시 앤 칩스(Fish and chips)‘를 주문했다. 음식값은 무려 110덴마크 크로네(약 2만 원). 여기에 더운물 한 잔을 시키니 5000원이 또 추가된다. 이런 살인적인 물가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포구에 꽉 차있는 요트와 대형 크루즈선은 덴마크인들의 높은 생활 수준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파괴작전 후 도주하는 소년 레지스탕스 대원.

어린 청소년들의 전설 같은 저항운동

뉘하운 운하와 다소 떨어진 곳에 연합군 전몰용사와 레지스탕스 희생자 추모 동상이 있다. 군대가 좋아 직업군인이 됐다는 덴마크군 키티(Kitty)중사를 이곳에서 만났다. 전쟁사에 관심이 많은 그는 덴마크 레지스탕스 운동은 어린 청소년들로부터 처음 시작됐다며 전설 같은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1941년 코펜하겐에는 10대 소년들이 강인한 영국 총리를 본떠 ‘처칠클럽’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비밀뉴스 회보를 발간하다가, 무기를 확보해 독일군 보급차량을 습격했다. 결국, 그들은 체포돼 갇혔으나 저항은 멈추지 않았다. 면회자가 전해준 줄칼로 유치장 창문 철봉을 끊었다. 그리고 달아나는 대신 경찰서를 투쟁본부로 삼았다. 밤이 되면 창문을 넘어 몰래 나가 파괴공작을 하고, 날이 새기 전 은밀히 돌아왔다. 2개월 후, 이런 활동이 발각돼 그들은 진짜 감옥으로 보내졌다. 이 소년들의 소문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졌고, 뒤이어 수십 개의 ‘처칠클럽’이 생겨났다”라고 했다.

 

코펜하겐 왕립도서관에 있는 유대인박물관 전경.


덴마크 국왕까지 나선 보호운동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점령국가의 많은 유대인이 학살당했다. 그러나 유일하게 덴마크 유대인들은 90% 이상 살아남았다. 이런 역사적 배경은 코펜하겐 왕립도서관 정원에 있는 유대인박물관에 잘 기록돼 있다.

“1940년대 덴마크 유대인은 약 8000명. 이들의 구출작전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덴마크 민초들의 자발적인 행동 때문이었다. 그들은 오로지 양심과 나치에 대한 혐오감으로 유대인들을 숨겨주었고, 중립국 스웨덴으로 가는 경비를 제공했다.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10세는 ‘만약 나치가 유대인들에게 노란 별을 달라고 한다면, 모든 국민이 똑같이 노란 별을 달겠다’라고 했다. 국가지도자의 이런 확고한 의지는 수천 명의 유대인 목숨을 구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전쟁 후 이스라엘은 덴마크인들의 이런 행동을 절대 잊지 않았고, 오늘날까지도 두 나라의 외교관계는 각별하게 돈독하다.

한국전쟁 당시 파병된 병원선 ‘유틀란디아’호.

한국전쟁의 천사 병원선 ‘유틀란디아’

덴마크 사람들의 따듯한 인간애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또다시 나타났다. 덴마크 정부는 유엔 회원국 중 가장 먼저 의료지원 의사를 표명했고, 즉각 병원선 ‘유틀란디아’호를 파병했다. 4개의 수술실, 356개의 병상을 갖춘 이 선박은 최고의 첨단의료시설을 갖추었다. 필요한 간호사는 42명이었지만 당시 4000명의 지원자가 몰려들었다.

3년간의 전쟁 중 4981명의 장병과 수만 명의 한국 민간인들을 치료했다. 특히 환자들에게 ‘치즈버거와 아이스크림’을 제공해 인기가 더더욱 높았다. 오죽하면 병사들이 부상당하면 덴마크 병원선으로 후송해 달라고 인식표에 표시까지 했다고 한다. 현재 참전의료진 630명 중 생존자는 단 16명. 이들의 숭고한 인류애를 기리기 위해 주덴마크 한국대사관 내 ‘유틀란디아’호 기념관을 설치해 두고 있다.

덴마크군 키티 중사.

여행 중에도 역사에 관심 가져야

유럽지역 군사박물관이나 전사적지에서 많은 외국인을 만났다. 그곳에는 가끔 중국·일본인은 있었지만, 한국인은 단 한 사람도 볼 수 없었다. 수년 전 동유럽 한인 단체여행 중 폴란드 ‘아우슈비츠 유대인수용소’ 근처를 지날 때의 경험이다.

안내자가 여행팀 전원이 원한다면 4시간 정도 시간을 내 아우슈비츠기념관에 들를 수 있다고 했다. 절반의 여행객들은 찬성했지만, 한 무리의 여성들이 한사코 반대했다. 기념관 방문 의미를 설명하면서 양해를 구했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돌아온 것은 “우리는 전쟁이나 끔찍한 것 싫어해요!”라는 매몰찬 대답뿐. 더욱이 쇼핑센터에서 시간 부족을 탓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씁쓸한 기분 금할 길 없었다. 사진=필자 제공

<신종태 조선대 군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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