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전쟁을 그린 화가들

이것도 미술일까 어려운 현대미술? 아름다움은 다양할 뿐

입력 2016. 12. 19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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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온 카와라 ‘제목’


개념미술가로 유명한 일본 출신 작가…암호 같은 작품 남겨

말·글로 작업 설명한 적 없어…‘침묵’과 잘 어울렸던 예술가

 

 

 

 

 



1년 동안 우리는 많은 작품을 통해 다양한 작가와 전쟁을 만났습니다. 제가 ‘전쟁을 그린 화가들’을 쓰며 한 가지 바랐던 점은 미술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사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고 즐길 수 있는 예술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술이 왜 ‘어려운 것’이라는 인식이 생겼을까요? 그림은 언어가 있기 이전부터 소통에 사용되던 매개체였는데 말이죠. 우리가 미술관에서 가서 만나는 미술의 대부분은 현대미술입니다. 서울·광주·청주·부산 등지에서 2년마다 열리는 비엔날레에서는 가장 최신의 세계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죠. 하지만 막상 그것을 본 많은 사람들은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고 합니다. “내가 무지해 보이지는 않을까?”란 괜한 생각 때문에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말이죠.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개념’

분명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 아름다울 미(美), 기술 술(術) 자를 쓰는 ‘미술’의 영역에 속해있다는데 막상 아름다움이 느껴지지 않기도 합니다. 또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죠.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작품을 만든 것일까?”, “이게 미술이야?” 등 현대미술을 접한 사람들이 느끼는 당혹감은 사실 어느 정도 당연한 부분이죠. 그래서 오늘은 작가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왜 이렇게 미술이 어려워졌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품을 봐왔지만,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그림은 현대미술보다는 살아본 적도 없는 르네상스 시대 쪽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피카소를 비롯해 우리가 알고 있는 20세기 작가들의 작품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낄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현대에는 피카소가 그린 ‘아름답지 않은’ 여인의 누드에 천문학적인 금액이 책정될 만큼 미의 기준이 변했죠. 이제 미술은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것도 미술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변화무쌍한 작품들이 나타나죠. 미의 문제에서 벗어난 오늘날의 미술에서는 무엇이 중요한 걸까요? 바로 개념(idea)입니다. 그래서 개념미술이라는 말도 생겼죠.

2015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린 온 카와라 ‘침묵’ 회고전의 모습.

소통과 인터랙티브 아트

이전까지 작가들은 ‘미술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작품을 통해 보여줬습니다. 작가는 작품의 창작자이자 창조주로서 절대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죠. 우리는 그들이 보여준 작품을 통해 미술을 알게 됐죠. 그리고 몇몇 작가들은 천재라 부르며 경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개념이 중요한 현대미술에서 작가는 더 이상 창조주가 아닙니다. 그들은 작품을 완성해 우리에게 미술은 이런 것이라고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이것도 미술일까?’라는 질문을 합니다. 작품을 완성하지 않고 전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작품은 작가가 아닌 관객들에 의해 완성되기도 합니다. ‘인터랙티브(interactive) 아트’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런 예죠.

어떤 작품에는 그림이 아닌 글만 쓰여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언어로만 구성된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이것이 문학인지 미술인지 헷갈립니다. 요즘 미술관에서는 영화도 볼 수 있고, 음악이나 퍼포먼스 같은 공연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미술·문학·음악·무용 등의 경계가 점차 희미해진 오늘날의 예술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죠. 그리고 이것이 포스트모더니즘적인 모습이기도 합니다. 오늘날의 예술에서는 장르의 구분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예술 변화의 원인이 된 전쟁

그리고 이런 변화의 주요 원인은 20세기를 강타한 1·2차 세계대전입니다. 전쟁은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미술의 근본을 뒤흔들어 놨습니다. 전쟁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전쟁을 일으킨 원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중요하게 여겼던 가치들이 전쟁의 원인이라는 판단을 하게 됐죠. 오히려 그동안 잊고 있었던 가치들 혹은 기존의 가치들에 반하는 것들에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성 평등을 주장하는 페미니즘 같은 운동들도 이 시기에 본격화되죠. 미술에서도 페미니즘 운동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페미니즘 예술가와 이론가들은 미술관의 전시에 여성 작가들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사실, 미술사가 남성 중심적으로 기술돼 여성 작가들에 대한 소개가 이뤄지지 않음을 지적했죠. 현대의 미술은 실생활에 더 밀착해 신문기사나 뉴스에서 접할 듯한 내용을 작품에 담아냈습니다.



암호와 같은 작품들

그럼 여기서 개념미술가 한 명을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2015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는 ‘침묵(silence)’이라는 부제로 온 카와라(On Kawara·1933~2014)의 회고전이 열렸습니다. 카와라는 일본 출신의 작가로 1960년대 뉴욕으로 가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그는 1966년부터 2013년까지 매일의 날짜를 캔버스에 그리는 ‘오늘’이라는 연작을 진행했고 동시에 다수의 연작을 제작했습니다. 신문을 읽고 스크랩해 만든 ‘나는 읽었다’(1966∼1995), 만난 사람의 이름을 기록한 ‘나는 만났다’(1968∼1979), 자신이 방문한 곳을 지도에 표시한 ‘나는 갔다’(1968∼1979) 등이 그것입니다. 그의 작품은 보는 순간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게 하죠. 암호와 같은 느낌이랄까요?

1965년작 ‘제목’은 카와라의 많은 연작이 나오기 이전에 제작된 작품으로 대표작 ‘오늘’의 초기적인 모습입니다.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자주색 바탕이 칠해진 3개의 캔버스에 하얀색으로 쓴 ‘One thing’, ‘1965’, ‘Viet-nam’이라는 단어뿐입니다. 베트남 전쟁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지만 카와라가 베트남 전쟁에 대해 무슨 생각을 가졌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카와라는 작품을 내놓은 뒤 다시 ‘침묵’했으니까요.



강박적 작품 활동으로 유명

카와라는 강박적인 작품 활동으로 유명했습니다. ‘침묵’이란 단어와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죠. 생전 그는 인터뷰는커녕 작품에 대한 설명도 잘 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삶을 기록만 하고 있었죠. 많은 연구자들은 카와라의 강박적 태도가 태평양 전쟁에서 기인했다고 분석합니다. 전쟁을 겪은 패전국의 국민이었던 그는 망각의 모습을 수많은 날로 기록해나간 것이죠.

카와라의 작품에서 보았듯 이제 현대미술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움의 자리는 다양한 것들이 대신하고 있죠. 현실의 문제나 작가 개인의 일상 등등이 말이죠. ‘아름다움의 시대’의 가치들은 이제 중요하지 않게 됐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의 삶 속에는 전통적인 가치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죠. 특히 예술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은 더욱 고정돼 있었습니다. 이런 개념들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현대미술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이란 교육을 받았기 때문 아닐까요? 이미 예술가들은 그런 개념에서 벗어난 지 오래인데 말이죠.

<김윤애 문화역서울 284 주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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