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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쓰면서 마음도 치유 진정한 ‘라이팅게일’이죠

김가영 기사입력 2016. 12. 25   15:36

<44·끝> 육군12사단 향로봉연대 향로봉대대

김덕일 소위 권유로 서평 쓴 권우영 상병 아버지와의 응어리 푸는 계기로…

경연대회 휩쓸며 ‘서평 전도사’ 변신 “군에서의 시간 보람차게 보냈으면”

 

 





“정훈장교님이 권해 주신 책이 아니었다면 아마 훨씬 더 오랫동안 아버지와 화해하지 못했을 겁니다.” (권우영 상병) / “그냥 흘려들을 수도 있는 말이었는데 제 얘기에 귀 기울이고 실천하는 권 상병의 모습이 놀랍고 감사했습니다.” (김덕일 소위)

참 정답다. 최전방 동북부 전선에 눈이 흩날리던 지난 22일 만난 육군12사단 향로봉연대 향로봉대대 정훈장교 김덕일(학군 54기) 소위와 본부중대 정보과 계원 권우영(21) 상병의 대화 모습에선 ‘정다움’이 배어났다. 엄연히 장교와 병사라는 계급과 신분의 차이가 있었지만 두 사람은 그랬다.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으면서도 때론 서로의 말에 진지하게 귀 기울였다. 이런 정다움 덕분일까? 김 소위는 책과 서평을 매개로 권 상병의 인생에서 작지만 큰 변화를 이끌어냈다.



지난해 12월 입대한 권 상병은 늘 가슴 한편에 돌덩이 하나를 얹고 생활하는 느낌이었다. 아버지 때문이었다. 훈련소에 입소하던 날 사소한 잔소리에 아버지와 감정 다툼을 하고 말았다. ‘입대를 앞두고 예민해져 평소라면 웃어넘겼을 가벼운 이야기조차 민감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이 핑계라면 핑계였다. 이후 무려 200일이 지나도록 아버지와 화해하지 못했다. 전화 통화도 어머니하고만 했다. 사업 때문에 바쁘신 아버지를 짐짓 외면해 휴가 때도 마주하지 않았다. ‘죄송하다’고 말씀드려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휘통제실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 자주 대화를 나누던 김 소위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놨다. 그때 김 소위가 책 한 권을 내밀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저도, 정훈장교님도 책 읽기를 좋아해 책에 대한 얘기를 자주 나눴는데 아버지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자 ‘큰 물고기’(다니엘 윌러스 지음/동아시아 펴냄)라는 책을 추천해주셨습니다. 서평도 작성해 보라고 권하셨죠. 좀 귀찮기도 했지만 ‘믿어보자, 손해는 안 보겠지’라는 생각으로 책을 읽었고 서평도 썼습니다.”

책은 평생 집 밖으로만 떠돌다가 죽음을 앞두고 돌아온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와 화해를 담고 있었다.

“기억에 남는 한 문장이 있습니다. 소설 속 아버지가 자신은 ‘위대한 아버지가 되고자 했다’고 고백하자 아들이 ‘위대한 아버지란 무엇이냐’고 묻죠. 아버지는 이렇게 답합니다. ‘아들이 사랑하는 아버지가 바로 위대한 아버지 아니겠냐’고. 그 구절을 생각하며 서평을 쓰면서 책이란 작가와 독자가 간접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감정과 감성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치유와 공감의 공간’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죠.”

이후 권 상병은 수화기를 들었다. 예전 일은 말하지 않는 대신 아버지와 일상적인 통화를 이어갔다. 마치 어제도 통화했던 것처럼. 미주알고주알 해명하지 않아도 절로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는 사이, 그것이 바로 가족 아닐까?

권 상병의 서평은 여러 변화를 가져왔다. 아버지와 화해한 것은 물론 ‘큰 물고기’ 서평으로 사단 서평경연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아 포상휴가까지 받았다. 이후 권 상병은 감명 깊게 읽은 책의 서평을 써보는 것은 물론 다른 병사들에게 적극 권하는 ‘서평 전도사’가 됐다. 이런 변화에 권 상병보다 더 놀란 이는 김 소위.

“권 상병이 고민을 털어놓을 즈음 사단에서 국민독서문화진흥회 김을호 회장님의 초빙강연과 그분이 권장하는 ‘W·W·H·1·3·1’ 서평 작성법 관련 워크숍이 있었습니다. 서평을 쓰면서 책을 읽으면 내용이 더 잘 와 닿겠구나 싶어 권 상병에게 책과 함께 서평 작성을 권했죠. 저의 사소한 한 마디가 이렇게 선순환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서 병사를 대하는 간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닫게 됐습니다. 앞으로 병사들이 군에서 보내는 시간을 보람차고 행복한 것으로 만드는 데 정성을 다하고 싶습니다.”

최근 대대는 전 장병이 서평 작성에 참여하도록 권장하는 데 만전을 기하고 있다. 매월 한 번씩 경연대회를 여는 것은 기본. 일주일에 한 번씩 병사들이 대대장과 간부 앞에서 서평을 발표하며 프레젠테이션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서평은 저를 변화시킨 ‘라이팅(Writing)게일’이었다”는 권 상병은 전 장병들에게 서평 작성을 ‘강추’했다.

“W·W·H·1·3·1 서평 작성법은 정해진 양식에 따라 책의 집필 이유와 책의 내용, 독서 후 실천방안, 도서 추천 이유, 다짐을 적는 형식입니다. 독후감처럼 쓰기 어렵지 않고 독서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데 적합합니다. 덕분에 우리 대대에서도 서평을 통해 책을 가까이하고 독서의 진정한 의미와 자아를 찾는 전우들이 부쩍 늘고 있습니다. 육군의 모든 전우들이 독서 활성화를 바탕으로 한 서평 작성을 통해 자신과 전우, 부대를 치유하는 ‘독서 전도사’이자 ‘상처를 치유하는 천사’가 되길 바랍니다.”

글·사진=  김가영 기자 < kky71@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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